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12화 (12/74)

1. 제 2 이벤트 관리과

그렇게 말하며 지원에게 악수를 청한 삼십 대 중반의 김 진혁은 건장한 체격과 각진 턱을 가진 스포츠맨 스타일의 남자였다.

지원은 어떤 첫인상을 주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서 지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원은 이지적인 이미지가 느껴지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무래도 그가 김 진혁에 비해 나이나 경력 면에서 현저히 떨어졌기에, 혹시 그런 이유로 무시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간단히 말해서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인텔리 느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곧 둘의 손을 떨어지고 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바로 어제 새로 개설된 제 2 이벤트 관리과의 젊은 과장님에 대한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누추한 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진혁의 말투에서 지원은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이미 부사장의 외동아들이 입사해서 라크세인 운영팀에 단 두 시간 출근했다가 제 2 이벤트 관리과 과장으로 벼락 승진을 했다는 소문이 좍 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혼자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힘들게 과장 자리에 오른 김 진혁의 눈에 그런 지원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진혁은 상당히 직설적인 성격인 것이다.

지원은 그런 낌새를 알아채고는 간단히 그의 용건을 밝혔다. 그러자 김 진혁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부하 직원 하나를 불러주고 지원을 과장실에서 쫓듯이 내보냈다.

"이 쪽으로 오십시오."

박 현영 대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곱슬머리의 30대 초반 사내는 지원을 소규모 회의실로 안내했다. 지원은 그의 뒤를 따르며 속으로나마 김 진혁을 향해 이를 갈았다. 그는 그를 홀대한 사람을 가만두는 성격이 못 되기 때문이다.

후일의 복수를 다짐하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선 지원은 곧장 박 대리에게 롤플레잉 프로젝트와 이벤트 관리과에 대한 설명과 자료를 요구했다.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은 '에피소드'라는 게임의 개발, 운영, 관리부서 모두를 총괄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또 이벤트 관리과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먼저 '에피소드'에 대해서 설명해야하지요. 우선 이걸 보십시오."

박 대리는 회의실 탁자 위에 홀로그램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곧 화려하고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의 가상 현실 게임 화면이 탁자 위에 떠오르며 강렬한 이미지의 성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임 광고였던 것이다.

『 색다른 V.M.G를 원하는 고급 플레이어들을 위해.

지금껏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더 이상 목적 없이 사냥만을 반복하는 게임은 가라!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프리 캐릭터 메이킹.

개인 백 스토리 설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당신만의 특별한 이벤트 서비스.

한계가 없는 판타스틱 멀티 시나리오.

플레이어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강렬한 엔딩.

끝이 존재하는 이 세계는 당신에게 이루어야만 할 목표를 부여한다.

오라. 즐겨라.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갈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주)테이머의 야심작.

10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차세대 가상 현실 멀티유저 게임.

【 에피소드 】

지금 여기서 기존 게임들과의 차별화를 선언한다! 』

그리 길지 않은 광고가 끝나자 지원은 박 대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에피소드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침까지 마구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어조엔 에피소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시시껄렁한 플레이어들은 이 쪽에서 사절이지요. 정말 제대로 게임을 즐길 줄 아는 고급 플레이어들이 에피소드의 타겟이랍니다. 그냥 세계관과 배경만 설정해두고 플레이어들을 자유 방임적으로 풀어놓는 게임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게임들에서 할 일이라고는 경쟁뿐이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강하게 혹은 남들보다 더 부자로. 물론 더 다양한 목표가 있지만 결론은 비슷합니다. 끝없이 사냥하고 또 하고. 혹은 만들고 부시고 차지합니다. 지루하죠. 식상합니다. 진짜 그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느낌이 희미하죠.

싱글 게임 해보셨습니까? 정해진 외길 스토리. 혹은 몇 가지 선택권을 주고 그에 맞는 다양한 엔딩을 보여주죠? 그러나 싱글 게임이 아무리 다양한 멀티 시나리오와 엔딩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정해진 길입니다. 이미 만들어놓은 길 중에 하나를 플레이어가 선택할 뿐인 한정된 자유라는 거지요.

그렇지만 에피소드는 다릅니다. 한계가 없는 자유 선택권이 주어지죠. 정해진 스토리 따위는 애초에 없습니다. 시작만 만들어줄 뿐이죠.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그 시작을 이어나가는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의 선택, 혹은 행동대로 그 결과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참여해 이 또 다른 세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를 이어가는 게임이란 겁니다. 물론 전혀 엉뚱한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약간의 제재장치는 있지만 이건 논외로 치고.

어쨌든 그 세계의 진짜 구성원이 된 듯한 엄청난 몰입감! 매일 펼쳐지는 다양한 이벤트! 식상할 틈이 없죠. 그들이 식상해질만하면 환상적인 엔딩과 함께 에피소드 원이 끝나버릴 테니까요."

지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설명에 집중했다. 저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했다. 지금껏 없었던 게임 유형이 아닌가. 물론 정해진 스토리가 있는 V.M.G는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없었다.

왜냐. 만들어 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만들기만 힘든가?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플레이어들의 행동과 생각에 맞추어 계속 스토리를 이어나가야만 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게임을 완성시켜놓고 가끔 던전 업데이트나 한다던가. 서버와 A.I관리나 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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