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36화 (36/74)

3. 누구를 위한 운영자인가

* 수정판입니다. 내용 이해를 위해서는 전의 전의 전편. 혹은 34편부터 다시 보셔야 할겁니다.

그만의 아지트. 즉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 던전 한 귀퉁이로 돌아온 다크는 소파에 걸터앉으며 오늘 벌인 이벤트들을 되새겼다. 사기꾼에게 당한 유저 둘에게 기분 풀이용 이벤트를 열어줬고 PK당한 두 유저와 또 다른 한 유저에게는 통쾌한 복수를 하게 해줬다.

헌데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를 본 하루라 생각되지만, 이벤트 다섯 개에 하루가 꼬박 걸리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 생각되었다.

"이래서는 하루에 네댓 개의 이벤트밖에 못 열겠네. 역시 이벤트를 열고 내내 지켜보기란 무리인가."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봐야 재미있지. 그냥 이벤트만 열어주고 훌쩍 자리를 뜬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당장 지루해지리라.

"별 수 없지. 일도 일이지만 내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많이는 못 열지만 그만큼 내용에 충실하면 된다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다크였다.

"엠. 지금 몇 시지?"

[1시 20분입니다.]

21시인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난지 오래다. 하지만 GM이나 EM에게 퇴근 시간이란 개념은 거의 없다고나 할까. 툭하면 야근에 추가 근무니 개념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 그래도 약간의 피곤함을 느낀 다크는 로그아웃을 결심하며 입을 열었다.

"로그......"

허나 그의 말은 채 끝나지 못한 채 멈춰져야 했다.

"야! 조심해! 너 때문에 함정이 발동될 뻔했잖아."

"아, 미안. 근데 무슨 놈의 던전이 몬스터는 하나도 없고 순 함정만 왕창 깔렸냐."

"그러게 말야. 읏차. 자, 이 쪽 벽에 붙어서 걸어와. 그러면 함정 발동 안 한다."

"오우~ 역시 파티에 도둑은 필수라니까."

"평상시에 좀 그래봐라. 매번 사냥 때마다 도움도 안 된다고 구박하더니."

"아이~ 내 맘 알면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다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이 비밀 던전을 벌써 찾아낸 유저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정식 서비스 때는 되야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던 그였다.

호기심을 느낀 다크는 잽싸게 소파와 마법 랜턴을 숨기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통로가 마치 미로처럼 배배 꼬여있었기에 이 곳의 맵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그는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유저들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얼른 원 위치로 돌아간 그는 엠을 불렀다.

"엠. 이 던전 맵 띄워봐. 근처에 있는 유저들의 위치도 표시하고."

곧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던전 맵을 보던 다크는 유저들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선 거리는 몇 발자국밖에 안 되는데 길을 따라 그들에게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만 했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던 다크는 곧 이런 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바로 고스트 모드다. 하이딩 기능이 생명체를 그냥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면 고스트 모드는 무생물이나 지형에 상관없이 통과가 가능하다. 땅 속을 파고들 수도 있고 높다란 산을 넘지 않고 그냥 직선으로 통과해 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고스트 모드의 명령어를 떠올린 다크는 바로 모드를 발동시켰다. 하이딩과 달리 고스트 상태에서는 자신의 모습조차 뿌연 안개로만 보였다.

"정말 유령 같군."

짧게 중얼거린 다크는 그 유저들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슬쩍 통과했다. 그러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각기 다른 스타일의 세 명의 유저였다.

바닥의 뻥 뚫린 구멍을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있는 검은색 옷의 남자와 구멍 가장 자리를 두 손으로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두툼한 가죽 갑옷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서 새침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붉은 로브 차림의 여자. 셋은 현실에서도 친구인지 다 이십대 중반의 비슷?또래로 보였다.

바로 그들의 캐릭터 정보를 띄운 다크는 검은 옷의 남자가 쉐인이란 이름의 도둑이며 가죽갑옷의 남자는 쉐반이란 이름의 전사. 붉은 로브의 여자는 쉐나란 이름의 마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쉐자 돌림. 친구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지루해할 틈을 안 주는군."

투덜거리는 듯한 쉐인의 말에 쉐반이 입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그런 말할 틈 있으면 나 좀 여기서 끄집어 내주지 그래?"

"그러게 누가 나보다 먼저 앞서 가래냐."

쉐인은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쉐반의 손을 잡아 구멍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쉐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하여튼 저 촐랑이는 못 말려."

"내가 뭘?"

"그럼 지금 잘했냐? 잘했어?"

"안 떨어졌으니 됐잖아. 나의 놀라운 순발력으로 잽싸...... 윽!"

"죽어버려!"

쉐나가 쉐반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리자 쉐인은 낄낄대며 웃었다. 잠시 그렇게 투닥거리던 세 사람은 곧 다시 던전 안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크는 그들의 뒤를 쫓아볼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 그냥 멈춰 섰다. 어떻게 여길 온 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불가능한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특정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열리는 던전이고 또 그 퀘스트의 난이도도 상당히 높기는 하지만, 아예 클리어 못하는 퀘스트는 아니니 말이다.

"그 퀘스트를 클리어하다니 운이 엄청 좋은 녀석들인가 보군. 그런데 난 아지트를 뺏긴 셈이네?"

다시 다른 곳을 물색해야겠다고 생각한 다크는 그들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며 접속을 종료했다. 이 무심코 지나친 일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 채 말이다.

캡슐을 나온 지원은 이틀 간 한숨도 자지 못한 것 때문에 약간 머리가 띵한 느낌을 받으며 책상 앞에 앉았다. 자긴 자야 하지만 우선 에피소드 넷홈을 좀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때 넷홈은 EM 다크. 즉 지원으로 인해 상당히 들썩이고 있었다. 그에게 당한 유저들과 그에게 도움을 받은 유저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서로 팽팽히 대립하다 결국 도움 받은 유저들의 승리로 논란이 끝마쳐지곤 했던 것이다.

유저들은 EM 다크의 존재를 열렬히 환영했다. 어느 게임이든 운영자란 존재는 대부분 방관자, 혹은 상담원의 성향이 짙다. 그런데 직접 유저들의 일에 간섭해 억울함을 풀어주고 통쾌함을 안겨주는 EM 다크의 존재는 당연하게도 그들의 마음에 쏙 드는 운영자니 말이다.

그 유쾌하기까지 한 독특한 해결 방식에 사람들은 마냥 즐거워했고, 그의 다음 이벤트를 기대하겠다는 글이나 이런 이벤트는 어떨까 하는 글을 올려놓은 유저들까지 있었다.

물론 사람은 여러 타입이 있다. 개중에는 EM 다크의 방식을 비판하거나 당한 유저들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저지른 일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허나 그런 의견은 아주 잠시 고개만 살짝 쳐들었을 뿐, 다른 유저들의 계속된 반박에 곧 자진 삭제되거나 수그러들었다.

여론이 그가 원했던 대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지원은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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