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베타 테스트
하지만 그 누구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좀 특이한 모습의 다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EM 의 하이딩 기능이 작동되어 그의 모습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그가 있는 곳을 손으로 더듬는다해도 다크를 건드릴 수 없다. 다크가 원한다면 만질 수 있지만 말이다.
다크는 한 여성 유저의 가슴에 불쑥 손을 집어넣고 휘저어보았다. 분명 눈에는 가슴을 관통한 자신의 손이 보였지만 그냥 허공을 더듬는 듯 아무 느낌도 없었다.
"이런 것도 꽤 재미있네."
다크는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몸을 마구 통과하며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자신들의 몸을 누군가 꿰뚫고 지나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마냥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 다크는 킥킥거리며 웃다 바로 그의 옆에서 떠드는 두 명의 남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프닝 정말 죽이더라. 너도 봤지? 그 거대한 드래곤 떼거리라니."
"클로즈 때 했던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그 오프닝이 메인 스토리의 시작이래."
"그래? 그럼 우린 그 드래곤들하고 싸우는 거야?"
"뭐 어떻게 하든 우리 꼴리는 대로하면 된다고 들었어."
"그럼 난 싸우기보단 그 드래곤들하고 친해져야겠네. 무적일 거 아냐?"
"그래? 그름 난 뭐하지. 그 사라졌다는 해츨링이나 찾아 다녀볼까?"
다크는 이번 오픈 베타 테스트의 메인 스토리를 떠올렸다. 드래곤 족의 로드인 골드 드래곤 드칼세인. 그의 해츨링이 바티안 제국으로 놀러왔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래서 전 드래곤 족이 그 해츨링을 찾아 바티안 제국으로 들어섰다...... 라는 것이 이번에 주어진 메인 스토리의 소재였다.
유저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벤트 1과 설정상 그 해츨링은 인간계 탐험! 이라는 시답지 않은 이유로 가출한 것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된 고전 판타지 소설들에서 그 소재를 따왔다나?
"뭐, 나랑은 상관없나?"
개인별 이벤트 서비스가 임무인 다크는 메인 스토리와 연관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당연한 중얼거림이다.
"엠."
[네. EM 다크님.]
"Z12 번 이벤트에 적합한 백 스토리를 가진 유저를 찾아."
[알겠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니 기다려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다크는 문득 이 많은 유저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GM 과 달리 숨어 다녀야 한다는 규칙도 없으니 언젠가 한번 해보려한 일이다.
충동적인 결론에 대한 행동은 빨랐다. 다크는 간단한 손짓 한번으로 하이딩 상태를 풀어버린 것이다.
"헉! 영자닷!"
"뭐. 뭐지? EM? GM 인가?"
광장 중앙에 난데없이 나타난 금빛 마스크를 쓴 사람. 나 운영자요~ 라고 소리치는 듯한 다크의 특이한 복장에 광장에 있던 유저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나 게임마스터는 처음 봐!"
"저기요. 정말 운영자 맞아요?"
"안녕하세요. GM님!"
"영자다. 영자! 칼. 피트. 이리 와바! 여기 영자 떴어!"
"이봐요. 겜마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다크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제각각의 호칭과 인사. 질문 공세에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그도 어느 정도 놀란 반응은 예상했지만 이런 강렬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 저기......"
다크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의 말은 주변 유저들의 목소리에 깨끗이 파묻혀 버렸다.
"가까운 곳에 제일 괜찮은 던전이 어딘가요?
"여기 좀 봐주세요. 영자님!"
"GM님. 여기 하늘 날 수 있는 직업도 있다던데 그게 뭐죠?"
"겜마들은 모두 그런 옷을 입나요? 그 마스크 참 탐나는데 그거 저 주심 안대요?"
"마스크. 마스크를 벗어봐요! 운영자님! 얼굴을 보여주세요!"
가히 연예인이 부럽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였다. 인기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으윽."
다크는 귀가 멍멍해지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건 수백, 아니 수천 명은 되는 것 같은데. 그런 많은 인원이 주변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니 당연한 일이다.
"모두 잠시만 조용! 조용히 좀 해봐요!"
다크의 커다란 외침에도 불구하고 겨우 십분의 일 정도가 입을 다물었을 뿐. 나머지 유저들은 여전히 떠들어댔다. 다크는 이 골치 아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EM 다크님. 모습을 감추시고 다니시는 편이 이롭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뒤늦은 엠의 충고에 살짝 이를 간 다크는 지엠 전용 툴을 불러 들였다. 그와 동화되어 간단히 생각만으로 불려진 지엠 전용 툴은 그의 눈앞에 그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창을 띄웠다. 여러 가지 메뉴 중에서 몬스터 소환(Monster Summons)을 선택한 다크는 엠에게 메모를 보냈다. 그냥 말하면 주변의 유저들이 듣게 되기 때문이다.
[엠. 서큐버스 코드 불러봐.]
서큐버스. 흔히 몽마(夢魔)라고도 불리는 여성형 악마다. 꿈속에 나타나 남자들을 유혹해 그 정기를 빨아먹는다고 한다.
[G71T9 GP092입니다.]
엠이 불러준 몬스터 코드를 입력하자 몬스터가 소환될 장소의 좌표 입력 화면이 떠올랐다. 다크는 수동을 선택한 다음, 눈앞에 떠오른 위치 선택 커서를 손으로 잡아 움직여 광장 중앙 분수대 꼭대기에 쿡 찍었다.
갑작스레 다크가 손으로 분수대 쪽을 가리키자, 주변 유저들의 눈길이 하나둘 그리로 돌아갔다.
"오호호호홋!"
그 순간 분수대 꼭대기에 반쯤 벗은 서큐버스가 요염하게 몸을 비틀며 나타났다.
"헉! 웬 추워 보이는 여자가? NPC인가?"
"아냐. 저건 몹이야. 검은 날개가 있잖아."
"서큐버스잖아. 서큐버스!"
"몸매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