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34화 (34/74)

3. 누구를 위한 운영자인가

*수정된 분량입니다. 미처 못 보신분들은 앞편부터 봐주시길...

"아냐. 이거 돌발 이벤트일 가능성이 높아. 만약 그렇다면 그냥 가면 안 되지."

루웬달은 팻말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상자를 이리저리 살폈다. 허나 보고 또 봐도 그냥 평범해 보이는 철상자일뿐 아무런 위험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위험하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걸까?

"자기야. 그거 열면 펑~ 하고 터지는 것 아닐까?"

"글세. 그래도 말은 위험하다고 써놨지만 보물 상자라던가 그런 것일지도......"

"정말?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런 길가에 상자가 나타난 것이 이상하네. 퀘스트 아냐?"

"이벤트일 수도 있을걸. 개인별, 그룹별 이벤트 서비스인가 뭔가 하는 것 말야."

그냥 가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열어보기도 뭐하고. 호기심과 불안 사이에서 마냥 오락가락하는 둘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불안해하는 수아와 달리 루웬달은 호기심을 푸는 쪽으로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칠 만큼 참을성이 많고 신중한 성격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루웬달은 과감하게 상자 뚜껑을 확 열고는 수아를 끌고 후닥닥 뒤로 물러섰다. 상자를 연 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 있다가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대와 불안이 반씩 뒤섞인 둘의 시선이 상자에 집중되고 그렇게 약 30여초가 지났다.

"에......?"

"어......?"

수아와 루웬달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허무하게도 상자 뚜껑은 활짝 열어 젖혀진 상태 그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펑하고 터지기는커녕 삐거덕 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또 뭔가 나타나거나 하는 기미도 없었다.

"괜히 불안해했잖아?"

루웬달은 히죽 웃으며 상자 쪽으로 다가섰다. 물론 수아도 주춤거리며 그 뒤를 따랐고 둘은 곧 상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둘이 기대했던 것 같은 보물은 그 안에 없었다. 있는 것은 야릇한 색의 물약 두 병과 쪽지 하나. 루웬달은 크게 실망하며 우선 쪽지부터 주워 들었다.

"뭐야? 뭐라고 써 있어?"

수아의 호들갑스런 물음에 루웬달은 느릿하게 쪽지의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이 글을 보는 자가 있다면 아마 상자를 연 자겠지? 분명히 위험하다고 써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상자를 열다니 정말 용감하군. 나는 용기 있는 자들을 좋아하지. 그게 비록 만용이나 호기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자, 이 쪽지 옆에 물약들이 보이지? 그건 네 용기에 감탄해서 주는 내 선물이다. 마시는 자에게 강력한 힘과 능력을 부여하는 약이지......"

여기까지 읽은 루웬달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얼른 쪽지를 던져 버리고 약병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강력한 힘이라니. 그런 것을 준다는데 당연히 안 마실 그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버린 쪽지를 집어들고 나머지를 읽은 수아는 얼른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잠깐만!"

막 약을 마시려던 루웬달이 왜 그러냐는 듯한 짜증스런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자, 수아는 쪽지의 하단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뒤에 글이 더 있어. 마시지 말라고. 마시면 절대 후회한다고. 그냥 상점에 팔아서 돈으로 바꾸거나 하는 것이 좋다네. 강력한 힘은 갖게 되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있대. 그 것도 아주 무서운!"

수아가 가리키는 부분을 재차 읽어본 루웬달은 코웃음을 쳤다.

"절대 열지 마시오. 위험 어쩌고 하는 팻말도 순 뻥이었잖아. 오히려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것 못 봤어? 그 글도 어차피 그런 뻥일 거야."

이때 둘을 지켜보던 다크가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줘야지. 안 그러면 굳이 상자와 팻말을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지."

허나 이 중얼거림을 수아와 루웬달은 듣지 못했으니 논외로 치고.

"그래도......"

루웬달의 자신감 있는 말에도 불구하고 수아는 마냥 불안했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 물약을 마셔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가슴을 콕콕 쑤시는 것이다. 루웬달은 그런 그녀를 달래며 남은 하나의 물약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게다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데 대가가 좀 있으면 어때. 어차피 이런 게임에선 힘만 세면 장땡이야. 우리 돈 버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될걸?"

"그. 그럴까?"

"물론이지!"

루웬달의 저 얼토당토않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어쨌든 둘은 결국 사이좋게 약병을 입가로 가져가게 되었다. 옆에서 다크가 의기양양하게 웃는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밋밋한 맛의 물약이 둘의 목을 타고 넘어가자 조금씩 그들의 몸이 부풀어올랐다. 고통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묘한 간지러움뿐. 그렇게 부풀어오르던 둘의 몸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형체가 일그러지며 줄어들었다.

"자. 자기야.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몸이 변해. 어떡해?"

수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루웬달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 변화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속된 그 변화는 약 이분 여가 지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완전히 변화된 그들의 모습. 그 것은 일명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Vampire)의 모습이었다.

"꺅! 이게 뭐야?"

길고 날카로워진 송곳니와 창백해진 피부. 그리고 달라진 옷차림과 장비에 놀란 수아는 펄쩍펄쩍 뛰었지만, 루웬달은 그녀와 달리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변화되자마자 바로 자신의 캐릭터 정보를 살펴봤기 때문이다.

"이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했다. 힘과 민첩. 마력과 체력 등등. 모든 수치가 원래 상태에서 최소 열 배에서 스무 배까지 올라 있었던 것이다. 모습만 뱀파이어인 것이 아니라 능력치도 그에 맞게 확 올라갔다는 얘기다.

허나 그는 그리 오래 좋아하지 못했다.

"자. 자기야. 살이 타. 타고 있어!"

수아의 비명 섞인 외침에 얼른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 루웬달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햇볕이 닿은 부분이 파직거리며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노을이 지려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해가 있다. 뱀파이어가 활동할 수 없는 시간!

"으라라랏!"

아픔은 없지만 자기 팔이 타고 있는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기에, 루웬달은 괴상한 비명과 함께 얼른 길옆의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자기 몸만 위한 나머지 수아를 깜박 잊고 내버려둔 채 말이다.

"꺅!"

여자 뱀파이어이기 때문일까. 루웬달에 비해 상당히 노출도가 심한 옷을 입고 있었던 수아는 더 많은 햇빛을 맨살에 받아야만 했고, 결국 도망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헉?"

그제야 수아를 버려 두고 왔다는 것을 눈치채며 뒤를 돌아본 루웬달. 허나 이미 늦은 일이다.

"흑. 흐윽. 날 버려 두고 혼자......"

채 말을 끝내지도 못한 수아는 나무 그늘 밑에 숨은 루웬달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새카맣게 타버렸다. 사망. 물론 이 것은 단순한 게임상의 죽음일 뿐이다. 다크조차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라 손을 쓰지 못했기에 그녀는 한줌 재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아이구. 내가 미쳐. 저 둔팅이."

루웬달은 재가 완전히 바람에 날려 사라지자 얼른 수아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캐릭터 사망에 따른 약간의 경험치 감소 패널티만 감수하면 원래 접속 장소에서 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루웬달에게 돌아온 답장 메시지는 상대가 접속해 있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이런. 로그아웃 해버린 건가? 또 삐졌군. 또 삐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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