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22화 (22/74)

2. 오픈 베타 테스트

[EM 다크님. Y45번은 폐기 보류중인 기획입니다만. 그래도 실행하시겠습니까?]

"물론."

엠은 이미 한번 겪어봤기 때문인지 더 이상 기획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Y45번 세팅 준비하겠습니다.]

기획을 실제 이벤트 세팅 툴에 적용할 수 있는 코드로 변환하는 것이 바로 엠이 하는 준비였다.

잠시 후, 변환이 완료되었음을 엠이 알려오자 다크는 이벤트 세팅 툴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이벤트 NPC의 대사를 약간 수정하고, 로이드의 어카운트 넘버와 Y45를 입력함으로 간단히 세팅을 끝냈다.

곧 이벤트 온 스위치가 깜박거리며 떠올랐고 다크는 이벤트를 실행할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바로 힐과 로이드가 헤어지는 때를 말이다.

"좋아. 그러면 흩어져서 NPC 들에게 정보를 모으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펍을 나선 힐과 로이드. 그들은 다크가 바라던 대로 각자 동쪽과 서쪽을 분담하기로 하며 흩어졌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다크는 느긋하게 로이드의 뒤를 따르며 이벤트 온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커다란 망토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중년 남자가 로이드 앞에 나타났다. 입가에 맺힌 음흉한 미소와 과도하게 번뜩이는 눈빛. 이번 퀘스트 스타일 이벤트에서 로이드에게 퀘스트의 힌트를 주게 될 NPC인 가가헬이다. 사실 다크의 짓궂은 장난기로 인해 탄壎?인물이기도 하다.

가가헬은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덥석 로이드의 팔뚝을 붙들었다.

"이봐. 자네."

"네?"

로이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춰 섰다.

"자네 말이야. 정말 멋진 망토를 가지고 있군. 혹시 나와 동업을 해볼 생각 없나?"

"에? 무슨 말이죠?"

"훗. 말로 아무리 설명해봐야 헛일! 직접 보여주지. 사나이의 로망을!"

가가헬은 파이팅 포즈로 그렇게 말하곤, 칭칭 감고 있던 망토를 갑작스레 등뒤로 확 젖혔다.

"헉!"

로이드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작 물러나고 말았다. 햇빛을 별로 받지 못한 듯한 가가헬의 허연 살결과 볼록 튀어나온 배. 결정적으로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무언가가 적나라하게 보인 것이다.

바로 알몸이란 얘기다.

"어떤가. 정말 멋진 몸매이지 않나? 이 멋진 모습을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보여주어 그녀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일! 그게 바로 내가 하는...... 꽥!"

로이드는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그의 거시기를 걷어 차버렸다.

"꺽. 꺽. 끄어어......"

가가헬은 억눌린 비명을 내지르며 그 곳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유저와 달리 NPC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이다.

"뭐야. 이 변태 놈은? 죽고 싶냐? 앙?"

로이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쓰러진 가가헬을 꾹꾹 밟았다. 좀 대범하지 못한 면이 있긴 하지만 블러드 나이츠의 부길마를 맡을 정도의 그다. 다크만큼은 못해도 충분히 난폭하다는 말이다.

"내. 내가 뭘 어쨌다고?"

"닥쳐! 이 미친놈아! 눈 버렸잖아!"

로이드의 발길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가가헬은 로이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며 빌었다.

"사......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오."

로이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 플레이어야. NPC야?"

"목숨만 살려 주시면 제가 좋은 것을 드릴게요. 아주 좋은 거예요. 그러니 제발......"

"묻는 말부터 대답을 해."

"그게 뭐냐하면요. 제가 얼마 전에 길에서 주운 건데."

"누가 그딴 거 물었어?"

"어떤 위치가 그려진 지도이지요."

이어지는 동문서답에 로이드는 그제야 가가헬이 NPC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다크는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자동 진행 이벤트의 한계. 그리고 이벤트용 최하급 NPC의 한계다. 유저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예상해 보면서 대화를 설정하긴 했지만, 가끔 이렇게 어긋나 버릴 때도 있는 것이다. 허나 이미 이벤트가 시작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다크는 다시 이벤트 진행 상황에 집중했다.

그때 로이드는 이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개인 이벤트임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굴러온 복을 걷어차고 있었다.

"지도든 뭐든 너 같은 놈은 남자 망신이야. 죽어!"

상대가 NPC임을 알게된 로이드는 아무 거리낌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유저를 죽이면 당장 경비병이 달려오지만 NPC는. 특히 이런 악 성향의 NPC는 죽여도 수배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아차 싶은 다크가 막 그를 막으려고 하려던 찰나, 로이드는 손에 든 검을 그대로 내리쳐버렸다.

"아악!"

단 한마디 비명만을 남기고 허무하게 잘려버린 가가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다크는 허탈함에 힘이 죽 빠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지도나 받고 죽일 것이지. 이렇게 되면 실패잖아?"

아니나 다를까. 다크의 눈앞에 이벤트 실패를 알리는 알림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로이드 놈. 성격 한번 더럽네."

자기 성격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다크였다.

"제기랄. 다른걸 또 해야하잖아? 엠. 이벤트 기획 목록 다시 띄워!"

곧 목록이 떠올랐고 연신 투덜대며 그걸 살피던 다크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굳이 수준 낮은 A.I의 NPC들에게 시킬 필요 없이 그가 직접 상황을 연기한다면? 우선 아까 같은 동문서답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상황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지금과 같은 어이없는 실패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래. EM 전용 캡슐의 외모 변환 기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싸늘하게 웃은 다크는 재빨리 적당한 이벤트 기획을 찾아보았다. 곧 취향에 딱 맞는 보상 이벤트 하나를 발견한 그는 곧장 말을 이었다.

"엠. D11번 세팅 준비해. 그리고 외모 변환도."

[알겠습니다.]

다크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로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나도 한번 즐겨 볼까나...... 후후."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오한에 떤 로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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