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로그 아웃."
[로그 아웃합니다. 다이님. 캐릭터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어둠 속에 멍하니 서 있던 지원은 곧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아릿한 저림을 느꼈다.
"...... 이제 끝인가."
여전히 캡슐 안에 누운 채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아쉬움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공을 들이고 아낀 길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다이의 강렬한 카리스마라는 놈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짜내고 또 연기를 했던가. 그가 짜낸 시나리오들을 모두 소설로 쓴다면 그야말로 열 권 짜리 장편 소설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는 라크세인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도록 만들었고 또 불패의 길드 전설을 영원히 보존시켰다. 이 정도면 한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성과 결과라 할만했다. 그게 비록 거짓과 사기극으로 얻어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중요할 뿐이야. 음음."
혼자 말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거린 지원은 캡슐 밖으로 몸을 빼냈다.
[지원님. 읽지 않으신 메일이 17106통 있습니다.]
A.I의 알림에 지원은 잠시 멍해졌다. 백 단위도 아니고 천 단위도 아닌 만 단위의 메일이라니.
"열어봐."
곧 홀로그램이 눈앞에 펼쳐지며 빼곡이 들어찬 메일들이 보였다. 이름을 보자 거의가 그의 길드원들이었다. 대충 제목을 보고 추려내어 몇 개만 읽은 지원은 거의가 똑같은 내용. 그러니까 그의 복귀를 희망하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지."
비슷한 제목의 메일을 모두 삭제한 지원은 또 다른 메일을 살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낮선 유저들이 보낸 응원과 격려였다. 그 외에도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로맨스 작가에 자신이 그의 상처를 보듬어 주겠다는 열정적인 여성들까지 있었다.
지원은 정리를 하다하다 다 못하고 모든 메일을 그냥 삭제해 버렸다. 반도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새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일 출근하려면 지금쯤은 좀 자둬야 했다.
침실로 들어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진 지원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일 새로 가게 될 부서는 과연 어떤 곳일지 상상하면서.
이미 블러드 나이츠에 대한 것은 깨끗이 잊어버린 지원이었다. 그는 원래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가지는 스타일이 못 된다.
잠시 후, 지원은 달콤하고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2178년 3월 6일.
이른 아침, 시간 맞춰 집을 나선 지원은 곧장 회사로 향했다. 두 번째 출근. 기분이 묘해짐을 느끼는 그였다. 단 하루만에 부서 이동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주)테이머의 본사 건물에 도착한 지원은 1층 안내 데스크에서 그의 새로운 직급을 통보 받았다.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에 소속된 제 2 이벤트 관리과 과장 서 지원.
첫 출근 때는 그냥 평사원이더니 두 번째 날은 덜커덕 과장이 되어 버린 지원이다. 낙하산 인사의 장점이자 단점이랄까. 든든한 빽이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니 그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은 없게 되겠지만, 보통 저런 파격적인 인사 뒤에는 다른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과 뒷담이 기다리고 있다.
"왕따 당할 가능성이 90%는 되겠네. 이거 좀 위험한 것 아닌가 몰라."
지원은 쓰게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제 2 이벤트 관리과 사무실로 향했다.
F1001호. 사무실이 지상이 아닌 지하 10층에 있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원래 이런 게임 회사의 지하란 서버와 메인 컴퓨터 등이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 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곧 지하 10층에 도착했다. 그 층에 존재하는 사무실은 달랑 하나였기에 제 2 이벤트 관리과를 찾기는 아주 쉬웠다.
지원은 부하 직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잘 차려입은 양복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사무실 문 앞에 다가섰다. 곧 문이 열리고 사무실 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
휑한 직사각형의 공간. 넓었다. 무지 넓었다. 한 층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텅텅 비어 있기에 더욱 넓어 보였다. 사람도 가구도 아무 것도 없다. 너무 깔끔해서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지원은 자신이 잘못 찾아온 건가 하는 생각에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 위에 붙은 전광판에는 분명 10층이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사무실 문 위를 보자 그 위의 전광판에도 분명 제 2 이벤트 관리과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무슨 경우지?"
지원은 황당함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1층 안내데스크로 되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기도 전에 그의 걸음은 멈춰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서 승익의 개인 비서인 주 진영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지원군! 부사장님 명령에 따라 도와주러 왔답니다아~"
지원은 저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간신히 펴며 대답했다.
"전 별로 좋은 아침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어머. 왜요?"
지원은 말없이 제 2 이벤트 관리과 사무실을 가리켰다. 아직 문이 열려있었기에 그 텅텅 빈 내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진영은 그걸 보고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 좀 썰렁하죠?"
"조금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진영은 싱글거리며 지원에게 다가섰다.
"제 2 이벤트 관리과는 바로 어제 저녁에 신설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사무실을 꾸밀 시간이 없었어요."
지원은 순간 안색을 굳혔다.
"그럼 제 2 이벤트 관리과의 직원은 달랑 저 하나?"
“네. 원래의 이벤트 관리과가 제 1 이벤트 관리과가 되고 제 2 이벤트 관리과는 지원군에게 주어진 거예요.”
“그럼 다른 직원들은 언제 보충해 줍니까?”
“현재 우리 회사엔 남는 인원이 없어요.”
“그럼 신입 사원들을 모집할 건가요?”
“아뇨. 이번 년도 신입 사원은 지원군이 마지막이에요. 가장 적은 수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라는 것이 저희 회사 모토이기 때문에 채용할 수 있는 인원의 한계를 항상 정해두거든요. 사실 지원군의 채용도 부사장님이 힘을 쓰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죠. 호호.”
“......”
지원은 진영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며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