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픈 베타 테스트
"네. 부사장님의 지시였죠. 지금껏 부사장님은 지원군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답니다. 하나뿐인 아들. 그것도 너무 영악해서 으스러지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요 근래 EM 활동도 계속 지켜보고 계척歐楮?"
그동안 라크세인에서 해왔던 수많은 악행들을 떠올리며 지원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난감한 심정이 되었다. 그걸 누군가. 그것도 아버지가 내내 지켜보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진영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길드와 회사. 많이 틀리지만 어떻게 보면 비슷한 점도 있어요. 게임 내에서의 길드는 커뮤니티 성향이 짙지만 원래 길드란 말의 유래자체가 중세의 동업자 집단을 지칭하니까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란 부분이 비슷하지요."
"그런데요?"
"이번엔 길드 마스터가 아니라 이벤트 마스터이지만. 난 지원군이 길드를 키워냈듯이 에피소드를 잘 키워내서 회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요. 길드 내에서 동경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듯이 회사에서도 그래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길드 운영할 때 필요 없? 오히려 길드에 해가 되는 길드원은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하죠. 지원군?
물론 지원군이 지금 회사에 해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될 지도 모르잖아요. 여자 NPC의 속옷을 훔쳐오게 하는 퀘스트 스타일 이벤트는 그나마 눈이라도 즐거웠겠지만. 흑마법사에게 납치되어 실험 당하는 보상 이벤트 같은 것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요. 유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보상에만 눈이 멀어 계속 참지는 않을 테니까요."
지원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진영은 그를 설득하고 또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지금처럼 계속 하다가는 언젠가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가 심각한 표정이 되자 진영은 분위기를 전환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힘껏 발돋움을 하여 지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아, 난 왜 이렇게 말을 잘 할까요. 그러고 보니 지원군이랑 비슷하네요. 어때요. 지원군. 나 남자 꼬시기도 잘할 것 같지 않아요?"
지원은 과장된 진영의 말과 행동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게다가 상황이 아무리 심각해도 그는 걸어오는 농담과 기회를 거부하는 사람이 못 된다.
"제 생각이 맞다면 지금 절 꼬시려는 거지요?"
"아마도?"
"그럼 넘어가 드리지요."
지원은 냉큼 진영의 허리에 팔을 두르곤 그녀를 옆의 침대 위에 쓰러트렸다.
"어머?"
눕혀진 진영의 부드러운 몸을 폭 감싸 안은 지원. 그야말로 곧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포즈다.
"이런. 이런. 너무 쉽게 넘어오는 것 아녀요? 그래도 스물 아홉 살 노처녀가 스물 한 살 꽃띠 청년을 꼬드긴 것인데. 좀 튕기기도 해야지요."
지원은 태연한 진영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진영은 매력적이다. 외모도. 그 마음씀씀이도. 사랑에 빠질 만큼은 아니지만 빠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아, 저기. 지원군......?"
그제야 진영은 살짝 몸을 긴장시켰다. 지원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저기 지원군. 이러면......"
그러나 진영이 뭐라고 하든 말든 지원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가 지금 원하는 것은 달콤한 키스. 그는 앙탈부리듯 살짝 바동거리는 진영을 더욱 세게 안고 고개를 수그렸다.
지원과 진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의 숨결이 확실하게 와 닿는다. 그렇게 막 둘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지원님. 부사장님으로부터 화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열까요?]
"......"
지원은 이 타이밍 좋은 엠의 끼어듬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의 메시지보다는 진영의 부드러운 입술 쪽이 더 매력적이니 말이다.
"나중에!"
그러나 진영은 생각이 다른지 그가 잠시 멈칫한 틈을 타 얼른 지원을 밀치고 몸을 일으켰다. 지원과 이런 관계가 되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어머. 지원군.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 어서 아버님의 메시지를 보세요. 난 이만 갈 테니까."
"......"
지원은 차마 아버지를 욕할 수는 없었기에 이런 장난을 친 신을 욕했다. 분명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솔로일 것이라면서 말이다. 남의 청춘 사업을 훼방놓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럼 내가 오늘 한 말 명심해 주길 바래요. 지원군."
진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총총히 침실을 나갔고 지원은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놓친 기회를 아까워하면서 말이다.
"할 수 있었는데......"
뭘 할 수 있었는지는 제쳐두고.
"엠. 메일 열어봐."
곧 허공에 승익의 얼굴이 떠올랐다. 승익은 그 날카로운 눈매를 잠시 번뜩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화상 연결을 아직도 열어놓지 않아서 메시지로 보낸다. 어쨌든 이번 일은 아주 인상 깊었다. 멋지게 날 이용하더구나. 가끔은 네 녀석이 정말 내 아들놈인지 의문스럽다. 어디서 너 같은 녀석이 나왔는지."
지원은 승익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결실 아니겠습니까? 후후."
승익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일단 네 엄마까지 나서서 말리니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만...... 아니, 넘어가려 했지만 요즘 일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가만 내버려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녀석이 벌린 사건 뒤처리에 내 시간을 다 쏟기는 아깝지 않으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네 녀석이 라크세인에서 벌였던 각종 사건들의 진상. 그리고 블러드 나이츠의 해체에 대한 진상을 난 알고 있다. 또 라크세인 넷홈에 공지를 올릴 권한도 가지고 있지. 너야 워낙 똑똑하니 내 말뜻이 뭔지 알겠지?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네 녀석은 이렇게라도 해서 눌러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안되겠다. 기껏 얻어낸 수십만 명의 호감과 길드원들의 존경을 한번에 잃고 싶지 않다면 제대로 일하길 바란다. 그럼 이만."
"......"
메시지는 끝났지만 지원은 마냥 멍하게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말이다.
서 승익. 역시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아들은 없다는 옛 말은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원이 누굴 닮았던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콩 심은 데는 역시 콩이 난다......
작가의 주절 주절
앞 편까지가 2챕터입니다. 이제 3챕터가 시작되겠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지원이 이젠 좀 얌전해질는지......
아니면 아버지한테 눌리면서 살수는 없다고 날뛰려는지......
작가인 저로서도 알 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는 얌전해져 줬으면 하지만 [그럼 글쓰기가 참 편해지겠지요.]
읽어주시는 분들은 생각이 다르실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요.
얌전하면 재미없죠. 후후후.
아, 그리고 제 글은 분명 '재미'를 위해 '지어낸' 얘기입니다.
그럴듯하게 말을 맞추려 노력하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그 어느 게임에도 이런 지엠은 절대 없습니다.
있다면 그 게임 망할 가능성이 좀 높을 겁니다 -_-
아니, 게임 망하기 전에 그 지엠은 해고 당하겠지요.
'시작하면서'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운영자로 있으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을 좀 꾸며본 것이니
오해는 절대 금물이옵니다!
에. 또......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동. 또 감동했습니다.
연재 시작 6일? 7일? 음.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 정도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시고 또 추천해 주셨네요.
순식간에 확 떠올라서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작가입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요청하신 대로 편당 분량을 좀 늘리겠습니다.
3챕터부터 말입니다. 씨익.
그럼 재미있게 보셨으면 추천과 한 개의 코멘트. 선작 부탁드립니다. 꾸벅.
ps. 혹시 이런 이벤트를 당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있으신 분 계시면 메모 주십시오.
독자님이 플레이어라 생각하시고
지원이 독자님을 위해 이런 이벤트를 열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간략한 이벤트 내용을 적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원하신다면 본인의 캐릭터명과 직업, 백 스토리(배경)까지 정해서 보내주셔도 좋고요.
검토하여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스토리 진행 도중 은근슬쩍 끼워 넣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