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40화 (40/74)

4. 버그?

그러자 여기 저기 흩어져 다크와 아이다콘의 싸움을 지켜보던 유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래곤이 드래곤을 발로 뻥뻥 걷어차는 장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그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유쾌함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허나 몰려든 운영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황당함에 허둥거렸고 어이없음에 말을 잊었다. 다크의 의도를 모르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 후, 연달아 십여 번을 더 걷어찬 다크는 이 정도면 적당히 패줬다 생각하며 발을 거뒀다. 좀 더 데리고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슬슬 쇼를 끝내야할 때인 것이다. 간단하고 강렬하게. 아무리 재미있는 이벤트라도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다.

"자, 이제 좀 내 말에 따를 생각이 드느냐?"

여전히 주둥이를 꽉 붙잡은 채 말하는 다크에게 아이다콘은 지극히 반항적인 눈빛만을 흩뿌렸다. 허나 다크는 그런 그의 눈빛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응? 마법 메시지인가? 아하! 그래. 이 많은 인간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잘못을 빌기는 자존심이 상하겠지."

아이다콘은 어이없음에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언제 잘못을 빈다고 했단 말인가?

하지만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다크의 태연한 거짓말로 인해, 마치 아이다콘이 몰래 메시지 마법을 사용해 잘못을 빈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래. 그래.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나. 좋다. 네 말대로 조용한 곳으로 가자."

이어진 다크의 말에 너무 억울해서 몸을 부르르 떠는 아이다콘이었다. 허나 다크는 그에 아랑곳없이 외쳤다.

"텔레포트!"

다크는 소리침과 동시에 하이딩 기능을 작동시켰다. 물론 아이다콘까지 강제 하이딩 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유저들의 눈에는 둘이 마치 텔레포트로 이동해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저들은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무너진 건물 잔해로 다가와 구경하는 유저가 있는 반면, 방금 저장한 동영상을 넷에 올리기 위해 황급히 로그아웃하는 유저도 있었고, 개중에는 친구들에게 방금 본 일에 대해 자랑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이도 있었다. '나 방금 이런 것 봤다~'식으로 말이다.

그들이야 어쨌든 다크가 하이딩 상태로 돌아서자, EM과 GM들이 거의 포위하듯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당신 누굽니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아세요!?"

"EM입니까. GM입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그들의 질문 공세에 다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 레드 드래곤의 모습이기에 인상을 쓰자 상당히 험악해 보인다.

"한 분씩 질문하시죠. 아니, 우선 이 녀석부터 처리하고 봅시다."

그런다고 질문 공세를 멈출 운영자들이 아니었지만 다크는 깨끗이 무시한 채 아이다콘에게 고개를 돌렸다.

"엠. 이 녀석 인간형으로 강제 폴리모프 시켜."

잠깐의 빛이 터지고 다크의 주먹 안에 검은머리의 가느다란 미소년 하나가 잡혀 들어왔다. 허나 그런 상태에서도 아이다콘은 반항을 시도했다. 크기가 줄어든 덕분에 막혔던 입도 풀린 것이다.

"빌어먹을. 헬 파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크는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커억!"

드래곤의 손아귀 힘이 좀 세던가. 당연히 아이다콘은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느낌에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역시 얌전히 당할 다크가 아니다.

"아직도 반항이냐. 이거 웃기는 A.I네. 대체 어떻게 꼬인 거야?"

다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이다콘을 고정시켰다. 바로 세이어스와 똑같이 굳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뒤 외모 변환까지 풀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앗! EM이잖아?"

"그렇다면......"

다크의 황금빛 로브와 마스크를 보자 그제야 운영진들은 그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약간 눈치챘긴 하다. 평소에도 마구 능력 남용을 하는 EM 다크가 아니라면 누가 저런 과감한 짓을 하겠는가.

"자, 그럼 이 것 받으시고."

다크는 품에 안겨 굳어 있는 아이다콘을 바로 앞에 서있는 GM에게 넘겼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든 GM 데카레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이걸 왜......?"

다크는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한 태도로 대답했다.

"꼬인 A.I 복구 안 시킬 겁니까?"

멋쩍어진 GM 데카레는 아이다콘을 챙겨 들고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가 물러서자 다크 주변에 있던 GM들 중 하나가 대표로 나서서 따지기 시작했다. GM 듀크. 온라인 운영과의 과장인 김 정삼이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EM 다크님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다크는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관여 못할 것은 또 뭡니까? 전 운영자 아닙니까?"

그 담담한 대답에 듀크는 약간 움찔했지만 그래도 지지 않고 다시 따졌다.

"운영자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GM 수칙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지 않습니까."

다크는 혀를 찼다.

"쯧. 뭔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뭐가 착각이란 겁니까?"

"지금 상황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전 도무지 모르겠답니다."

듀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다크의 뻔뻔함에 치를 떨며 소리쳤다.

"뭐가 문제라니요. 전부 다 문제 아닙니까! 이건 대형사고라고요!"

이래서 고지식한 GM은 문제라고 다크는 생각했다. 당장 눈앞의 일만 보고 상황 전체를 볼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어디 하나 하나 따져 봅시다. 여기 이렇게 많은 운영자가 모인 것은 코드 식스 상황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워낙 유저들이 많아서 함부로 아이다콘을 잡아들이지 못했지요. 버그라는 것이 티 날까봐 말입니다. 맞죠?"

말없이 고개만 끄덕임으로 긍정한 듀크를 보며 다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내버려두면 수많은 유저가 몰살하고 도시가 완전히 박살날 뻔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도시의 유저들까지 당했을 수도 있지요.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넷이 난리가 나고 어마어마한 항의가 들어왔을 겁니다. 그렇죠?"

듀크는 얼떨떨하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수동 이벤트를 열었고 EM의 모습이 아닌 다른 드래곤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다콘을 잡아 들였습니다. 아무도 아이다콘의 A.I가 꼬였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고, 그냥 메인 스토리에 따른 특별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겠지요. 아마 상당히 볼만한 이벤트였을 겁니다. 일부러 이팩트도 화려한 마법을 쓰고 했으니까요. 여기까지 다 맞죠?"

"그. 그렇지만......"

"맞습니까. 틀립니까?"

"......"

그제야 듀크는 이미 상황이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그 것이 다크 덕분임을 깨달았다. 당장 눈앞의 일이 너무 어이없어서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아주 훌륭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그렇게 얼떨떨해 하는 듀크를 보며 다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류가 난 A.I도 잡아서 넘겨드렸고, 유저분들도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피해가 약간 있긴 했지만 내버려뒀으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테니 지금 것은 아주 약소한 것이죠. 자, 그럼 여기서 제가 뭘 잘못한 것인지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듀크는 당황하여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고, 그 틈에 다크는 씨익 웃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럼 또 다른 질문이나 항의는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전 바빠서 이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크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하다 말고 온 무희들의 댄스 공연 이벤트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이번 이벤트도 참 재미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가 사라진 후, 듀크는 남몰래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약아 빠진 놈......"

실로 정확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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