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구를 위한 운영자인가
지원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게시물의 내용을 훑어봤다.
작성자는 루키아. 그는 조금 전에 있었던 사기 도박사 사라 이벤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른 유저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여론 몰이랄까. 이런 식으로 동정표를 얻고 다른 유저들의 지지를 얻어서 회사측에 항의하려는 것이다. 그 너무 뻔히 보이는 의도와 패턴에 지원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 위에 답변 글을 올리려던 그는 문득 든 생각에 손을 멈췄다. 직접 하기보다는 당사자를 내세우는 편이 훨씬 효과가 좋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엠. 익명으로 메시지 띄우는 것 가능하지?"
[네. 운영진 신분 노출 보호 원칙에 따라 가능합니다.]
"그럼 익명으로 레오넬에게 메시지 띄워."
[내용은 어떻게 할까요?]
"음. 내가 보고 있는 이 게시물을 그대로 복사해서 보내. 그 정도면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명령을 끝낸 지원은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루키아의 게시물에 올라오는 새로운 리플들을 살폈다. 대부분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다른 유저들의 동정 어린 리플들이고, 개중에는 뭐 그런 이벤트가 다 있냐며 운영자에 대한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반면 '퀘스트였다며.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중립적인 반응도 한두 개 있긴 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반응들 속에 운영자 편을 들어주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운영자들이 얼마나 유저들의 인심을 잃었는지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여 분쯤 후, 루키아의 게시물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바로 지원의 익명 메시지를 보고 달려온 레오넬이 쓴 글이다. 그로선 사기꾼인 루키아가 뻔뻔스럽게 저런 글을 올렸다는 것에 분노했기에 당연히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지원이 의도한 것이란 걸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초보 게이머인 레오넬이 당한 사기와 EM 다크라는 운영자를 통해 이벤트로 아이템을 되찾게된 사연. 그 글은 게시판에 오르자마자 금새 이슈로 떠올랐고 당연히 여론은 확 바뀌었다. 사기꾼을 옹호할 사람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부터 거의 모든 유저들이 정말 통쾌하다며 EM 다크에 대한 칭찬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무 심했지 않느냐는 의견도 간간이 올라왔지만, 굳이 지원이 나서지 않아도 다른 유저들이 대신 그 의견을 반박해주었다. 그야말로 지원의 의도대로 상황이 풀려 가는 것이다.
그렇게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루키아는 냉큼 게시물을 지우고 잠적했다. 그걸 본 다른 유저들은 그의 비겁함을 비웃었고, 곧 에피소드 넷홈 게시판에는 EM 다크에 대한 글들로 가득 찼다. 소극적이던 기존의 운영자와 다른 그의 행동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甄?
"하하하.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정체에 대한 추측 글을 보며 웃고 있던 지원은 엠의 부름에 게시판에서 시선을 떼었다.
[지원님. 두 개의 화상 연결 요청이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운영부의 임 동원 부장님과 주 진영님입니다.]
지원은 피식 웃었다. 조 기식 팀장은 아버지에게 뭔가 말을 들었던 듯, 대신 그 밑의 운영 부장이 이제 그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임 부장님껜 통화중이라고 전하고 진영씨 연결해."
[알겠습니다.]
곧 책상 위에 난감한 표정인 진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연결되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지원군.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부사장님의 특별 당부도 있었다면서요. 근데 또 말썽을 피우면 어떡해요. 조금 전에 넷홈 봤어요? 지원군이 연 이벤트 때문에 아주 난리라고요. 난리."
"전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일한 것뿐인데요."
지원의 지극히 뻔뻔한 표정과 대꾸에 진영은 냉큼 눈을 부라렸다.
"유저를 홀랑 벗기는 것이 회사를 위해 한 일이라는 거예요?"
"그건......"
그냥 간단히 대답하려 했던 지원은 생각을 고쳐 먹으며 잠시 말을 끊었다. 그녀에게 확실히 설명해두면 분명 아버지의 귀에도 들어갈 테니 말이다. 지원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EM은 에피소드를 운영하는 운영자이지. 이 회사를 운영하는 주 아저씨. 그러니까 사장은 아닙니다."
"에......?"
어이없는 진영의 표정을 보며 지원은 빙긋이 웃었다.
"길드에 해가 되는 놈들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전 그런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냈죠. 하지만 블러드 나이츠와 에피소드는 다르기에, 조금 방식을 달리하여 약간 괴롭혀줬을 뿐입니다. 루키아 같은 녀석이 에피소드에 이득이 되는 유저는 아니니까요. 있으나 마나하거나 없으면 더 좋죠. 그런 녀석들 때문에 에피소드를 떠나는 유저도 분명 생길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지원군은 엄연히 이 회사의 직원이잖아요. 회사의 규칙은 나몰라라한 채 유저들만 챙기겠다는 건가요?"
"그런 얼토당토않은 규칙 따위는 바꾸는 것이 좋을걸요. 거짓 신고를 막고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심증이 분명한데도 증거 따위를 요구하니까, 레오넬같은 피해자가 생기고 운영자가 욕을 먹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전 규칙 어긴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이벤트 두 개를 열었을 뿐이니까요. 이벤트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제 권한이잖아요?"
진영은 혼란함을 느꼈다.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원군. 유저들을 위한다는 생각은 좋아요. 좋지만...... 회사에선 당연히 그런 행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요. 이런 논란이 자꾸 넷홈에 일어나는 것도 원치 않고 또 그런 유저라 하더라도, 하나라도 더 에피소드를 플레이 해주는 것이 회사 쪽에선 이익이니까요."
"상관없습니다. 라크세인에서는 뭐 욕 안 먹었나요? 저 죽이려고 눈에 불켜고 쫓아다니던 사람도 많았습니다. 해고를 하던, 징계를 하던 실컷 해보라고 하세요. 그런다고 제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미 전 유저들이라고 하는 훌륭한 방패를 손에 넣었거든요. 제가 사기 친 유저를 혼내줬기 때문에 징계를 당했다~라는 문장 하나만 넷홈에 올리면 회사로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걸요?"
"무슨 그런!"
"내 말 계속 들어봐요. 진영씨. 게다가 장기적으로 보면 제가 하는 일이 회사에도 이익입니다. 한번에 다 처리하지는 못해도 제가 꾸준히 이런 일을 계속 한다면. 유저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아마 다들 이런 적극적인 개입을 두 손들고 환영할 겁니다."
진영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쉽게 수긍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원군은 정말......"
지원은 냉큼 대꾸했다.
"악랄하다고요?"
옆에 있었다면 꼬집어 뜯어 주기라도 하겠지만 진영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 영악한 청년을 대체 어쩌면 좋으련지.
"정말 못 말리겠네요."
"네. 말리지 마세요."
지원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거다. 아버지에게 굽히지도 않고 망신당하지도 않는 결론. 제멋대로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유저들을 위해서~ 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덮어씌우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리고 유저들이 보기엔 말 그대로 '제대로' 일하는 운영자가 아닌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일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이야 어떻든 말이다.
"정말 유저들을 위해서 규칙을 계속 어기겠...... 아니, 교묘하게 안 어기는 척 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아는 지원군답지 않아요. 불리하고 귀찮은 일을 나서서 할 리가 없잖아요. 뭔가 다른 속셈이 또 있는 거죠?"
진영의 예리한 눈초리와 말에 지원은 뜨끔했다. 사실 그에겐 취향에 맞는 이벤트를 열고 즐기려는 속셈도 있었던 것이다. 사기꾼이나 악질 PK범들에게 악랄한 이벤트를 열어준다고 해서 어느 유저가 그를 욕하겠는가. 만약 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그에게 찍힌 악질 유저들 뿐이리라.
"전 유저분들이 항상 즐겁게 에피소드를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랍니다."
GM 로이니아. 즉 현주가 했던 말을 토씨만 살짝 바꿔 말하는 뻔뻔한 지원이었다.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은 진영은 긴가민가하며 지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허나 워낙 얼굴 철판 두께가 두꺼워서인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진영은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정말 말로 어떻게 설득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군요. 난 이제 몰라요. 알아서 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대화한 내용을 아버지께도 좀 전해주세요."
"부사장님께요?"
지원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대답했다.
"네. 상당히 흥미로워 하실 겁니다. 그럼 전 다시 근무하러."
"아, 저기 지원군!"
진영은 할 말이 더 있는 듯 그렇게 지원을 불렀지만, 지원은 손가락을 까닥해 연결을 끊었다. 그녀의 얼굴이 사라지자 지원은 나직하게 말했다.
"엠. 지금부터 연결 요청 다 거부해. 답변은 언제나처럼 바쁘다~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대충 이번 사건의 마무리가 되었다고 제멋대로 생각한 지원은 다시 넷룸으로 들어갔다.
이제 다시 놀...... 아니, 일을 할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