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25화 (25/74)

2. 오픈 베타 테스트

2178년 10월 16일.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테스트 서버가 열린 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 여섯시. 지원은 전날부터 계속된 엠의 재촉과 거듭된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반 억지로 캡슐을 나왔다. 매 분마다 로그아웃하라는 말을 하니 지원이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일에는 지원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엠이었지만 이번 일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주인의 건강까지 챙기도록 프로그래밍된 엠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지원이 지난 삼일 내내 한 숨도 자지 않은 채 에피소드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지원이 일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원이 그동안 침식도 잊은 채 이십여 개의 이벤트를 벌리고 진행했던 것은 단지 그게 재미있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이용해 실컷 놀았다고나 할까. 자기 취향에 맞는 보상 이벤트들을 제멋대로 진행하는데 몰두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는 얘기다.

[지원님. 우선 수면과 영양 보충이 가장 시급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지원은 지겹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간이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간단히 샌드위치와 우유로 끼니를 때운 그는 얼른 샤워를 하고 다시 침실로 이동했다. 사실 침실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불릴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저 작고 좁은 방안에 일인용 침대 하나가 덜렁 놓여있을 湛甄?말이다.

[최소 8시간은 주무셔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엠의 정중한 말에 지원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너무 똑똑한 것도 어쩔 때는 귀찮군."

[무슨 말씀이신지?]

"아냐. 아무 것도."

지원은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지난 삼일동안 벌렸던 이벤트들을 떠올렸다. 그러다 피곤했긴 했던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한참 달콤하게 자던 지원은 누군가 그의 몸을 세게 흔드는 것을 느꼈다. 약간 짜증이 일기는 했지만 당연히 그의 어머니일 것이라 생각한 그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하지만 억지로 눈을 뜬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주 진영이었다.

"잘 잤어요?"

그제야 자신이 과장실에서 잠들었다는 것을 생각해낸 지원은 멍한 시선으로 진영을 잠시 바라보다 상체를 일으켰다.

"끄응...... 진영씨가 꼭두새벽부터 웬일이에요?"

진영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새벽이라니요. 지금 아침 열시예요. 출근 시간이자 업무 시작 시간이라고요~"

네시간 전에 잠든 지원으로서는 당연히 새벽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진영은 지원의 부스스한 머리칼을 손으로 정돈해주며 말했다.

"요즘 너무 열심인 것 아녀요?"

"제가 원래 좀 부지런해서요. 회사를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건데 뭐가 아깝겠습니까."

지원의 천연덕스런 거짓 대꾸에 진영은 피식 웃었다.

"글세. 그게 정말 회사를 위해서일까요? 그리고 내가 말한 열심은 일이 아니라 너무 열심히 노는 것 아니냐는 거랍니다."

"...... 진영씨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군요."

"호호. 그래도 부인은 안 하네요?"

"원래 일도 놀이처럼 하면 더 즐겁고 능률이 오르는 법이죠."

진영은 입을 삐죽이더니 지원의 팔뚝을 슬쩍 꼬집었다.

"말은 잘해요. 말은."

"말만 잘합니까? 그 외에도 잘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특히 여자 꼬시기를 잘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진영의 어깨를 감싸안는 지원이었다. 하지만 진영은 그런 지원의 손을 슬쩍 치우더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네. 지원군은 잘하는 것이 많죠. 그만큼 똑똑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 이건 모든 직장인들의 희망사항이랍니다. 실제로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꿈이죠. 하지만 지원군은 대충 이뤘죠? 막강한 힘과 권한을 가지고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게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지원은 진영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의아해했다. 그가 그러던 말든 진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지원군에게는 몇 가지가 빠져 있어요. 취미를 즐기는 것은 좋아요. 지원군 말대로 일도 놀이처럼 즐겁게 한다는 것. 아주 좋은 거지요.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단지 그게 '직업'이며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아예 빠져 있지만 않다면 말이에요."

그제야 지원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점을 눈치챘다.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대로 일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진영은 지원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엉뚱한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라크세인이란 V.M.G에 말이에요. 지금은 없지만 블러드 나이츠라는 거대 길드가 있었어요. 아무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강대한 집단이었죠."

지원은 뜨끔하며 진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살포시 웃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 길드의 길마가 '다이'라는 남자였는데. 난 그 사람의 활약이 참 인상깊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오로지 자신의 길드만을 위해 노력하던 그 모습...... 악명이 자자하게 퍼지고 실컷 욕을 먹었지만 그게 다 길드와 길드원들에게는 엄청난 이痼막?돌아왔거든요. 게다가 그를 욕한 것은 그와 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 사람들일뿐. 길드 내에선 거의 신처럼 추앙 받았답니다."

지원은 자신이 '다이'임을 그녀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모르고 그냥 우연히 얘기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 말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지원은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언제부터. 어떻게?"

진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지원군의 플레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부사장님께 드리는 것이 제 주요 업무 중 하나였거든요. 아마 지원군이 처음 라크세인을 시작할 때부터일걸요?"

"...... 아버지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