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쉐자 돌림 파티
삐이이-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지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가장하며 문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무리 구식 빌라라 하더라도 문에는 카메라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 옆에 달려있던 작은 동물 조각이 슬쩍 움직여 지원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어서 문 옆에 달린 스피커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지원은 약간 목소리를 굵게 하며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대답했다.
"퀵 서비스입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덜컥 문이 열렸다.
"새벽에 주문했는데 벌써 오다니. 정말 퀵이네."
빠끔하게 열린 문틈으로 지원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나타났다. 우 대현. 에피소드 내의 이름으로는 쉐반이었다.
"퀵 서비스를 불렀습니까?"
지원이 그렇게 묻자 우 대현은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불렀으니까 온 거 아니우?"
지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약간의 의심 정도는 받을 거라 생각하고 몇 가지 대답도 준비해 놓은 그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문이 열려 버리니 황당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퀵 서비스를 불러놨었다니. 하늘이 지원을 돕고 있는 걸까?
"안 불렀는데 온 거다. 이 촐랑아."
지원이 대뜸 반말과 함께 자신의 별명을 내뱉자 대현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어진 지원의 행동에 그의 눈은 더욱 커졌다. 지원이 그의 멱살을 틀어쥐며 문안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더불어 지원 역시 안으로 들어서며 발로 문을 닫아 버렸다.
"당신. 컥!"
'당신 뭐야!'라고 소리치려던 대현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지원이 일본도를 도집째 휘둘러 배를 후려쳐 버린 것이다. 사실 처음엔 평화적으로 대화하려 생각했었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참고 있던 울분이 치솟아서 자기도 모르게 패버린 지원이었다.
"아, 미안. 이럴 작정은 아니었는데."
패놓고 미안하다니. 대현은 지원이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지원은 지금 너무 쉽게 문을 열어준 대현을 놀리고 있다.
"이런 개...... 웁!"
욕설을 퍼부어 주려던 대현은 어느새 도집에서 뽑아든 지원의 일본도를 보고, 얼른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럴 때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바로 칼 맞는 다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지원은 위협적으로 일본도의 날을 대현의 목에 들이대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했으니 이번 일은 얼른 잊어 버려라. 그리고 제갈 수련이랑 고 헌은 안에 있나?"
대현은 난감했다. 아주 착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집에 왜 칼까지 든 이상한 놈이 쳐들어 온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제갈 수련과 고 헌은 아직 자고 있다. 보통 출근 시간 직전에 일어나 눈곱만 슬쩍 떼고 나가는 그들이기에 이건 언제나와 같은 아침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 대현은 그 언제나와 같은 아침 풍경이 무척 못마땅했다. 그를 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니 말이다. 가정용 A.I 하나 없는 집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그래도 그나마 바랄 수 있는 것은 어서 제갈 수련과 고 헌이 깨어서 이 상황을 보고 경찰에 신고해 주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소리가 나줘야 한다. 그 마지막 바램을 위해 대현은 시간을 끌기로 했다.
"두 사람을 왜 찾는데?"
대현의 질문에 지원은 피식 웃으며 오른손에 들린 일본도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대현의 의도가 뻔히 눈에 보였던 것이다.
"너 바보지?"
지원의 말로 인해 당장 대현의 눈에 의아함과 분노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원은 그 눈빛을 무시하며, 왼손으로 대현의 머리칼을 휘어잡고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대현은 아픔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지원은 간단한 한 마디로 그 비명을 막았다.
"입 다물어."
대현의 목에 들이대어진 일본도는 지원의 말에 상당한 설득력을 실어 주었다.
"좋아. 그렇게만 해라. 나도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까. 자, 말은 하지말고 손으로 가리켜. 두 사람 어디 있어?"
하지만 대현은 우물쭈물하며 손을 들지 않았다. 지원은 좀 더 위협을 해볼까 했지만, 거실로 들어선 후 생각을 바꿨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 끄트머리에 싱글 베드가 주르륵 놓여 있고, 그 위에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거실과 서재, 침실, 부엌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곳. 바로 원룸이었다.
"이런. 물을 필요가 없었잖아?"
방 많고 복잡한 자기 집을 생각했던 지원은 이 안이 이렇게 간단한 구조이자 혀를 찼다. 그러면서 여전히 대현의 머리칼을 잡고 질질 끌며 침대로 다가갔다. 다급해진 대현은 머리칼이 뽑히든 말든 있는 힘껏 머리를 뒤로 빼며 소리쳤다.
"야! 이 잠팅이들아! 빨리 일어나!"
엉겁결에 대현을 놓쳐버린 지원. 하지만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인질이 될 사람이 막 잠에서 깨고 있었다.
"아이씨."
약간의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키던 쉐나. 즉 제갈 수련은 눈앞에 있는 섬뜩한 물건에 순간 몸을 굳혔다. 어느새 지원이 그녀의 코앞에 일본도를 들이댔던 것이다.
"안녕?"
지원이 무척 반갑다는 투로 인사하자, 수련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다 일어나니 눈앞에 낮선 남자와 칼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꺄아악!"
당연히 이런 반응이다.
"조용히 해!"
지원은 수련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 물론 엉큼한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나머지 두 남자에 대한 인질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때까지도 자고 있다가 겨우 수련의 비명에 잠이 깬 쉐인. 즉 고 헌은 수련과 그녀의 목에 일본도를 들이대고 있는 지원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다들 조용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더불어 서툰 짓을 하거나, 경찰에 연락하려 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슬픈 일이 벌어질 것임을 명심해."
지원의 협박성 발언에 고 헌과 우 대현은 서로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의 양옆에 섰다. 물론 지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긴 했지만, 여차하면 양쪽에서 덤벼들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지원은 이들에 비해 몇 수 위인 것이다.
"어이. 바보. 너 저리로 가."
지원이 우 대현을 지목하여 고 헌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대현은 울컥 하여 소리쳤다.
"씨파. 내가 왜 바보야? 너 아까도 바보라고 불렀지!"
지원은 피식 웃었다.
"그럼 바보가 아니고 뭔데? 퀵 서비스맨이 이런 정장 입고 다니는 거 봤어? 게다가 한 손을 뒤로 숨기고 있는 사람에게 덜컥 문을 열어주는 놈이 바보가 아니고 뭐냐?"
"......"
대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얌전히 고 헌의 옆으로 가서 섰다. 그러자 고 헌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니가 열어줬냐?"
움찔한 대현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보자."
고 헌은 이를 빠드득 갈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지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뭇 공손하게 말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절대 이렇게 공손한 스타일이 못 되지만, 수련이 잡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원하시는 것이 돈이라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동네 보면 모르세요? 여긴 집안에 A.I 하나 못 두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예요. 저희 집안 한번 쓱 둘러보세요. 보이시죠? 비싼 물건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답니다."
지원은 자신을 강도라 착각하는 고 헌의 말에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서 그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뜻으로 지갑에서 백 만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고 헌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웃겨 줘서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팁이다."
당연히 고 헌과 우 대현, 제갈 수련의 얼굴이 뭐 씹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던 말던 지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일단 내 의도를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겠군. 얘기가 길어질 테니 우리 다정하게 앉아서 얘기해 볼까?"
살짝 떨고 있는 수련을 옆의 바닥에 앉힌 지원이 그 앞을 가리키자, 고 헌과 우 대현도 냉큼 거기 와서 앉았다. 가까이 있으면 가까이 있을수록 수련을 빼낼 기회가 많아진다. 그러니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던 것이다.
허나 지원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수련의 뒤쪽 침대에 걸터앉으면서도 여전히 수련의 목에 일본도를 바싹 들이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에 더욱 찡그려지는 우 대현과 고 헌의 얼굴을 보며 지원은 싱긋 웃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장 호감을 느낄 만한 멋진 미소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물론 거짓말은 절대 사절. 난 최대한 서로에게 좋은 쪽으로 일을 끝내고 싶으니까. 그 쪽도 좀 얌전히 굴어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을 시작한 지원은 고 헌과 우 대현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니들 V.M.G 하지? 어떤 게임 하냐?"
에피소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실성을 조금 시험해 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쉐자 돌림 파티는 각자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왜 지원이 그런 질문을 하나 추리해 보았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가 적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에피소드에서 본 지원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파라다이스. 제로. 에피소드를 해요."
놀랍게도 대답은 지원에게 잡혀 있는 수련이 했다. 역시 쉐나라 불리는 그녀가 이들의 리더인 걸까? 에피소드 내에서 만났을 때도 그녀가 답변했다는 것이 기억나는 지원이었다.
"여러 가지 참 많이도 하는군. 그래 가지고 일은 언제 하냐? 아니면 게임하는 게 너희들 일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지원은 두루뭉실하게 대답하는 수련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아니면 아닌 거다. 확실히 대답해."
그 모습에 울화가 치미는지 우 대현이 대뜸 소리쳤다.
"야! 이 xxx하고 xx한 놈아! 남자 놈이 치사하게 여자를 인질로 잡고 손찌검까지 하냐!"
말해놓고 아차 싶은 대현이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에 뱉어진 욕설이다. 인질까지 잡고 있는데다가 시퍼런 칼까지 든 지원에게 욕을 퍼붓다니. 그가 욱해서 칼춤이라도 추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간이 부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단순한 다혈질?
어쨌든 수련과 고 헌마저도 멍청한 짓을 한 대현을 쏘아보며 이를 가는 와중에, 대현은 초조한 심정으로 지원의 반응을 주시했다.
헌데 지원의 반응은 담담했다. 애초에 상황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는데, 그깟 욕 한마디 들었다고 예정에도 없는 칼춤을 출 그가 아닌 것이다.
"그래? 그럼 니가 이리 와."
지원은 대현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