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버그?
"날 죽여주기만 하면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솔깃한 제안에 스핀은 문득 행동을 멈췄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 정말?"
"절 죽여주십시오!"
여전히 동문서답을 계속하는 조엔을 노려보던 스핀은 갑작스레 머리를 스쳐간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것이...... 너 설마 NPC냐?"
그때 마침 스핀의 눈앞에 시스템 메세지가 떠올랐다. 제목은 '죽고 싶어하는 남자'. 내용은 '이 퀘스트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 - No'였다. 그 밑에 퀘스트에 대한 내용이 주르륵 써져 있었지만, 스핀은 첫 몇 줄만 읽고 그냥 눈을 돌렸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죽고 거리를 痢킴?거지가 되어 어쩌고 하는 걸 보아,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서다. 너무 식상한 스토리라 더욱 그랬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정말 NPC였네. 근데 죽고 싶은 남자라니. 무슨 놈의 퀘스트가 이래?"
불만이 가득한 듯한 중얼거림과 달리 스핀은 얼른 Yes를 선택했다. 평소 플레이어 죽이기를 밥먹듯이 해온 그에게 NPC 하나 죽이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이렇게 쉬운 퀘스트가 제 발로 굴러 들어온 것이 반갑기 그지없는 스핀이었다.
물론 '이렇게 쉬운 퀘스트'라는 것은 스핀만의 착각이다. 내용을 조금만 더 읽었다면 결코 쉽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리라.
스핀이 퀘스트를 수락하자 조앤은 매달리기를 그만두고 일어나 섰다.
"죽여주시려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흐흐흐."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조앤에게 음산하게 웃어 보인 스핀은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잘 조준하여 그대로 조앤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잘 가라!"
조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라고 되어야 정상이리라.
헌데 이게 웬일?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 하나가 단검에 몸을 들이박는 바람에 스핀이 단검을 손에서 놓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에엥?"
스핀은 자기도 모르게 묘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놈이 돌멩이 따위를 던졌는지 찾아내서 뒤통수를 후려쳐 주기 위해서다.
허나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한참을 두리번거렸으나 스핀은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 돌멩이는 이벤트 진행 보조 소품으로 바로 다크가 던진 것이니 말이다.
"젠장. 잽싸게 던지고 튀었나보군. 할 일도 더럽게 없는 놈 같으니라고. 오크한테 똥침 맞아 죽어라! 빌어먹을!"
보이지도 않는 범인을 찾을 재주는 스핀에게 없었기에 결국 그는 범인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 다크가 자신을 욕하는 스핀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살짝 펴주었다는 것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
스핀은 땅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다시 주워 들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절대 방해받지 않겠다는 듯 주변을 열심히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두 번, 세 번 확인이 끝나자, 겨우 안심한 스핀은 다시 한번 조앤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찔러갔다.
"이번엔 정말 죽어라!"
그렇게 과감하게 내지르기는 했는데......
탱! 챙그랑!
"크아악! 또!"
다크가 던진 돌은 다시 한번 스핀의 단검을 맞춰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에 광분한 스핀은 펄쩍펄쩍 뛰며 살벌한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허나 그의 눈에 보일 리가 없는 다크이니 당연히 스핀은 범인을 찾지 못했다.
"제기랄. 어떤 놈이 숨어서 이 지랄을 하는 거야! 어디 있어! 당장 튀어 나왓!"
스핀은 그렇게 소리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다고 나타나면 다크가 EM이 아니다. 다크는 그저 희미한 미소만을 띄운 채 스핀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살해 시도마저 실패하자,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조앤은 정해진 대사를 읊었다.
"역시 전 죽을 수조차 없는 건가요. 어찌하여 내게 이런 저주가. 크흑."
한참 날뛰던 스핀은 '저주'라는 말에 흠칫하며 조앤에게 눈길을 돌렸다.
"저주?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저주 걸렸어?"
조앤은 눈물만 주르륵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말해야할 대사는 입력되
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 울지만 말고 말을 해!"
스핀은 조앤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이런다고 있지도 않은 대사가 튀어나올 리는 없다.
뒤늦게야 그걸 깨달은 스핀은 신경질적으로 조앤을 땅에 패대기치고 자신의 캐릭터 정보를 띄웠다. 그 정보창 한구석에 현재 진행중인 퀘스트 정보를 볼 수 있는 버튼이 있었고, 그걸 누르자 곧 '죽고 싶어하는 남자' 퀘스트 관련 설명이 떠올랐다.
"조앤이 태어난 다음날 그의 부모는 귀족의 마차에 치여 죽고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작게 소리내어 설명을 죽 읽어 내려가던 스핀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그러나 그 환함은 오래가지 못했고, 갈수록 점점 구겨졌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완전 울상이 되어 버렸다.
일단 이 변화무쌍한 표정의 이유를 알아보자.
퀘스트 내용의 초반은 조앤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간단히 적어둔 것이었기에 스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러다 중반에 있는 이번 퀘스트를 깨고 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에서 순간 표정이 환해졌었다. 무려 백만 골드를 준다고 했기 때문에. 백만 골드면 작은 성도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최상급 퀘스트에나 붙을 만한 보상이다.
그리고 인상이 점점 구겨졌던 이유는 후반에 나온 내용. 조앤이 자신의 고달픈 신세를 한탄하다 어느 절벽에서 몸을 던졌을 때, 그 아래에서 모종의 실험을 하던 흑마법사를 깔아뭉갰고, 그로 인해 받은 저주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이 저주는 조앤이 원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 즉 '죽지 못하게 하는 저주'다. 죽고 싶어서 나무에 목을 매달면 밧줄이 끊어지고, 바다에 뛰어들려 하면 모래사장에 발이 파묻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높다란 신전 지붕에서 뛰어내리면 나무에 몸이 걸리고, 날카로운 칼을 사다 배를 찌르려하면 칼이 똑 부러진다.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 조앤에게는 그야말로 끔찍한 저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핀의 표정이 울상이 된 것은 이 퀘스트를 깨지 못하면 받게 되는 불이익 때문이다. 퀘스트를 받아들인 후 12시간 내에 조앤을 죽이지 못하면 조앤이 그를 죽이며, 또 죽게되면 능력치가 50%나 떨어진다. 어떻게 반격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모르지만 죽일 수도 없는 상대이기에,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게 앞만 보고 뒤의 내용이 예상된다며 안 읽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니까. 그게 퀘스트 설명이든. 소설이든 간에 말이야. 후후."
다크의 비웃음과도 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상황을 깨달은 스핀의 처절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비. 빌어먹을. x 됐다!"
허나 그가 소리를 지르든 발광을 하든 간에, 이미 엎질러진 물에 지나간 버스다. 스핀도 바보는 아니기에 그 정도는 안다.
"어떻게 하지.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 그렇지! 야! 너. 너 말야. 지금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 버려! 당장 버려!"
스핀은 팽개쳐진 채 아직도 쓰러져있는 조앤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그도 꽤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죽고 싶어하기 때문에 안 죽으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게 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책이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대책이기도 하다. 그가 그렇게 소리친다고 하급 A.I인 조앤이 알아들을 리도 없고, 또 이번 퀘스트를 깰 수 있는 방법은 그게 아니니 말이다.
"생각을 버렸나? 안 버렸나? 대답이 없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스핀은 조심스레 단검을 다시 주워 조앤의 목에 갖다대려 해보았다.
"쯔쯔."
그 모습에 짧게 혀를 찬 다크는 또 돌멩이를 던졌고, 단검은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생각 좀 버리라니까 말 지지리도 안 듣네. 아니, 해결 방법이 이게 아닌가?"
스핀은 끙끙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죽기도 싫고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도 싫다. 그러니 어떻게든 퀘스트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고, 결국 스핀은 되든 안 되든 죽이려는 시도나 마음껏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스핀은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조앤을 질질 끌고 마을을 벗어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그가 종종 타겟을 처리했던 작은 숲의 초입. 여기서 갖가지 살해 방법을 사용해 보려는 것이다. 일단 사람들이 지나쳐 다니는 마을에서 하기는 좀 그런 행동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선 때려 죽여 볼까?"
하지만 주먹으로 조앤을 때리려 하면 다크가 등을 떠밀었고, 발로 차려하면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돌멩이들을 던지면 조앤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럼 밧줄로?"
스핀이 어디선가 구해온 밧줄로 조앤의 목을 조르려 하자 다크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큼지막한 가위로 밧줄을 싹둑 잘라 버렸다.
"장거리 무기는 어떨까? "
스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쓰지도 않으면서 둘러매고 다니던 활을 쏘았다. 그러자 다크는 조앤 앞에 슬쩍 방어막을 쳐주었다. 화살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떨어졌고, 스핀은 크게 실망하며 다른 방법을 구상했다.
"그래. 맞아. 내게 있는 레드 포이즌(Red Poison)을!"
순간 다크의 눈빛이 번뜩였다. 당연히 스핀은 그걸 알지 못했고, 희희낙락하며 그의 겨드랑이 부분에 장착된 독 분사기를 쳐다보았다. 지금껏 이 독으로 못 죽인 사람은 없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까 세 사람 정도는 죽일 수 있는 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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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께서 즐거워하실만한 소식 하나 알려드립니다.
(뒷잡담 안 붙인다더니 또 붙였어!)
요즘 은자림에선 묘한 내기가 벌어지고 있답니다.
사대 고수 열전이라는 이름인데
어느 정도의 분량을 매일 연재하는 내기지요.
연재를 하루라도 펑크내면 지는 거랍니다.
원래 저는 그 내기에 끼지 않았었는데
은자림에서 '미스치프'라는 판타지를 연재하는 작가와
그 열전과 똑같은 내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매일 연재'내기입니다. '매일 연재'
그 작가는 미스치프로. 전 E.M으로......
상당한 거금이 걸린지라 절대-_- 질 수 없는 내기지요.
고로 앞으로는 매일 E.M을 보실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내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말입니다.
즐거운 소식 맞지요?
제가 이기기를 빌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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