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16화 (16/74)

2. 오픈 베타 테스트

지원은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그가 비록 낙하산 인사로 들어온 햇병아리 과장이긴 하지만, 그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보조나 하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이미지를 망친다는 둥. 받아간 월급 값을 해야 한다는 둥. 하는 말이 모두 그의 자존심을 마구 깎아 내리는 것뿐이라서 더욱 화가 났다. 지원은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그냥 보고 넘길 정도로 성격이 좋지 못하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가만히 안 있지. 엠. 내가 전에 짜둔 이벤트 기획 리스트 출력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 기식의 화상 메시지를 지운 엠은 냉큼 이벤트 기획을 대신 출력시켰다.

지원은 느릿하게 리스트를 확인하며 그 중 적당한 것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조 기식을 엿 먹이기 위해서 아주 황당하고 엽기적인 이벤트를 확 벌려버릴 속셈인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아주 치사하게 수습함으로써 그에게 복수하려는 지원이었다.

"이게 좋겠군. 엠. Z12번 이벤트 세팅 준비해."

[Z12번 말씀이십니까?]

"그래."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지원님. Z는 폐기 처분할 이벤트 기획들을 구분한 약어입니다.]

"내가 말한 것은 바로 그 Z12번이 맞아."

[재차 묻게 되어 죄송하지만 진심이십니까?]

"너도 날 무시하냐? 하라면 해!"

엠은 자기 학습형 상급 A.I답게 자기 생각과 거부를 표현할 줄도 알았지만, 마스터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Z12번. 세팅 준비하겠습니다.]

사실상 지극히 정상적(?)으로 열심히 일해 보려던 지원이다. 하지만 조 기식의 메시지를 보자 그는 생각이 확 달라졌다. 일명 청개구리 심보다.

"빽으로 들어온 놈이 그렇게 보기 싫다면 철저하게 그 빽을 이용해줘야 인지상정 아니겠어? 하하하."

지원은 아주 기분 좋게 웃었지만, 그 순간 에피소드의 서버가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어느 플레이어가 알 수 없는 오한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고 한다.

왜?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초조하게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테스트 서버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테스터들만이 아니었다. 여기 (주)테이머의 직원들 대부분도 그랬고 제 2 이벤트 관리과 과장실에 있는 지원도 그랬다.

[70. 69. 68. 67. 66. 65......]

엠이 불러주는 카운터 다운을 들으며 지원은 캡슐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과장실 옆 넷룸 안에 존재하는 이 캡슐은 EM 전용. 그것도 지원 전용으로 특수 제작된 것이었는데, 여기엔 자체 이벤트 세팅 툴(Event Setting Tool)이 탑재되어 있으며 GM 전용 툴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수 기능으로는 일반 플레이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자동 하이딩(Hiding:은신)기능과 운영자 신분 보호를 위해 접속시의 외모를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지원이 한때 장난삼아 테스트해봤더니 성별까지 변환이 가능했다.

원래 가상 현실 접속시 자신의 본래 외모를 아주 약간이라도 변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흉터 하나까지도 그대로 가상 현실 속에서 보여진다는 얘기다. 애초에 일반적으로 보급되는 캡슐들이 그런 의도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익명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EM 전용 캡슐은 그 것이 가능하도록 특수 제작되었고, 지원은 그 기능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변신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고 지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9. 8. 7. 6. 5. 4......]

지원은 EM 전용 캡슐이 접속 시 가져다주는 고통을 예상하면서 몸에 힘을 풀었다.

[3. 2. 1...... 서버가 오픈 되었습니다. 에피소드에 접속합니다.]

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원은 작은 바늘 같은 것이 온 몸을 마구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다음 순간 무언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이 밝아졌다. 접속된 것이다.

"이건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군. 콕콕 쑤시는 것은 그나마 괜찮은데 뒤통수 맞는 느낌이 영 안 좋단 말야."

지원은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혼잣말에 함께 접속한 엠이 냉큼 대꾸했다. 물론 엠은 형체가 없었다.

[이벤트 세팅 툴과 지엠 전용 툴이 동화되는 과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원님.]

"나도 알아. 엠."

퉁명스럽게 대꾸한 지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곳은 푹신해 보이는 소파와 각종 편의시설들이 갖춰진 EM 전용 휴게실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올 수 없는 장소다.

[지원님. 정식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우선 이벤트 마스터 닉네임을 정하셔야 합니다.]

지원은 다른 GM들이나 EM들에겐 본명 외의 닉네임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가끔 부려먹던 1과의 박 대리도 에피소드 안에선 EM 대니라고 불렸다.

"다이......"

[다이로 하시겠습니까?]

지원은 픽 웃으며 말했다.

"아냐. 다크로 한다."

자신이 좀 사악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지원이었기에 다이(Die:죽음)나 다크(Dark:어둠)같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EM 다크님. 앞으로 에피소드 내에선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지원. 아니 다크는 현재 그의 모습을 살폈다. 외모 변형을 하지 않았기에 얼굴과 체형은 본래 모습 그대로였고, 복장은 EM 기본 복장인 금빛 로브와 화려한 황금빛 마스크였다. 로브 가슴 부분에는 EM 이라고 써진 뺏지가 매달려있었다.

"엠. 이번 테스트에서 가장 많은 유저들이 접속한 장소는?"

[이번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곳은 바티안 제국입니다. 유저들은 백 스토리에 따라 제국의 여러 도시로 각기 나뉘어져서 시작됩니다만. 수도인 자이렌의 중앙 광장에서 가장 많은 유저가 접속되었습니다.]

"좌표는?"

[T2723. V4682. T3217. H2144입니다.]

다크는 엠이 불러준 좌표로 이동 명령어를 사용했다. 지엠 전용 툴이 이미 그와 동화되어 있었기에 굳이 말로 할 필요 없이 생각만으로 명령어 사용이 가능했다.

곧 그는 바티안 제국의 수도인 자이렌의 중앙 광장으로 이동되었다.

연신 시원해 보이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와 그 것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광장. 발 디딜 틈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유저들로 가득 찬 그 곳은 첫 접속으로 인해 잔뜩 들뜬 분위기라 무척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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