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9화 (9/74)

1. 제 2 이벤트 관리과

"무슨?"

다이는 은근슬쩍 제피에게 다가서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아주 오랫동안 너를 지켜봤어. 언제나 올곧은 너의 성격과 맑은 호수 같은 눈동자. 살짝 닿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은 붉은 입술. 너무 부드러워 보여서 손대기조차 겁이 나는 하얀 피부..... 아아. 금방이라도 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열정을 참아낼 수가 없구나. 제피. 사랑해! 제발...... 제발. 내 마음을 알아주겠니?"

제피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다이는 미남자다. 그것도 아주 보기 드문. 게다가 그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도 매료시키는 묘한 것이니. 임자 있는 그녀라 하더라도 그런 그에게서 이런 애타는 고백을 듣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그녀는 소문과 달리 다이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멋지고 손이 닿지 않는 연예인을 동경하듯 그녀는 그를 내심 동경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싫어하는 척 했을 뿐이다.

"제피. 대답해줘. 날 어떻게 생각하지? 너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이지?"

최강 닭살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다이였다. 당장 연예계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명연기!

결국 제피는 그의 연기가 가져다준 로맨틱한 무드에 푹 빠졌다. 그녀 역시 분위기란 놈에게 약한 여자였으니.

"다이님!"

다이는 자신의 가슴에 덥석 안겨든 제피로 인해 당황해야만 했다. 그녀는 다이를 향해 살짝 고개를 들더니 살포시 눈을 내리 감았다. 그 키스를 요구하는 자세에 다이는 내심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일은 이미 저질러진 후기에 그는 이 상황을 여기서 멈출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까짓 키스 한번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후가 문제다. 도장을 찍어버리면 천상 책임지고 사귀어야 하지 않는가.

미인이니 그리 싫지 않고 정말 사랑한다는 듯한 연기로나마 제피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다만 그도 연애만큼은 진실 되게 하고 싶었다.

똑똑.

그때 구세주와 같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이는 얼른 제피를 밀어내며 말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로이드였다.

"어, 제피도 있네."

그는 싱글벙글하며 안으로 들어서더니 다이에게 다가와 한 뭉치의 서류를 건넸다. 그리고 제피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오면서 크리스를 봤는데 그 녀석 너랑 사귀기 시작하고부터 정말 몸이 좋아진 것 같던데? 얼마나 잘 먹이는 거야. 대체."

제피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연인이 있으면서도 그걸 잊고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쓸린 자신을 생각하자 가슴 한쪽이 지끈거리는 그녀였다. 다이에 대한 것은 그저 소녀틱한 동경일 뿐. 그녀의 진정한 사랑은 크리스였으니 말이다.

"다이님."

제피의 부름에 다이는 머쓱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제피의 뽀얀 볼을 적시고 있는 한 줄기 눈물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전...... 전 다이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제피는 울며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마치 그를 가지고 논 듯한 마음에 다이에게 미안해서였다.

연극과 착각은 한 편의 신파극을 만들어 냈고 다이는 이상한 성공에 당황하면서도 금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즐겼다. 어쨌든 계획대로 된 것이니 말이다.

"다...... 다이님?"

눈치로 대충 상황을 파악한 로이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이는 그런 그를 물기마저 살짝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울먹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로이드. 난...... 더 이상 이 세계에 오고 싶지 않아. 그녀가 있는 곳은...... 내겐 너무 고통스러워."

"다이님 설마?!"

로이드가 그의 팔을 붙들었지만 살짝 눈을 내리 깔은 다이는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이별이야. 로이드."

그 날밤, 라크세인 최강의 길드인 블러드 나이츠가 정식 해체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놀랐고 또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로 블러드 나이츠의 핏빛 깃발이 각 도시에서 사라지자 모두가 기뻐 날뛰며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곧 다이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노래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평소 그 악명으로 인해 블러드 나이츠를 무척 싫어했던 사람들조차. 블러드 나이츠에게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조차. 그 심금을 울리는 슬픈 노랫말에 한 방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이가 길드를 해체함과 동시에 캐릭터를 완전 삭제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곧 라크세인 전역에 그의 영원한 이 세계에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 행렬이 이어졌다.

물론 사람들은 모른다. 그 노래를 만들어 퍼트린 것조차 다이이며 그는 캐릭터 삭제는커녕 멀쩡히 라크세인 전역을 텔레포트로 누비며 노래를 불러 젖히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악랄한 명성답게 유저 전체를 향해 대대적인 사기를 쳐버리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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