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11화 (11/74)

1. 제 2 이벤트 관리과

"그...럼......"

저절로 떨려서 나오는 목소리에 지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내년 신입 사원 모집까지는 저 혼자라는 말씀이십니까?"

진영은 지원의 어깨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혼자 외롭겠지만 저도 틈틈이 놀러 올게요."

"......"

허탈함에 기운이 죽 빠진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급조한 과와 직급. 이건 완전히 겉만 번드르르할 뿐. 알맹이는 텅 빈 허수아비다. 지원은 사고 치고 한직으로 쫓겨난 이의 심정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난 지원군이 오히려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진영의 말에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비꼬았다.

"좋아할 것 같습니까? 이건 완전히 어느 부서에서도 너는 필요 없다라는 뜻이잖아요. 제가 그렇게 무능력해 보입니까? 대충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부서에 딸랑 혼자 보내서 1년씩이나 놀게 할 만큼?"

"어머. 왜 그렇게 생각해요? 제 2 이벤트 관리과가 이번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서인데요. 지원군의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얹어진 것인지 모르겠어요?"

"무겁죠. 너무 무거워서 날아갈 것 같네요. 대체 뭡니까. 이게? 그냥 평사원으로 제 1 이벤트 관리과에나 보내줄 것이지. 급조한 제 2 이벤트 관리과라니? 제가 언제 과장 자리 달라고 했습니까?"

"급조는 아니에요. 제 2 이벤트 관리과를 개설할 예정은 원래 잡혀 있었거든요. 단지 지원군으로 인해 계획이 좀 앞당겨졌을 뿐이죠. 그리고 혼자이니 간섭도 받지 않고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잖아요?"

진영은 지원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전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요. 지원군이 얼마나 일을 잘할지 말이에요.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부사장님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죠? 호호."

지원은 진영의 말이 그냥 위로라고 생각했다. 또 아버지에게 속은 거라고. 신적인 권한과 자유를 가진 지엠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냥 그럴듯한 부서 하나를 임시로 만들어서 처박아 놓으려는 속셈이라고 말이다.

"행복하네요. 저 텅 빈 사무실에 책상 하나 덜렁 갖다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이죽거린 지원은 여전히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진영의 손을 뿌리쳤다. 이번에는 절대로 사표를 쓰겠다고 결심한 그였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소리 없이 열리며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내려섰다. 그들은 지원과 진영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는 곧장 제 2 이벤트 관리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홀로그램 도면을 펼치고 이런 저런 상의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쪽에 캡슐을 놓고. 이 쪽엔 직원들의 책상을 두고. 음. 회의실은 저 쪽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아냐. 김 대리.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움직이는 반경이 좁아야해. 이 넓은 데서 이동하다 시간 다 보낼 일 있냐."

"그럼 제 1 이벤트 관리과처럼 4등분해서 몰아 버릴까요?"

"거긴 인원이 워낙 많으니까 그랬지만 여긴 예정 인원이 적잖아. 그냥 개인 사무실로 나눠 버리자. 회의실 같은 것이 필요 없도록 벽에 멀티 스크린이랑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래. 한 자리에 딱 앉아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그 후 둘의 대화는 거의 전문적인 용어들로 점철된 것이라 지원은 하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지원이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고 있자, 진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사무실 개조가 다 끝날 거예요. 우선 제 1 이벤트 관리과에 가서 업무 파악부터 하세요. 물론 여기와 거기는 하는 일이 좀 다르지만 방식은 같으니까요."

"...... 진짜 사무실 개조를 하는 겁니까? 하지만 임시 부서에 무슨 전문 설계사들을."

"임시라니요? 세상에!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자,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그냥 임시로 급조한 아무 쓸모 없는 부서에 이렇게 큰 사무실이 주어질 수 있을까요? 사무실 크기는 곧 그 부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는 건데 말이에요."

"......"

"어제 갔던 라크세인 운영팀 사무실 기억해요? 아마 여기의 반정도 크기였던가요. 거긴 지금 직원은 많은데 사무실이 좁다고 매일 투덜거려요. 그런데도 회사에선 안 바꿔주고 있죠. 그런 곳도 있는데 이런 큰공간이 여기 배당될 정도면 이 부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만하지 않아요?"

지원은 그제야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직이 아니라 너무 큰짐을 홀로 짊어지게 된 것이다. 그 짐의 무게 때문에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사표가 쓰고 싶어진 그였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에 물들었다.

"우선 제 1 이벤트 관리과에 가서 업무 파악부터 해보죠."

사표는 그 후에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원이었다.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의 제 1 이벤트 관리과는 지하 9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반투명한 강화 유리창으로 둘러싸여진 커다란 전체 회의실이 존재했고 그 것을 중심으로 사등분하여 북동쪽에는 과장실과 소규모 회의실, 슈퍼컴퓨터가. 북서쪽과 남동쪽, 남서쪽에는 각각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진 삼백 삼십 명의 직원들이 자리했다.

각각의 그룹에는 다섯 명씩의 대리와 백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이벤트 마스터, 즉 EM의 직책을 가진 것은 대리들이고 나머지 직원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낮은 철제 칸막이로 구역이 나눠지고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V.R 접속 캡슐과는 전혀 다른 모양과 크기의 캡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질서정연하면서도 꽤 장관이었다.

지원은 그 규모에 약간 놀랐지만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서서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밝혔다. 곧 그는 과장실로 안내되었고 제 1 이벤트 관리과의 과장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 진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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