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48화 (48/74)

5. 휴가

"지금 누굴 놀리나?"

"시파. 언젯적 개그를 하는 거냐!"

당장 검을 뽑아 덤빌 듯한 과격한 반응들이 터져 나오자, 다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거 농담 한번 했다가 살해당하겠군요. 자자, 진정들 하시고......"

잠시 말을 끊었던 다크는 바로 분수대를 박차고 뛰어 오르며 빠르게 외쳤다.

"시작합니다!"

"......?"

말장난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너무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 유저들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뭐. 뭐야? 지금?"

뒤늦게 서야 다크가 한 마지막 말의 의미를 알아챈 유저들이 분노에 소리를 질렀다.

"크악! 저런 사악한 놈을 봤나!"

"빌어먹을. 저 놈 잡히면 죽었어!"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순식간에 유저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면서 달아난 다크는 이미 광장 저 끄트머리까지 달려가 있었던 것이다. 가히 놀라운 잔머리에 엄청난 속도라 할 만하다.

"거기 서! 서란 말이야! 안 서면 죽여 버린다!"

"그래. 서! 제발 서! 서면 죽일게! 응? 아니, 안 죽일게!"

큰길을 따라 달아나는 다크의 뒤를 마구 쫓는 사람들. 개중엔 장거리 무기인 활이나 다트, 대거, 슬링(Sling:소형 투석기-돌팔매)등으로 다크의 등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다크는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그 것 모두를 살살 피해가면서 계속 달아났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다크는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외치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길 옆 잡화점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곧장 옆 건물의 지붕으로 건너뛰며 계속 지붕을 타고 달아났다.

그러자 그를 쫓기 위해 수백 명의 유저들이 우르르 지붕 위로 올라왔고, 처음 다크가 올라섰던 잡화점의 지붕은 그 많은 유저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쿵 하고 내려앉기까지 했다.

그 후로도 계속 지붕을 타고 달아나는 다크를 쫓는 유저들 때문에 내려앉는 지붕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러다 너무 많은 건물이 박살날 것만 같자, 다크는 얼른 지붕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뛰었다. 당연히 그의 뒤를 쫓던 유저들도 길로 내려서서 쫓아왔고, 더 이상 멀쩡한 건걋?지붕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마법으로 하늘을 날거나 말을 타고 오는 다크를 쫓는 이도 몇 보인다. 물론 그들보다 다크가 더 빨랐기에 헛수고를 하는 셈이지만 말이다.

"유후~"

다크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손으로 키스까지 날리는 여유를 보였다. 그 모습에 몇몇 유저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느끼한 놈아! 그만두지 못해!"

"저 놈은 넘어지지도 않나? 게다가 왜 이렇게 빨라!"

"헤이~ 앞에 가는 잘생긴 오빠! 나한테 잡혀주면 내가 키스해줄게~!"

그의 뒤를 쫓는 사람 중엔 여성 유저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다크는 뒤를 힐끔 쳐다보며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나 눈 높아!"

그 말에 너무도 어이가 없었던 유저 몇이 허허 웃었다. 도망가는 놈이 저런 농담 따먹기까지 하니 당연히 어이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크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마냥 달리기만 해서는 못 잡는다는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닌 것이다.

그때, 다크의 뒤를 쫓던 마법사 유저들이 짜기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마법 시동어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Charm:매혹)!"

"슬립(Sleep:수면)!"

"슬로우(Slow:감속)!"

"컨퓨전(Confusion:혼란)!"

"블라인드(Blind:실명)!"

다크의 걸음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기 위해, 각종 상태이상 마법들이 거의 다 동원된 듯 하다. 허나 이런 마법들은 대부분 하위 서클의 마법이다. 지금 다크의 캐릭터는 갖가지 능력치가 골고루 올라간 전천후 캐릭터. 당연히 마법 방어력도 높다. 1~2서클 마법으로는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얘기다.

"저 자식. 마법도 안 통하잖아?"

"그럼 어디 이 것도 안 통하나 보자. 그리스(Grease:기름)!"

"웹(Web:거미줄)!"

순간 다크의 앞길에 질펀한 기름이 좍 깔리고 허공에 촘촘한 거미줄이 걸렸다.

"맙소사! 이거 위험한데?"

허나 두려워하는 듯한 말의 내용과 달리, 다크는 너무도 가볍게 기름과 거미줄이 깔린 부분을 뛰어 넘었다. 한정된 범위에만 적용되는 마법이기에 그 넓이나 높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다크가 만들어낸 캐릭터. 딘 코렐의 높은 힘과 민첩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결코 넘지 못했으리라.

"10점 만점!"

멋들어지게 땅에 착지한 다크는 자신의 착지 자세에 제멋대로 점수를 매기곤 다시 뛰기 시작했다. 조금은 걸음이 늦춰지리라 기대했던 마법사 유저들은 그 멀쩡한 모습에 욕설을 퍼부으며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우당탕! 콰당! 데구르르......

순간 들려온 묘한 소리들에 다크는 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상당히 우스운 광경이 포착되었다. 그를 잡기 위해 깐 웹과 그리스로 인해, 선두에서 뒤쫓아오던 유저 상당수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거미줄에 매달려 버린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잡아야할 사람은 못 잡고 왜 엄한 사람을 잡는 거야!"

"이거 깐 놈 누구야!?"

"당신 옆에 넘어져 있는 난데."

"......"

포개지고 매달리고 엎어진 수십 명의 유저들. 그동안 내내 선두를 지키며 다크를 바짝 쫓아오던 이들이 죄다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덕 본 것은 선두 그룹 바로 뒤에 있던 유저들이었다. 선두의 유저들이 온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줬기에 사뿐하게 그들을 타 넘어 오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이로서 중도 탈락된 유저가 60여명. 이제 선두 그룹은 새로운 얼굴들로 바뀌었고 다시 추격전이 재개되었다.

"저거 플레이어를 가장한 데몬이라도 되는 것 아냐?"

새로 선두가 된 유저들은 거의 괴물 보듯 다크의 등을 노려보았다. 죽어라 달리고 또 달려도 5미터 간격 이내로 다가간 유저가 하나도 없을 정도라니. 대체 민첩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아직 다크는 전속력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유저들이 자신을 죽어라 쫓아오도록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5~10미터 간격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전력을 다했다면 이미 유저들의 눈을 피해 어딘가에 숨을 수도 있었으리라.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렇게 소리친 다크는 슬슬 속도를 높였다. 자극은 이 정도면 되었으니 이제 저 떼거리를 흩어놓고 각개격파 하려는 것이다. 와르르 몰려다니기만 해서는 진짜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순식간에 뒤쫓아오던 유저들과의 거리를 벌린 다크는 냉큼 큰길을 벗어나 작은 골목들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다크가 골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자 유저들은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흩어져 다크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그가 들어간 골목이 워낙 좁고 미로 같았던 탓에 그의 종적?놓쳐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마냥 뒤쫓아서는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이 조금씩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지붕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다크가 보이면 바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유저가 있는 반면, 패거리를 모아 공격을 준비한 채 다크를 찾아다니는 유저들도 있었고, 골목마다 덫을 놔 버리는 과격한 유저들도 생겨났다. 물론 이 무분별한 덫 놓기로 인해 엉뚱한 피해자가 속출했다는 것은 말 안 해도 알리라.

"이거 정말 짜릿한걸?"

다크는 흐뭇하게 웃으며 중얼거리고는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누비고 다녔다. 간간이 몇몇 유저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를 잡을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막 어느 골목의 코너를 돌던 다크는 마주 오던 한 유저와 딱 맞닥트려 버렸다. 체인 메일 세트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는 다크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들고 있던 검을 휘둘러 왔다.

"느려!"

짧게 소리친 다크는 오른쪽으로 휙 몸을 틀며 그 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그대로 자세를 낮추어 그의 종아리를 걷어찬 후, 그가 휘청하는 순간 몸통을 양손으로 확 밀어 버렸다. 그러자 그 유저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벽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즉시, 다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튀었다. 허나 얼마 안가 또 다른 유저 둘이 다크를 발견했다.

"앗! 데몬 아머다!"

"아싸! 넌 내 꺼야!"

다크는 입을 삐죽여 보이고는 훌쩍 뛰어 옆 건물 지붕 위로 올라섰다.

"내 이름은 데몬 아머가 아니라네. 친구들. 더불어 남자 것이 될 생각은 죽어도 없으니 꿈 깨시게나~!"

두 유저가 낑낑대며 지붕 위로 올라오는 사이 그렇게 말해준 다크는 그들이 막 올라서자마자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렸다.

"올라가느라 수고했네. 그럼 잘 있게."

황당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유저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준 다크는 그들이 내려오기 전에 얼른 다른 골목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5분 여쯤을 뛰었을까. 다크는 막 들어서려던 어느 으슥한 골목 앞에서 멈춰 섰다. 골목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찜찜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현실에서야 착각일 수도 있지만, 게임 안에서 이런 감각이 느껴질 땐 확실히 뭔가 있다. 그게 비록 망가진 덫 같은 시시한 것이라도 말이다.

다크는 되돌아갈까 하다가 지금 그의 능력에 뭐가 무섭겠는가 싶어 그냥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서너 걸음쯤 움직였을까.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땅 속에서 한 유저가 툭 튀어 나왔다. 지금껏 땅을 파고 숨은 채 다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싸! 잡았...... 에?"

그는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다크의 팔목을 붙잡았다고 생각했다. 헌데 감각이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해서 자신의 손을 쳐다보니 그가 잡고 있는 것은 어느새 뽑아든 다크의 검날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미리 경계하고 있었던 다크이기에, 그가 땅 속에서 나오는 순간 몸을 뒤로 뺏고, 손을 내미는 순간 검을 뽑아 내밀었기 때문이다.

주르륵.

당연하게도 검날을 맨손으로 잡은 그의 손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안 아프다고 계속 잡고 계시면 출혈 때문에 체력이 마구 떨어지실 겁니다."

다크의 친절한 충고에 그는 얼른 잡고 있던 검을 놓았다. 그러자 자유로워진 검을 허리의 검집으로 되돌린 다크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계속 수고하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으로 비껴 달려나간 다크는 휑하니 그를 지나쳐 도망갔다.

"앗! 거기 서!"

그는 후닥닥 다크의 뒤를 쫓았지만, 다크는 골목 여기저기를 뱅글뱅글 돌아 곧 그를 떨쳐냈다.

그 후에도 넓은 자이렌 시 전체를 이용한 대규모 술래잡기. 즉 다크의 도피 행각은 계속 되었다. 중간에 십여 명의 마법사 패거리를 만났을 땐 잠깐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가 입고 있는 데몬 아머가 마법 공격을 퉁겨내 주어서 다행이 무사할 수 있었다.

또 수십 개의 덫이 빼곡하게 깔린 골목을 넓이 뛰기로 지나기도 하고, 전사와 마법사 콤비의 합동 공격을 받아 약간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잡히지는 않았기에 유저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다크를 찾아 자이렌 시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대 여섯 시간이 지나자 처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유저들이 자이렌 시로 몰려들었다. 넷홈에서 이번 이벤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온 이들이다.

너무 많이 늘어난 적들로 인해 더 이상 살살 피해 다닐 수만은 없게 된 다크는 걸음을 멈추고 어느 인적 없는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NPC의 집인 듯 각종 살림살이들이 널려 있었지만 정작 주인인 NPC는 외출이라도 했는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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