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42화 (42/74)

4. 버그?

2178년 11월 3일.

제 1 이벤트 관리과의 김 진혁 과장이 그를 특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지원.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하자마자 GM 로이니아에게서 넘겨받은 불량 유저 리스트를 살폈다. 오늘 개인 이벤트를 선사 받게 될 행운의 유저를 뽑기 위해서다.

정말 행운인지 아닌지는 당해본 자만 알겠지만. 어쨌든 지원은 현재 에피소드에 접속중인 불량 유저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 몇 명의 유저를 추려냈다.

"엠. 지금 내가 하이라이트 시켜둔 유저들 정보 좀 대충 수집해."

[네. 지원님.]

의자에서 일어나며 명령한 지원은 엠의 대답을 들으며 넷룸으로 들어섰다.

"자아, 그럼 오늘도 보람찬 하루 일과를 시작해 볼까나."

실실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캡슐에 몸을 누이곤 곧바로 에피소드에 접속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따끔함이 지나가고 언제나 그렇듯 얼얼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에피소드 내의 EM 휴게실에 모습을 드러낸 다크. 그는 자신의 등장에 시선을 집중한 다른 EM들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고는 곧장 새로 마련한 아지트로 이동했다.

그렇게 어느 넓은 공동에 도착한 그는 한편에 마련해놓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밀 던전은 유저들의 발길이 또 닿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이번엔 드래곤의 레어를 아지트로 삼은 것이다.

드래곤들이야 죄다 해츨링 찾으러 바티안 제국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 그대로 빈집인데다가, 어느 정신 나간 유저가 드래곤의 레어에 들어오겠는가. 그야말로 최적의 아지트라 할 만하다.

[정보 수집 완료입니다.]

엠은 그렇게 말하곤 곧장 정보를 다크의 눈앞에 띄웠다. 다크는 떠오른 그 정보들을 살피다,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유저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이동 명령어를 사용했다.

에피소드에는 합법적(?)으로 악질 플레이가 가능한 직업이 있다. 시프(Thief). 즉 도둑이다. 도둑이야 훔치는 것이 당연한 직업이니 업체 측에서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게 하라고 만든 직업이지 않은가.

그저 롤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유저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 것도 다 게임 속의 색다른 즐거움 내지는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악질적으로 초보들의 푼돈만 노리거나, 만만한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주시하면서 수시로 와서 털고 또 털어 가는 상습 도적 등으로 인해 시프 계열 직업에 대한 수많은 항의가 GM들에게 들어오고 있다. 그래봤자 그저 해결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밖에 듣지 못構憫嗤?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항의 중 하나가 다크에게 건네졌고 그는 지금 그 항의 속 주인공인 어느 도적 플레이어에게 와 있다. 당연히 이벤트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오늘은 요거밖에 못 벌었나. 영 시원찮구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어두운 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이 유저의 이름은 스핀. 그가 활동중인 가딘 시에서 상당한 악명을 떨치는 도적이다. 그의 악명이 그렇게까지 퍼진 이유를 말하자면. 다른 도적들은 훔쳐갔는지도 모르게 슬쩍 소매치기를 하지만, 스핀이 택한 방식은 도둑이라기 보단 강도, 혹은 협박, PK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의 방식은 이렇다.

적당한 유저를 물색해 타겟을 정하면 얼른 쫓아가서 소리친다. '순순히 가진 거 다 내놔! 안 그러면 죽인다!"라고 말이다. 그건 한적한 숲 속이나 초원이 아니라 거의 도시나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당연히 '미친놈'이라고 가뿐하게 말해주고 갈 길을 간다.

PK했다가는 당장 경비병이 쫓아오는 도시 내에서 강도가 웬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자 대응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스핀은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갖은 욕설과 놀림으로 타겟의 화를 돋구고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한다. 물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당장 PK범으로 신고될 테니 말이다.

이럴 때 타겟이 된 유저는 일단 참으려 한다. 참을 인자를 머릿속에 수십, 수백 번 되뇌며 참으려 한다.

허나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계속되는 욕설과 조롱, 모욕은 진짜 도를 깨달은 도인이거나 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기를 들게 되어있다. 한적한 곳으로 가도 스핀은 계속 따라오니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도리어 반격 당할까봐 겁낼 수도 있지만, 스핀은 黴탔?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보이는 유저만 고르기에 대부분은 사납게 공격한다.

그러면 상황은 끝.

먼저 공격한 것은 타겟쪽이기에 스핀에게는 정당방위가 되어 PK가 허용된다. 그럼 스핀은 당장 독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스핀이 어느 퀘스트를 깨고 얻은 이 독에 중독되면 해독약을 먹을 틈도 없이 2초안에 사망한다. 스핀의 필살기인 셈이다.

이렇듯 악독한 행위를 한두 번이 아닌 수십 번 계속하자 결국 그 악명이 퍼지게 되고, 결국 다크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행운(?)을 얻은 스핀이었다.

이제 스핀은 다크가 은밀히 미행하는 가운데 다음 타겟을 물색중이었고, 다크는 가만히 그의 뒤를 쫓으며 중얼거렸다.

"어떤 이벤트를 열어줄까."

엠이 가져다주는 정보만이 아니라 해당 유저를 직접 살피고 나서 이벤트 내용을 구상하는 것은 이제 다크의 버릇이 되었다. 직접 보고 어떤 성격과 스타일인지 판단한 다음, 이벤트를 기획해야 그 유저와 가장 잘 어울리고. 또 기발하고. 독특하고. 멋지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나온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다크가 기획한 이벤트 중에 기발하고 독특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냐만은. 일단 본인의 생각이 그렇다니 그냥 인정해주자.

그렇게 한동안 생각하던 다크는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순간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곧장 이벤트 세팅 툴을 열고 기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 것도 이젠 웬만큼 숙달되었는지 그 속도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얼마 후 기획이 완료되었다. 이벤트 세팅 툴에서 직접 작업했기에 엠의 변환이 필요치 않았고, 곧 다크의 눈앞에 이벤트 온 스위치가 떠올랐다.

"독만 빼앗으면 더 이상 그 짓을 못하겠지? 후후."

다크는 음흉하게 웃으며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창백한 안색의 20대 후반 남자가 스핀의 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기에 당연히 스핀은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뭐. 뭐야?"

남자는 우울한 표정으로 스핀을 쳐다보았다. 그의 이름은 조엔. 이번 이벤트의 주인공인 NPC다.

"당신은 날 죽여줄 수 있습니까?"

스핀은 황당한 표정으로 조엔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난데없이 나타나 죽여줄 수 있냐고 물으니, 무척 황당했기 때문이다.

"너 미쳤냐?"

"난 죽고 싶습니다."

이벤트 NPC 특유의 동문 서답은 오늘도 계속된다.

"정말 미쳤군."

"날 죽여주십시오. 보답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스핀은 '이건 미친놈이다!'라고 확신하고는 그대로 조엔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 허나 조엔은 그걸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윽? 뭐야. 이거 못 놔?"

스핀은 자신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 조엔을 떨구기 위해 힘을 써봤지만, 조엔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온 몸으로 다리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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