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베타 테스트
그렇게 자신을 한껏 무시했던 조 기식 팀장에 대한 복수극을 마친 지원은 발걸음도 가볍게 넷룸으로 이동했다.
"그럼 다시 업무로 돌아가 볼까나. 아, 난 정말 성실한 것 같단 말야?"
지원은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에피소드에 접속했다. 여전히 접속 장소는 EM 전용 휴게실이었는데, 이번엔 아까와 달리 1과의 다른 EM들도 다수 있었다.
다크의 모습이 휴게실 중앙에 나타나자 그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일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앗! 서 과장님!"
박 대리, 즉 EM 대니가 얼른 달려오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활동 시작하셨죠? 헤헤. 제가 뭐 도울 일은 없나요?"
다크는 탐탁지 않은 내심을 감추며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아직은 그다지 부탁드릴만한 일이 없네요. 전 그럼 업무 때문에 이만......"
간단히 그렇게 대답한 다크는 곧장 바티안 제국의 수도 자이렌으로 이동했다. 중앙 광장의 좌표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엠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여전히 시끌벅적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에 도착한 다크는 느긋하게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그럼 다음은 어떤 이벤트를 해볼까."
사고는 한번 쳤으니 이번엔 지극히 정상적으로 일을 해보려는 다크였다.
그런 그의 앞을 막 지나쳐 가는 어느 유저. 문장이 새겨진 은빛 망토에 허리엔 멋들어진 롱소드를 비껴 차고 있는 한 기사를 보게 된 다크는 순간 눈을 빛냈다.
"호오. 이게 누구야?"
그가 라크세인의 블러드 나이츠 길드를 운영할 때 데리고 있었던 수하. 바로 부길마 로이드였다.
다크는 이 대단찮은 우연에 기뻐하며 냉큼 로이드의 뒤를 쫓았다. 로이드도 게임 폐인 축에 속했으니 에피소드까지 손을 뻗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필 첫날부터 다크의 눈에 띈 것은 조금 불행한 일에 속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크는 로이드의 뒤를 쫓으며 그의 유저 정보를 살폈다. 이름은 라크세인과 마찬가지로 로이드였고 백 스토리를 대충 훑어보니 바티안 제국에 소속된 열 개의 기사단 중 최하급. 브론즈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였다.
"좋아. 그동안의 안면을 생각해서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줘야겠지? 후후."
다크의 혼잣말이 끝나는 순간, 로이드는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아, 아까도 이러더니 또 이러네? 감기라도 걸렸나......"
이런 오한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테스트 서버 오픈을 기다리다 오한에 떨었던 어느 유저가 기억나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가자.
어느덧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로이드는 그가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다. '머리 세 개 달린 표범'이라는 이름을 가진 근사한 펍(Pub:주점)이었다.
"여~ 로이드! 이 쪽이야!"
그의 친구인 듯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그를 불렀다. 곧 로이드는 그의 테이블로 다가가 앉았고, 다크는 슬며시 그 옆 테이블에 기대섰다. 물론 언제나와 같은 하이딩 상태이기에 그들은 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좀 알아봤어?"
"응. 그런데 왕궁에는 별다른 힌트가 없더라고. 들은 얘기라고는 기껏해야 몇몇 드래곤의 이름뿐이었어."
둘의 대화를 들으며 다크는 덩치 큰 남자의 유저 정보를 슬쩍 보았다. 이름은 힐. 꽤 이름이 알려진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백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어디 가서 그 놈의 드래곤들을 찾지?"
"글세...... 도시의 모든 NPC들과 다 대화를 나눠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계속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죄다 메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 다크는 그들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려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피소드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거의 완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거의'다. 그런데 완벽하게 완성된 캐릭터로도 힘든 드래곤 슬레이어를 꿈꾸다니. 다크는 피식 웃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재미있는 녀석들이로군. 엠. 이벤트 기획 목록 출력해봐."
곧 다크의 눈앞에 목록이 좌르륵 펼쳐졌다. 그는 그 중 보상이 있는 퀘스트 스타일 이벤트를 고르기 시작했다. 드래곤 사냥은 메인 스토리와 연관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못 시켜주지만, 로이드가 드래곤을 사냥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이나 하나 얻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래?오랫동안 그의 밑에서 고생한 대가로 말이다.
그야말로 운영자의 편애랄까. 아는 사람이라고 특혜를 주는 이 것도 엄연히 규칙 위반이건만 다크는 그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아예 신경을 안 쓴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보상이 좀 큰놈으로...... 흐음."
A에서 X까지 수많은 이벤트 기획들이 있었지만, 다크는 자기도 모르게 가장 아래쪽의 Y와 Z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Y는 보류 중인 이벤트 기획이고 Z는 폐기 처분 예정인 기획이다.
"...... 아냐. 이번엔 정상적으로 해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 먹은 다크는 가장 보상이 높은 S쪽의 기획들을 검토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Y쪽의 기획을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나란 놈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성격이로군. 제대로 일하기로 결심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애초에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겠는가. 게다가 사고만 안 나게 하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해 버리는 그였다.
다크는 힐과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고 있는 로이드를 흘깃 쳐다보고는, 조금 황당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Y45번 이벤트 기획을 선택했다.
"로이드. 미안하지만 고생 좀 해라. 그래도 그 대가는 두둑할 거다."
전혀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미안한 척을 한 다크는 곧장 말을 이었다.
"엠. Y45번 이벤트 세팅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