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33화 (33/74)

3. 누구를 위한 운영자인가

*수정된 분량입니다. 미처 못 보신분들은 앞편부터 봐주시길...

"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건 왜......?"

머뭇거리는 듯한 로이니아의 물음에 다크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뻔뻔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로이니아님의 고운 마음씨에 반해서 그렇습니다."

얼굴 예쁘다는 칭찬도 좋지만 맘씨 곱다는 데도 싫어할 여자는 없다. 당연히 로이니아는 더욱 얼굴을 붉혔다.

"제. 제가 무슨......"

다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매일 유저분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유저를 생각하는 그 마음씨.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아......"

"전 지금까지 그냥 무작위로 유저를 선정해서 이벤트를 열었지요. 하지만 로이니아님의 마음씀씀이를 보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왕 이벤트를 여는 거. 로이니아님의 부탁처럼 그런 분들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 그거야 좋지만......"

그의 말에 수긍은 했지만 로이니아는 조금 망설였다. 같은 게임 마스터이기는 하나 엄연히 하는 일이 다르고 과가 다른데 그런 정보를 막 넘겨줘도 될까 해서다. 다크는 그런 그녀의 낌새를 눈치채고는 덥석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역시 들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이니아님."

감사의 인사를 해버려서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리려는 의도. 그런 다크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부끄럼에 몸을 배배꼬던 로이니아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던 것이다.

다크는 그녀의 생각이 바뀔세라 얼른 물었다.

"그럼 목록은 메일로 넘겨주십시오. 언제까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 아, 그게. 내일쯤......?"

"네. 그럼 내일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전 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원하는 대답을 다 받아낸 다크는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인사하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로이니아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있던 자리만 빤히 쳐다보았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실수한 듯......?"

얼떨결에 엉뚱한 임무를 떠맡게 된 로이니아. 그녀의 뒤늦은 중얼거림이다.

2178년 10월 18일.

에피소드의 오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된지 6일째 되는 날. 수많은 유저들이 에피소드에 접속해 제각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자가 느끼는 즐거움이 다 다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중 유난히 즐거워하는 한 커플이 있었으니......

"호호호. 자기야. 이거 너무 쉽지 않아?"

"그래도 지금 잘 연습해 둬야해. 그래야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흐흐."

인적 드문 길옆의 작은 숲. 그 곳에서 찰싹 달라붙어 앉아 있는 둘은 방금 전에 얻은 전리품들을 살피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쪽 캐릭터명은 수아로 올해 스물 두 살의 백조이며, 남자 쪽 캐릭터명은 루웬달로 올해 스물 네 살의 백수다. 별달리 하는 일도 없이 놀던 그들이기에 같이 V.M.G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지 V.M.G를 통해 돈을 벌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만 빼면 말甄? 왜냐하면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택한 방법이 바로 PK(Player Killer)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금 전에 연습-실습?-했던 PK 방식은 대략 이렇다. 혼자 있는 남성 유저를 대상으로 수아가 다가가 도움을 요청한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 유저이기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흔쾌히 도와 주려한다. 그럼 수아가 상대의 시선을 끄는 동안 루웬달이 뒤에서 습奮求?것이다.

이런 이유 없는 무차별 PK는 GM에게 신고하여 수배나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 커플이 사용하는 방법은 적발해내기가 힘들다. 스크린샷이나 동영상을 찍어 증거로 제출해야만 처벌이 가능한데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장소에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질 PK랄까. 사실상 이런 치사한 방법을 사용하는 PK가 좀 많긴 하다. 굳이 여자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몰래 암습하거나 뒤치기를 가하는 PK 말이다.

"근데 자기야. 정말 여기 돈이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어?"

"물론이지. 현재 넷상에서는 V.M.G의 돈이나 아이템을 현금과 교환하는 거래가 어마어마하게 활성화되어 있다구. 아예 그걸 중계하는 회사까지 있고.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루웬달의 말은 사실이다. 게임 업체 측도 정식으로 넷홈에 관련 게시판을 생성할 만큼 이런 현금 거래는 인정받고 있다. 에피소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와아. 그럼 정말 계속 이렇게만 한다면 금방 부자 되겠네. 호호."

"그렇고 말고. 하하하!"

눈꼴시어서 봐줄 수 없을 만큼 서로의 몸을 비비적거리며 웃어대는 둘이었다. 그리고 정말 있었다. 눈꼴시어 하는 이가.

"자알 논다."

하이딩 상태로 둘을 지켜보던 다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루웬달과 수아의 머리를 한 대씩 때렸다. 아니, 때리는 척만 했다. 그의 손은 둘의 머리를 스윽하고 통과해 버렸으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다.

[다크님.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어차피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진짜로 때려볼까 생각하던 다크는 엠의 말에 얼른 이벤트 세팅 툴을 불러 들였다. 간단한 수정과 입력을 거쳐 이벤트 온 스위치가 떠올랐고 다크는 그걸 누를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바로 저 눈꼴 시린 커플이 이동하는 때를 말이다.

"자기야.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거기 갈까? 나 약간......"

"그래. 흐흐. 우리 도시로 가서 전리품들을 처분하고 여관에 가자."

연신 비비적대도 별다른 느낌이 없자 둘은 그렇게 숙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장소에 특별히 구애받을 것 같지 않은 이 둘이 굳이 여관을 가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 내에서 강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거나 미성년자가 섹스를 하지 못하게끔 하는 시스템적인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도 섹스가 가능한 반면, 아무하고나 혹은 아무 곳에서나 하면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 유저와 유저의 관계는 성인만이 출입되는 특정 여관에서만 가능했고, 유저와 NPC의 관계는 업체 측에서 제공해야만 된다. 그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NPC가 따로 있으며 상대 유저와의 관계를 허용하도록 설정을 해야만 된다는 얘기다.

어쨌든 둘은 야릇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바삐 도시로 걸음을 옮겼다. 느긋하게 그 뒤를 따르던 다크는 적당한 장소라 판단된 곳에 이르자, 곧장 이벤트 온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수아와 루웬달 앞쪽에 커다란 팻말과 상자 하나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어머?"

"헉? 이거 뭐야?"

둘은 놀라면서도 그 두 물건에 시선을 모았다. 철로 된 작은 상자는 잔뜩 낡고 녹슬어 볼품 없어 보였지만 팻말은 달랐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눈부시도록 새하얀 바탕에 붉디붉은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절대 이 상자를 열지 마시오. 위험.'이라고 말이다.

"자기야. 이거 뭐야?"

"나도 몰라."

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팻말 쪽으로 다가갔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그렇다. 하지 말라면 왠지 더 하고 싶고. 감춰져 있으면 궁금하고......

"열어 볼까?"

루웬달의 말에 수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위험하다고 써있잖아. 자기야. 그냥 가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아의 눈길은 연신 상자 쪽을 흘끔거렸다. 그녀 역시 강한 호기심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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