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버그?
"로드의 아이지. 제 아이가 아닙니다. 왜 제가 그깟 누런 꼬맹이 하나를 찾기 위해서 인간들 틈에서 헤매야 합니까. 참으려고 해도 짜증나서 더 이상 못해 먹겠습니다."
상당히 반항적인 투인 아이다콘의 대답에 다크는 요것 봐라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얌전히 레어로 돌아가서 잠이나 퍼 잘 것이지. 왜 여기서 날뛰고 있는 것이냐?"
"많고 많은 인간들의 도시 중 하나 정도 박살낸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화풀이 좀 하도록 절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겨우 화풀이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삼천 살이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왜 그렇게 경솔한가!"
역할에 충실한 다크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아이다콘은 코웃음을 치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걸 본 다크는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긴 애초에 말로 어떻게 해볼 생각도 없던 그다. A.I든 인간이든 이럴 때는 역시 약간의 폭력이 동반된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다크는 험악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아이다콘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그러나 꼬인 A.I로 인해 겁을 상실했는지 아이다콘은 태연했다.
"말씀에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건방진 것!"
짧게 외친 다크는 그 육중한 꼬리를 휘둘러 아이다콘을 후려쳐 버렸다. 허나 드래곤으로 변환해본 것은 처음인지라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는, 그야말로 있는 힘껏 꼬리를 휘두르고 말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다콘은 그 강렬한 충격에 억눌린 비명을 내지르며 옆으로 쓰러졌고, 수십 채의 건물을 그 거대한 몸으로 깔아뭉개 버린 것이다.
순간 폭삭 내려앉은 건물들. 먼지라는 존재가 없는 가상현실 속이기에 먼지구름이 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수십 채의 건물이 한번에 와르르 뭉개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멀찍한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유저들은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허나 이 불의의 습격에 목숨을 잃은 유저도 다수 있었으니. 가랄 때 안 가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유저 몇이 무너져 내린 건물 밑에 깔린 것이다. 아마 그들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리라.
"무슨 짓이냐!"
아이다콘은 분노 어린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소리쳤다. 애초 설정 상으로도 블랙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상당히 광폭한 성격이다. 상대가 고룡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성격의 그가 얻어맞기까지 하고서도 공손한 말투를 유지할 리가 없었다.
"짓이냐? 말 참 예쁘게도 잘하는 구나."
다크는 막 일어서려 하는 아이다콘을 걷어찼다. 허나 완전히 드래곤의 몸에 익숙해지지 못해 행동이 좀 굼뜬 그의 발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아이다콘이 잽싸게 피했던 탓이다.
"아무리 고룡이라고 해도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
아이다콘의 외침은 다크에게서 비웃음만을 이끌어 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텐가?"
이를 빠드득 하고 간 아이다콘은 고룡에 대한 존중을 완전히 잊었다.
"플레임 스피어(Flame Spear)!"
아이다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언으로 만들어진 불꽃의 창이 다크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짜가이긴 하지만 고룡이 괜히 고룡이 아니다.
간단히 그 불꽃의 창을 흩어버린 다크는 아이다콘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도 전에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새하얗게 번뜩이는 빛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다콘에게 쏟아졌다. 그 빛이 몸을 스칠 때마다 짜릿하게 감전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허나 다크의 반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익스플로전(Explosion)!"
블랙 드래곤의 육중한 몸에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불타올랐다. 붉은 혀를 낼름거리는 불꽃이 아이다콘을 휘감았고, 그는 황급히 그 불길을 끄기 위해 워터 볼(Water Ball)을 소환해 자신의 몸에 끼얹었다.
그러나 그건 아이다콘의 실수였다. 아직 체인 라이트닝의 효과가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몸에 물을 끼얹었으니......
"커억. 컥!"
몸을 적신 물을 통해서 짜릿하다 못해 살을 익혀버릴 것처럼 휘몰아치는 번개들로 인해, 아이다콘은 자기도 모르게 괴상한 비명을 내뱉고 말았다. 다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음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이번엔 얼음 조각 폭풍이 아이다콘을 강타했다. 불과 번개. 물에 이어 얼음까지. 결국 아이다콘은 연신 온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나 그는 연달아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잠시 행동 불능이 되었을 뿐, 목숨이 위험하거나 한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다크가 체인 라이트닝과 익스플로전, 아이스 스톰을 퍼부은 이유는 살상력보다는 화려한 이팩트(Effect:효과) 때문이니 말이다. 버그 수습도 수습이지만 유저涌“?환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만약 다크가 아이다콘을 죽이려고 했다면 미티어 스윔(Meteor Swarm)이나 헬 파이어(Hell Fire)를 썼으리라.
다크는 도시 내의 모든 유저들에게 들리게끔 목소리에 약간의 효과를 가미하여 말했다.
"이제 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드느냐."
그러나 좀 얻어맞았다고 쉽게 얌전해질 아이다콘이 아니었다. 그 것은 블랙 드래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설정이다.
"죽여 버리겠어!"
이를 갈며 그렇게 소리친 아이다콘은 한껏 숨을 들이켰다. 순간 그의 볼이 부풀려짐을 본 다크는 그가 브레스를 뿜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보호막을 쳤다.
그러나 여기는 도시 한 복판. 그의 포이즌 브레스에서 다크는 무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변 유저들은 몰살할 것이 틀림없다.
다크는 그 일만은 막아야 함을 깨닫곤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허나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은 그는 궁여지책으로나마 그냥 육탄으로 돌격해 아이다콘의 주둥이를 꽉 붙잡았다. 입만 벌리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다면 브레스를 뿜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주둥이를 틀어쥐고 보니 자세가 참 좋았다. 원래 드래곤의 주둥이는 좀 길쭉하다. 게다가 주저앉은 채 고개만 쳐들고 있는 아이다콘이기에 양손으로 입가 양옆을 쥐자, 딱 그의 배가 다크의 짧은 다리가 닿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붙잡혀있으니 도망도 못 4? 그렇다면?
"내 반도 못 산 녀석이 감히 내게 그따위 말버릇을 보여?"
다크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다콘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그로 인해 입이 붙들려 도망도 못 가고 비명도 지를 수 없었던 아이다콘은 온 몸을 비틀며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다.
"그 정도 능력으로 날 죽이겠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또 걷어차고.
"용이 곱게 말할 때 들었어야지. 왜 반항을 해. 왜!"
그렇게 소리치며 또 걷어차는 다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