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베타 테스트
2178년 10월 13일 금요일.
(주)테이머의 차기 V.M.G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되는 날. 기대감에 부풀어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던 지원은 그의 몸을 흔드는 부드러운 손길에 잠을 깼다. 부스스 눈을 뜬 지원의 멍한 눈빛에 그의 어머니는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홉 시란다. 얘야. 어서 씻고 내려와서 밥 먹으렴."
지원의 어머니는 아들이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마냥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보이는지 매일 아침 손수 그를 깨우고 챙겨서 출근시키곤 했다.
"네......"
지원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역시 느릿한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약간의 저혈압이 있는 그는 아침이 괴로운 사람 중 하나다.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깨끗한 양복을 차려입은 지원은 아래층으로 내려섰고 그의 어머니가 직접 지은 밥과 찌개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느덧 또렷한 눈빛으로 돌아온 지원은 그의 어머니 뺨에 키스하고는 곧장 출근을 서둘렀다.
정각 열 시에 도착한 제 2 이벤트 관리과 사무실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썰렁했다. 처음의 그 휑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백 개의 잘 꾸며진 개인 사무실들이 모두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지원은 언젠가 이 사무실들이 모두 채워질 날을 기대하며 느긋하게 과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과장실은 가장 안 쪽에 자리했는데 다른 개인 사무실에 비해 10배 이상 넓었고, 또 간이 샤워실과 간이 주방, 침실, 넷룸 등의 부대 시설까지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
제 1 이벤트 관리과 과장실에도 없었던 이 것들이 여기에만 들어선 이유는 지원이 부사장의 외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 승익이 시킨 일이 아니라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리부의 부장이 신경을 썼던 것이다.
"여러 번 느낀 것이지만 어떻게 진영씨가 저도 없는 사무실에 먼저 와 있는 거죠? 일 안 해요?"
지원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책상에 기대 앉아있는 진영을 보며 물었다. 진영은 빙긋이 웃었다.
"그야 부사장님이 얼마나 지원군을 아끼는지. 가서 잘 챙겨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어쩔 수 없죠."
"아버지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아이~ 꼭 그렇게 따져야겠어요? 여자에겐 원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라고요."
지원은 피식 웃으며 진영에게 다가섰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전 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한테 반하셨죠?"
"돗자리 깔아줄까요?"
"이왕이면 푹신한 물침대를 깔아주십시오. 은근한 조명과 음악도 깔아주시면 더 좋고."
진영은 깔깔거리며 웃더니 지원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안겨 들었다.
"옆에 물침대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침대가 있던데."
"그건 야근 대비용 간이 침대일 뿐이죠. 밤새면서 일하라고 명령하는 것보다 말없이 사무실 옆에 침실 만들어 준 것이 더 무섭더군요."
"무안하게 그런 식으로 거부하는 거예요?"
"진심이시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만."
진영은 더욱 크게 웃고는 지원의 얼굴을 끌어당겨 쪽하고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귀여운 지원군. 이런 애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호호."
지원은 쓰게 웃으면서도 태연하게 말했다.
"전 준비 완료입니다. 말씀만 하시죠."
"호호호. 담에 또 봐요. 지원군~"
진영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과장실을 나가 버렸다. 열린 문을 통해 저만치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지원은 립스틱이 묻었을 것이 뻔한 입술을 슥슥 문질러 닦으며 중얼거렸다.
"난 여자 복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없단 말야."
여자 경험이 꽤 많은 지원은 진영 같은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타고난 요염함과 미모 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꼬이지만, 그녀 자신은 이성에 별 관심이 없는 스타일. 장난은 잘 받아주지만 정작 유혹에 넘어오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넘어오게 만들어주지."
지원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곧 천장에 설치된 작은 은빛 박스가 그를 인식하고 인사를 건넸다. A.I 시스템이다.
[안녕하십니까. 지원님.]
"그래. 엠. 오늘 일정을 알려줘."
서 승익은 약간 고리타분한 성격인지라 꿋꿋이 인간 비서를 고집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A.I를 보조로 두게 마련이다. 게다가 지원에게 주어진 이 A.I는 일반적인 업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하급이 아니라 게임 내의 EM 업무까지 홀로 도맡아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기학습능력이 獵?최상급 A.I였다.
이 편리하고 대단한 A.I가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는 단 한가지. (주)테이머에서 말 그대로 돈을 갖다 퍼부은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에도 단 한 개만이 배정될 만큼 어마어마한 그 가격 때문이다.
[오후 12시 정각에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테스트 서버가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화상 메시지가 하나 와있습니다.]
"메시지? 열어봐."
곧 책상 위에 롤플레잉 프로젝트팀의 팀장인 조 기식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그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 과장. 오늘부터 서버가 열리는 것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즉시 일을 시작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동안 펑펑 놀았으니 이제 받아간 월급 값을 해야겠지만, 괜히 어설프게 일을 시작했다가는 우리가 힘들여 만든 에피소드의 이미지만 망친다. 일단 이벤트 1과의 홍 대리나 임 聆?같은 EM들을 따라다니면서 보고 배우고. 또 그들의 보조나 해라. 만약 혼자 이벤트를 열겠다고 설치면 가만두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