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24화 (24/74)

2. 오픈 베타 테스트

"이제야 조용해졌군."

그렇게 간단한 말 몇 마디로 로이드의 입을 막아버린 다크는 기분 좋게 웃었다.

"자, 그럼 실험을 시작해 볼까?"

다크는 싱글벙글 웃으며 벽장 안에 나란히 놓여있는 수백 개의 약병들 중 몇 개를 꺼내들고 로이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멍해있는 그의 입에 약병 중 하나를 대고 들이부었다.

"우엑. 캑캑."

그 지독한 쓴맛에 겨우 정신을 차린 로이드는 얼른 물약을 뱉어냈다. 그러자 다크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순순히 마셔. 안 그러면 안 좋은 꼴을 당하게 될 거야."

로이드는 그런 다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벤트든 뭐든 저런 수상하고 맛없는 액체를 먹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다크는 각본대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벽에 걸린 요상한 깔때기 같은 것을 가져오더니 로이드의 입에 쑤셔 넣은 것이다. 로이드는 이를 악물며 버티려 해보았다. 허나 다크는 집요하게 이빨 사이를 비집었고, 결국 그 깔때기는 로이드의 입안으로 들어가 고정되었다.

그때부터 로이드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럼 먼저 이 것부터."

다크는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약병 중의 하나를 들어 깔때기 입구에 들이부었고, 당연히 그 병 안에 든 액체는 로이드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로이드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물약을 삼켜야만 했다.

왜? 게임 시스템상 고통은 느끼지 못하지만 맛은 느낀다. 그런데 이 물약의 맛은 입안에 머금고 있기엔 너무 괴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떫은맛이라니......

다크는 물약을 마신 로이드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간간이 뭔가를 메모하는 척 했다. 마치 자기가 만든 물약을 먹이고 그 결과를 보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또 다른 물약을 들이부었다. 이번엔 소금 덩어리처럼 짜디짠 것이었고, 로이드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꼴깍 삼켰다. 그런 로이드의 괴로워하는 표정에 다크는 킥킥대며 즐거워했다. 직접 만든 이벤트이지만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성격에 딱 들어맞는 배역인 것이다.

실험은 계속되었다. 로이드는 쓰고 짜고 맵고 시고 떫은. 온갖 다양한 맛의 물약을 시음해야 했고, 그로 인해 신체에 여러 가지 묘한 반응이 일어났다. 체력이 갑자기 팍 떨어지는가 하면 온 몸에 붉은 반점들이 우수수 솟아났다 사라졌다. 머리칼이 갑자기 확 길어지기도 했고 퓟寬?눈처럼 새하얗게 변하거나 검게 변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결국 맛없는 물약으로 포만감까지 느끼게된 로이드는 울상을 지었다. 무슨 놈의 이벤트가 이러냐면서 말이다. 아니, 정말 이벤트가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플레이어를 위한 이벤트라면 즐거워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로이드의 생각과 달리 이런 이벤트도 분명 존재한다. 유저에게 그냥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이벤트와 보상을 주기 위한 이벤트는 다르니 말이다. 다크로서는 대놓고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기에 어쩌면 이런 보상 이벤트를 선호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한참 후, 총 팔십 병의 물약들을 모두 로이드의 입에 퍼부은 다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구나. 저번 실험체는 삼십 병도 못 먹고 죽어 버려서 아쉬웠단 말야."

로이드는 다크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웁웁웁웁. 웁웁 웁웁 웁웁!(빌어먹을.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깔때기에 입이 막혀 말은 요런 식으로 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크는 그런 그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며 조금 더 괴롭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적당히 해야했다. 괜히 흥이 돋아서 실컷 했다가는 당장 회사에 항의가 들어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크는 이제 슬슬 이번 이벤트의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음산하게 말했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실험에서 살아남았으니 돌려 보내주마. 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이. 크크크."

배역과 실제 성격이 너무나 잘 들어맞았기에 실감나는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다크. 그는 로이드의 입에 고정된 깔때기를 뺌과 동시에 그를 원래 자리로 이동시켰다.

"잘 가라. 애송이. 잘 먹고 잘 살길 바란다~"

"죽여 버......"

마지막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한 로이드의 모습이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이벤트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알림이 떠올랐고 다크는 벽에 기대서며 웃었다. 초반에 실패는 했지만 어떻게 되었든 그의 두 번째 이벤트가 끝난 것이다.

그때 막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온 로이드는 갑자기 뜬 알림창을 보고 놀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 한다. 바로 각종 능력치가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힘은 삼십 가량이 올랐고 민첩은 십 오 가량이 올랐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마법 저항력이 사십 퍼센트나 오?것이다.

"뭐. 뭐야. 이 갑작스런 상승은?"

그러나 로이드는 곧 그 이유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방금 겪었던 지독한 이벤트. 흑마법사가 그에게 행한 약 실험 때문에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것을 말이다.

로이드는 화를 내려다 멈칫한 상태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런 이벤트를 반가워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게 EM 다크의 역사적인 첫 활동 시작. 즉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테스트 첫 날이 지나갔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한 사람을 내버려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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