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2 이벤트 관리과
박 대리의 감정이 듬뿍 실린 장황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한 가지 일을 얘기하는 데도 갖가지 예를 들며 비교하고 분석해서 얘기해 주기에 그 것은 장장 2시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지원은 그런 그의 얘기를 전혀 지루해 하지 않고 흥미롭게 들었다. 그 역시 게임광으로서 에퓬撚恙?혹했던 것이다.
박 대리의 얘기 중에서 지원이 흥미로워한 것들을 간단하게 종합해 보자면 이렇다.
에피소드는 커다란 3개의 시작 스토리가 있고 그 것은 에피소드 원, 투, 쓰리로 나누어져 서비스될 예정이다. 이어지는 스토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끝나는 시기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 1년이면 1년. 10년이면 10년. 플레이어들이 결말을 내는 때가 에피소드의 서비스가 〕ご?날인 것이다.
그 메인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있는 반면. 그냥 게임 속 생활을 즐기는 플레이어도 있을 수 있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개인별, 혹은 그룹별 이벤트 서비스다.
바로 이 부분이 제 2 이벤트 관리과가 담당하는 이벤트이고 제 1 이벤트 관리과는 메인 스토리에 따른 이벤트를 담당한다. 제 2 이벤트 관리과는 해당 플레이어나 그룹에 어울리는 이벤트를 만들고 그걸 적용, 실행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 플레이어는 약간의 한계가 주어진 자신의 백 스토리를 직접 설정할 수도 있고 이미 만들어진 백 스토리를 살수도 있다. 그 백 스토리에 따라 캐릭터의 능력과 직업 등이 달라지며, 만들어서 파는 백 스토리는 거의가 반쯤 완성된 메인 스토리상의 캐릭터이다.
물론 에피소드에도 캐릭터를 키운다는 개념이 있기에 단순 사냥 노가다 같은 것을 원하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이벤트나 특별한 퀘스트를 수행함으로써 올라가는 경험치와 능력치. 보상이 더 크기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이벤트와 퀘스트. 스토리 위주의 가상 현실 멀티유저 게임이랄까. 매일같이 사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들로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특징이자 목표였다.
"...... 겁니다. 헉헉. 이제 에피소드에 대해서 대충 아시겠죠?"
겨우 박 대리의 이야기가 끝나고 거의 숨넘어갈 듯 헥헥거리는 그를 잠시 쉬게 한 지원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왜 전 이런 게임이 개발된다는 소식을 못 들은 건지요? 게임 방송과 관련 소식은 매일 보고 듣는데 말입니다."
박 대리는 손을 싹싹 비비며 대답했다.
"헤헤. 당연히 비밀로 했죠. 경쟁사가 한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한 방에 터트려서 플레이어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홍보성 이유도 있답니다."
"개발은 완료된 겁니까?"
"한달 후쯤부터 클로즈 베타 테스트(Close Beta Test)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일주일 후부터 광고와 함께 테스터 모집에 들어가죠."
지원은 사표 쓸 생각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어가 아닌 운영자의 입장에서 즐겨 본다는 것과 골치 아픈 일반 GM이 아니라 이벤트만을 담당하는 EM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서다.
"그럼 베타에는 저희 과에서 담당할 개인별 이벤트 서비스가 들어가지 않겠군요?"
"맞습니다. 정식 서비스 때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죠. 하지만 2과가 이미 생겼고 과장님도 계시니까. 플레이어들에게 약간의 맛 정도는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과요?"
"아, 줄여서 부르는 겁니다. 제 2 이벤트 관리과라는 것은 너무 길어서 말이죠. 저희도 우리 과를 그냥 1과. 혹은 이벤트 1과라고 부른답니다."
박 대리의 대답에 피식 웃던 지원은 문득 그가 들어와 앉아있는 회의실 문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의 시선이 닿자 와르르 몰려 서서 안을 흘끔거리고 있던 1과 직원들이 얼른 몸을 피했다.
지원은 쓰게 웃었다. 1과에 들어섰을 때부터 대부분의 직원들이 왠지 그를 꺼리는 듯 했었다. 어떤 이는 은밀히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대부분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지원을 힐끔거렸다. 물론 개중에는 박 대리처럼 노골적인 호의를 드러내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 같다는 생각에 지원은 박 대리에게 그 것을 확인했다.
"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제 가족사라든지."
박 대리는 눈을 반짝이며 얼른 대답했다.
"물론 알고 말고요. 부사장님 외동 아들이시라죠?"
역시나 라는 생각에 지원은 속으로나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박 대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대신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심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예 절 2과로 데려가 주셔도 좋고요. 헤헤."
이런 인간들은 어디나 있다. 지원은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긴 했지만 이용해 먹기는 좋다고 생각했다. 지원은 겉으로나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업무에 익숙치않으니...... 앞으로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 보답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보답이라니. 부사장의 외동아들인 지원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과 자금력을 생각하자 가슴이 벅차 오르는 박 대리였다. 그는 가슴을 탕탕 쳐 보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과장님."
"네. 박 대리만 믿겠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지원은 박 대리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펴 흔들었다. 물론 회의실 탁자 밑에 감춘 왼손으로 했기에 엿을 먹고 있는 대상은 그걸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먼저...... EM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좀 보여 주십시오."
지원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에 박 대리는 냉큼 자료들을 찾아와 바쳤다. 지원은 그런 그에게 씨익 웃어주고는 차분하게 그 방대한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해내기로 마음먹은 지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