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베타 테스트
대부분의 유저들이 모두 분수대쪽으로 관심을 돌리자 다크는 그 틈에 얼른 하이딩 기능을 다시 작동시켰다. 순간 다크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앗! 영자님 가버렸다!"
"뭐야. 대답도 안 해주고."
"정말 운영자 맞아? 이벤트의 일종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우선 저 몹부터 잡아보자!"
"잡긴 뭘 잡아! 보기 좋구만! 눈요기하게 가만 내버려둬!"
다크는 여전히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유저들을 뒤로 한 채 얼른 광장을 벗어났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군."
어느 한적한 골목길 안 쪽까지 도망쳐온 다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GM 규칙에 유저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와 인사를 다 받아 주다보면, 일은 하나도 못한 채 날이 새 버릴 테니 말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과 신경을 집중한다는 것이 약간 기분 좋기도 한 다크였다. 그러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EM 다크님. 적절한 유저 검색이 완료되었습니다.]
엠의 말에 다크는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 어느 건물 벽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띄워봐."
곧 그의 눈앞에 여러 개의 유저 정보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메인 스토리와 전혀 연관이 없는 백 스토리에 미성년자이며 평균적인 외모 이하의 남성 유저. 적절한 대상으로 판단된 유저는 총 89881명이며. 그 중 EM 다크님의 현재 위치와 가장 가까운 유저 열 명을 추려보았습니다.]
다크는 가만히 리스트의 유저들을 살피다 어느 멍한 눈빛의 한 유저를 손으로 지목했다.
"이 녀석으로 하자. 가장 어리버리해 보이는군."
그가 지목한 유저는 현재 나이 열네 살의 강 지훈. 에피소드 내의 이름으로는 케인이었다.
[건방지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EM 다크님의 행동은 EM 규칙에 어긋남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진짜 건방진데?"
엠은 전의 주인들과 달리 이번 주인은 좀 남다르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그걸로 끝이었다. 자기 학습형이긴 하지만 아직 감정이란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한 가지 말해주지. 힘없는 자에겐 몰라도 힘있는 자에게 규칙이란 어기고 싶으면 어겨도 상관없는 것이란다. 엠. 기억해둬."
[알겠습니다.]
엠의 정중한 대답을 대충 흘려들은 다크는 다른 유저들의 정보를 모두 끄고, 그가 선택한 케인의 정보만을 활성화시켰다. 가장 먼저 그의 위치 좌표를 확인한 그는 이동 명령어를 사용했다. 곧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다크가 도착한 곳은 수도 외곽의 낡은 대장간.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지는 화로와 모루 등이 구석진 곳에 자리해 있고, 벽에 걸린 각종 무기들과 도구들이 불빛에 반사되어 번뜩이고 있는 곳이었다.
"아저씨. 이거 너무 비싸요. 좀만 깎아주세요오. 네?"
"안 된다니까."
다크는 말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대장장이 NPC와 그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칭얼거리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그가 목표한 케인이다.
"후웅. 이거 사고나면 거지 되는데."
케인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별 수 없이 대장장이 NPC가 부른 가격을 지불하고 삽과 곡캥이를 받았다. 그 모습에 다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백 스토리를 제대로 설정해두면 그에 맞는 기본 장비는 다 주어지기 때문이다. 전사면 검과 갑옷 등이. 마법사에겐 마법책과 로브식으로 말이다.
의아함에 케인의 정보를 살펴본 다크는 그가 전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템 가방을 살펴보자 롱소드와 체인 메일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그런데 삽과 곡캥이를 사다니?
"하아. 내가 왜 전사를 선택했을까. 대장장이가 더 재미있어 보이는데."
케인의 혼잣말에 상황을 알게 된 다크는 피식 웃었다. 케인은 설정해둔 백 스토리를 무시하고 다른 직업을 희망하게 된 것이다.
"웃차. 그럼 광산에 한번 가볼까."
케인은 곧장 대장간을 나섰고, 다크는 그런 그의 뒤를 쫄랑쫄랑 따르며 이벤트 세팅 툴을 활성화시켰다.
간단히 케인의 어카운트 넘버(Account Number:계정 번호)를 입력하고 기획해둔 Z21을 대입시키자, 곧 이벤트 온 스위치가 다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이제 저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Z21 이벤트가 발동되는 것이다. 이 이벤트를 미리 기획해 두지 않았다면 일일이 상황과 NPC를 설정해야했겠지만, 이미 만들어둔 기획이 있었기에 간단히 끝났다.
"그럼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네. 케인군. 물론 당연히 즐겁겠지만. 후후."
지원은 음흉하게 웃으며 이벤트 스위치를 꾸욱. 아주 꾸욱 눌렀다.
순간, 길 저편에서 커다란 마차가 하나 갑자기 생성되더니 케인을 향해 달려왔다.
"얼레?"
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섰다. 마차는 그런 그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다 문득 멈춰 섰다. 케인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마부의 눈길에 왠지 오싹함을 느꼈다.
"왜...... 그러세요?"
그때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며 두 개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손은 케인의 멱살을 덜컥 잡더니 그대로 마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우아앗!"
케인의 모습은 순식간에 마차 안으로 사라졌고, 곧 마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마차를 몰아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다크는 어느새 마차 지붕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에게는 그가 만들고 실행한 이 대망의 첫 이벤트를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