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35화 (35/74)

3. 누구를 위한 운영자인가

*수정된 분량입니다. 미처 못 보신분들은 앞의 앞편부터 봐주시길...

그래도 자기가 조금, 아주 조금 잘못했다고 생각한 루웬달은 황급히 로그 아웃을 외쳤다. 수아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다독이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로그아웃을 하려하자 지금 로그아웃하면 이번 이벤트가 중단된다는 경고 메시지가 떴던 것이다.

"뭐야. 지금 로그아웃하면 기껏 얻은 뱀파이어의 능력이 날아가는 건가?"

수아는 나중에라도 찾아가서 사과할 수 있지만 뱀파이어의 힘은 또 다시 못 얻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못 얻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런 이벤트가 자주 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루웬달은 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 수아에게는 나중에 꽃이라도 한 다발 사다주면 되겠지. 지금은 이 힘으로 PK나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야. 후후."

이후, 둘 사이가 이 일로 인해 금이 갔다는 것은 굳이 말 안 해도 다들 알리라.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다.

"저렇게 될 줄은 몰랐군. 뭐, 하나는 남았으니 괜찮겠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다크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사건에 어깨를 으쓱하며 또 다른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지금 동시에 두 개의 이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도착한 곳은 루웬달이 있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길. 거기엔 간단한 여행복 차림인 NPC 사제 세린과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체크와 조드라는 이름의 전사들. 물론 유저들이다. 둘은 따로 에피소드를 시작하긴 했지만 현실에서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아, 뭔 놈의 호위 이벤트가 반나절동안 죽어라 걷기만 하는 거지. 이봐요. 사제님.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체크의 투덜거림에 세린은 차분한 어조로 정해진 대사를 읊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번엔 조드가 물었다.

"그 말 벌써 몇 번째인지 아세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이벤트용 NPC 특유의 동문서답에 그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묵묵히 세린의 뒤를 따랐다. 계속 말 걸어봐야 똑같은 대답밖에 못 듣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별 어려움도 없는 간단한 호위 이벤트. 게다가 보상도 짭짤하니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다크는 그들이 잘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루웬달에게 이동했다. 그때 루웬달은 나무 그늘만을 골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PK할 유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힘이 있으면 써보고 싶어지는 법. 그는 얻은 힘을 써보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곧 날이 완전히 저물 것이고 저쪽의 호위 이벤트를 하는 일행과 마주치게 되리라. 그게 다크가 의도했던 바이고 말이다.

역시나 얼마 안 있어 뱀파이어의 초감각을 가지게된 루웬달은 그들을 발견했다. 상대는 NPC인 세린까지 총 세 명. 조금 어려워 보이는 숫자이긴 하지만 장비들이 다 싸구려인 것을 보아 초보들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루웬달은 그들의 뒤통수가 익숙해 보인다는 것을 느끼?고개를 갸웃했지만 별 생각 없이 얼른 해가 지길 기다렸다.

곧 주변이 어둑해져왔고 더 이상 활동에 꺼릴 것이 없게된 루웬달은 바로 날카로운 손톱을 바짝 세우고 호위 이벤트 일행을 덮쳤다. 본래 모습도 아닌 뱀파이어 모습이니 신고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헉! 뱀파이어다!"

"뭐야. 단순 호위 이벤트에 뭐 저런 강한 몹이 나와?"

"이벤트 몹이 아니라 이 숲에 사는 뱀파이어 아냐?"

"여기에 뱀파이어가 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조드와 체크는 그렇게 떠들어대면서도 여유 있게 검을 뽑아들고 루웬달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어제 PK에게 아이템을 다 뺏기는 바람에 장비가 싸구려일 뿐, 사실 능력치는 꽤 높은 파티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냥 일반 여행복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호위하고 있는 NPC는 瑩┫? 당연히 뱀파이어 같은 언데드 계열 몬스터가 무서울 리 없었다.

"으윽!"

루웬달은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조드와 체크의 공격이 연신 퍼부어지자 공격은커녕 피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의 검이 일반 무기라서 치명상은 없다는 걸까. 축복 받은 은이 발라져 있거나 마법 무기가 아닌 한 뱀파이어는 죽지 않으니 말이다.

아프지도 않으니 차라리 몇 대 맞아주고 죽여 버리자 생각했던 루웬달은 바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 일행에게 바싹 다가섰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말았다.

"턴 언데드!"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NPC 사제 세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터닝을 시도했던 것이다.

"흐엑! 성직자였어?"

안타깝게도 세린의 터닝 시도는 실패. 하지만 그 터닝으로 인해 루웬달이 잠시 주춤한 사이, 조드와 체크의 검이 그의 심장과 목을 각각 파고들었다. 물론 루웬달이 그 정도로 죽을 리는 없다. 단지 문제라면 타격이 너무 커서 움직이기 힘들게 되었을 뿐이랄까?

"아싸! 밟자!"

조드와 체크는 주춤거리는 루웬달을 발로 차서 넘어트리고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마구 짓밟았다. 작은 타격이라 하더라도 연속으로 들어오자 당연히 루웬달의 체력은 점점 깎여 갔고 그런 그에게 세린의 터닝이 다시 시도되었다.

"사. 살려줘! 난 적이 아냐! 몹이 아니라고!"

벼랑 끝에 몰린 루웬달이 마지막 방법으로 그렇게 소리쳐 봤지만, 조드와 체크가 그걸 믿을 리가 없다.

"요새 몬스터 A.I가 많이 발달했나봐. 지가 습격해놓고 발뺌도 하네?"

"근데 정말 발달한 것 맞아? 저런 모습을 하고서 난 몹이 아냐~ 라고 소리치면 누가 믿냐."

"하긴. 완전 개그네. 개그."

루웬달로서는 속이 터질 조드와 체크의 대화였다. 결국 세린의 이번 터닝 시도는 성공했고, 뱀파이어의 모습을 한 루웬달은 후회의 눈물을 찔끔 흘리며 그대로 사망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들을 PK하려고 덤빈 것이 그의 실수인 것을. 아니, 그보다 먼저 먹지 말라던 물약을 먹은 것이, 그리고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연 것이 모두 루웬달의 실수인 것이다.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다가 죽은 것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그다.

그때, 죽은 루웬달의 시체가 재가 되어 날아가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조드가 시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놀랐다.

"어라, 이거 뱀파이어가 아니잖아?"

"엥? 무슨 소리야?"

체크는 얼른 루웬달의 시체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그 역시 놀라고 말았다. 루웬달이 죽자 시체가 어느새 본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다크가 옆에서 손을 썼기 때문이지만 그들로서는 알 리가 없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헉! 이거 내 검 아냐? 이걸 왜 이 놈이 가지고 있지?"

"이건 내 부츠랑 장갑...... 맙소사. 벨트도 있잖아!"

그랬다. 이 둘은 바로 어제 수아와 루웬달 커플에게 각각 다른 곳에서 PK를 당했던 두 사람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뺏은 장비를 루웬달이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맙소사. 그럼 진짜 유저였어?"

"설마 어제 그 빌어먹을 놈의 PK?"

둘이 그렇게 의문을 내뱉자 가만히 옆에 있던 다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유저도 맞고 그 빌어먹을 PK도 맞지. 생각지도 못한 복수는 즐거우셨나 모르겠네?"

물론 다크는 현재 하이딩 상태이니 들릴 리가 없는 대답이다. 어쨌든 그렇게 친절하게 대답까지 해준 다크는 서둘러 사제 세린의 호위 이벤트를 강제 종료시켰다. 저들에게 호위 이벤트를 열어 주었던 목표는 이미 달성했으니 이제 굳이 그들을 질질 끌고 이 숲을 돌아다니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가 제 목적지입니다. 그동안 보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크의 강제 종료에 따라 마지막 멘트를 한 세린. 그녀는 보상금을 조드와 체크에게 건네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앗! 잠깐만!"

조드가 황급히 세린을 불렀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진 후였다. 사라지기 전에 불렀다고 해도 그의 의문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의아해하면서도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두 남자를 내버려둔 채, 다크는 이벤트 종료 알림 두 개를 모두 끄고 그만의 아지트로 이동했다.

오늘의 보람찬 하루 일과는 끝. 약간 황당한 해프닝은 있었지만 이번 일은 꽤 완벽하게 끝나서 마냥 흐뭇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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