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45화 (45/74)

4. 버그?

제각각 한마디씩 하는 쉐자 돌림 파티를 지켜보는 다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다. 이들을 그냥 들어가게 내버려두느냐. 아니면 막느냐. 정말 드래곤을 잡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기에 버그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것이다.

잠시 후, 쉐나의 손에 들린 로드(Lod) 끝에 어두운 통로를 밝혀줄 빛의 구슬이 맺혔다. 라이트(Light)마법이다.

"문이 닫히던지 말던지. 어차피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나갈 것도 아니잖아? 자, 가자고!"

힘차게 말한 쉐나는 일행을 재촉했고, 곧 그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엠이 정보 수집 완료를 알려 왔다.

[쉐나, 쉐반, 쉐인 유저의 정보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엠의 말이 끝나자 곧 다크의 눈앞에 셋의 플레이 정보가 떠올랐다. 하지만 모든 기록을 남겨두지 않기에 정보는 무척 단편적이었고 또 최근 것뿐이었다. 유저들의 플레이 정보를 세세하게 다 기록하여 남겨두었다면, 에피소드의 메인 서버는 삼분도 안되어 포화 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떠오른 정보를 빠르게 훑어보던 다크는 자신이 원하던 기록이 없음을 깨닫고 미련 없이 정보를 지웠다.

"엠. 퀘스트에 대한 기록은 안 남나?"

[남습니다만. 하루 간격으로 삭제됩니다.]

"특정 퀘스트를 해결한 유저가 있나 없나 같은 것은? 하급말고 상급 이상으로 말야. 그런 것도 안 남겨두나?"

[최상급 퀘스트를 클리어한 유저 리스트는 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퀘스트도 최상급이지? 그걸 클리어한 유저가 있는지 봐봐."

[현재로선 클리어한 유저가 없습니다.]

다크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그는 엠에게 재차 확인했다.

"정말 없나?"

[네. 확실히 한 명도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로군요. 이 던전의 위치는 그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버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것? 그리고 그의 예전 아지트였던 비밀 던전은 또 어떻게 찾아냈던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겼다.

"엠. 예전에 내가 아지트로 쓰던 비밀 던전 말이야. 그 쓰리 헤드 골렘이 있던 곳. 거긴 무슨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알 수 있는 던전이지?"

[하이딘 공작 영애 구출 퀘스트입니다. 역시 최상급 퀘스트인데. 마찬가지로 클리어한 유저는 없습니다.]

그제야 다크는 쉐자 돌림 파티에 대한 의심을 확신했다.

"버그 플레이어로군. 아니면 직원 중 하나가 정보를 유출했던가."

다크는 일단 이들 파티의 앞길을 막기로 했다. 던전의 문은 닫혔으니 앞길만 막는다면 그들이 도망갈 길은 없게 되는 셈이다. 잡아놓은 후 확실하게 알아보고 현행범으로 처벌하려는 것이다. EM이긴 하지만 GM의 권한도 있기에 당연히 계정 블럭 등의 제재 능력이 있다.

그렇게 결심하고 지엠 툴을 불러들인 다크는 쉐자 돌림 파티 앞에 두께 3미터짜리 철벽을 덜컥 세워버렸다. 그로 인해 쉐인과 쉐반, 쉐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춰야했다.

"쉐인. 이게 뭐야? 함정은 없다며!"

"아냐. 분명 함정은 없었어. 내 실력 알잖아."

쉐반의 추궁에 쉐인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의 탐색에는 아무런 함정도 잡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 철벽은 원래 저기 있던 거란 말이야?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시지."

"절대 인정 못해! 분명 함정은 없었단 말이야!"

앞, 뒤가 다 가로막힌 암담한 상황에도 쉐반과 쉐나는 그저 장난처럼 쉐인을 추궁할 뿐이었다. 그만큼 태연했다는 말이다. 다크는 그 점이 의아했지만 그냥 무심코 넘기며 하이딩을 풀었다.

"안녕하십니까. EM 다크입니다."

EM 정식 제복인 황금빛 로브와 마스크의 다크가 나타나자, 쉐자 돌림 파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동안 한 짓이 있으니 뜨끔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 문득 쉐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EM 다크? 설마 그 EM?"

에피소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EM 다크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넷홈에서 항상 이슈로 떠오르는 인물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 EM이라는 말씀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모르겠지만. 에피소드에 EM 다크는 저 하나뿐입니다."

쉐반은 감탄사를 내지르며 다크에게 바싹 다가왔다.

"와, 그 유명한 다크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반가워요. 저 쉐반이라고 합니다."

그는 친근감을 표시하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크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이름이야 이미 아는 것이고 여자도 아닌 남자가 뭐 그리 반갑겠는가. 그래도 대답은 참기름을 바른 듯 부드럽게 흘러 나왔다.

"네. 반갑습니다. 쉐반님."

쉐반은 다크의 정중한 대답이 돌아오자 호들갑스럽게 다시 말을 이으려했다. 하지만 쉐인이 억지로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겼다.

"연예인 만났냐? 뭐 그리 난리야."

"웁웁!"

"닥치고 가만있어. 이 촐랑아."

어쩐지 유쾌한 패거리라는 생각이 드는 다크였다. 마음에 드는 유저들이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다. 그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석대로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잠시 멈추시고 제 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무척 중요한 사항이니 오직 진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쉐자 돌림 파티는 서로의 얼굴을 흘끔거리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쉐나가 대표격으로 나서며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다크는 잠시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의 우선 순위를 따져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어떻게 이 던전에 오시게 된 것입니까?"

"이 화산 속에 이상한 던전이 있다는 말을 지나가다 언뜻 들었어요."

심드렁한 쉐나의 답변에 다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A급 비밀 던전이 무슨 오크 캠프도 아니고, 지나가다 언뜻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믿기 힘들군요."

"그래도 믿으셔야 할 거예요. 그 말 외엔 전 대답할 것이 없으니까."

"......"

다크는 쉐나가 대표로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기기의 명수, 아니면 상당한 말발의 소유자이리라. 증거가 없는 이상 그냥 '우연'이었을 뿐이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다. 다크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임 동원 부장이 이들을 제재하지 못한 채 특별 감시만 시킨 이유도 바로 이 오리발에 있었다.

"왜 그러시죠? 저희가 이 던전을 클리어하러 온 것이 잘못이기라도 한가요?"

태연스런 쉐나의 물음에 다크는 일순간 말을 잊었다. 잘못? 잘못은 아니다. 게임 속에 던전을 만들어두는 이유는 유저에게 클리어시키기 위해서니까. 단지 문제는 이들이 이 던전을 찾게 된 경위일 뿐이다.

"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던전에 오시기 위해서 먼저 실행하셨어야할 일을 이루지 않으셔서요."

"안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쀼루퉁한 쉐나의 물음에 다크는 다시 혼란스러워야만 했다. 안 하면 안 되나? 그런 규칙은 확실히 없다. 하지만 해야만 알 수 있는데 안 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단지 특정 퀘스트를 클리어하셔야만 이 던전의 위치를 알 수 있거든요."

"그렇군요. 하지만 저희는 그냥 길 가다가 들었을 뿐이에요. 해드릴 수 있는 답변은 그게 다랍니다. 그러면 다른 질문이 또 있으시나요? 없으시면 저희는 어서 빨리 여길 클리어하고 싶은데. 이렇게 덧없는 일에 까먹기에는 제 플레이 시간이 아까워서 말이죠."

다크는 지금 그가 쉐나에게 마구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 성격대로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냐고 버럭 화를 내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업무'이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주)테이머에 근무하는 운영자가 아닌가. 아무리 막 나가는 고객이라도 언제나 정중해야만 한다.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 그러나 애초에 다크가 업무라는 이유 때문에 하고싶었던 일을 안한 적은 없다.

"에?"

그동안 상대했던 다른 운영자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당황한 쉐나는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다크는 상당히 건방진 태도로 척하고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오리발도 정도가 있습니다.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계속 우긴다고 혐의가 벗겨진답니까? 어서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계속 우기시면 정상 참작의 기회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엄청난 우연으로라도 길 가다가 이런 귀한 정보를 얻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다크는 그렇게 당당하게 쉐나를 추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실제로 쉐나가 길가다 들은 것이 아니니까.

어쨌든 그 강렬한 추궁에 무척 당황해버린 쉐자 돌림 파티 전원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 결국 다시 쉐나가 대표격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 상당히 기분 나쁜 태도군요. 운영자 맞아요? 우리도 고객인데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건가요?"

다크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욕설을 퍼부어도 항상 정중하기만 해서 운영자를 완전 물로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운영자도 감정이란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대놓고 상대를 무시하면서 존중받기를 원하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그런 것 가만히 두고 못 봅니다. 진실을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는 제게서 정중한 태도를 바라지 마십시오."

단호한 그의 대답에 쉐나는 그 잘난 말발을 하나도 세우지 못한 채 입만 쩍 벌렸다. 이런 운영자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 것도 엄연히 '서비스업'인데 말이다.

그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쉐인이 쉐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슬쩍 눈짓을 했다. 다크는 모르지만 이때 이들 사이에선 쉴 틈 없이 메모가 오고 가고 있었다.

"어서 제대로 답변해 주십시오. 어떻게 이 던전을 찾아오신 겁니까?"

다크가 재차 다그치자 쉐나 대신 쉐인이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길가다 우연히 들었을 뿐입니다. 우리를 계속 추궁하고 싶거든 증거를 가져  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쉐자 돌림 파티원 전원이 그 자리에서 로그 아웃 해버렸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그걸 알아챈 다크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했다.

"미리 로그 아웃 못하게 해놨어야 하는 건데.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이그."

허나 이미 상황은 끝난 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계속 자책하는 것은 다크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미련 대신 다크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비웃음이었다.

"흐흐. 그래. 오늘은 이렇게 도망갔다만. 어디 다음에도 그러나 두고 보자. 접속하기만 해봐라."

반드시 증거를 잡아내거나 자백을 받아서 저들을 처벌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다크였다. 과연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만남으로 인해 다크가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특별 감시를 받고 있던 쉐자 돌림 파티원들이 당당하게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다크가 이 곳으로 이동한 순간 끊어져버린 이벤트 1과 김 진혁 과장의 눈길. 또 서 승익 부사장을 위해 진영이 저장하던 다크의 동영상이 멈춘 이유. 바로 이 것들 때문에 생긴 오해와 누명으로 인해서 말이다.

EM 다크. 서 지원이 어떤 식으로 그 고난을 헤쳐나갈지 한번 두고 보자.

--- 4챕터 완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