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쉐자 돌림 파티
"......"
대현은 고민했다. 오라고 한다고 쫄랑쫄랑 가야 하느냐. 아니면 한번 깡으로 버텨 보느냐. 사실 안 무섭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게임에서야 까짓 한번 죽으면 어때! 하면서 별 짓을 다해본 그이지만, 여긴 한번 죽으면 끝인 현실이 아닌가.
그렇게 대현이 망설이고 있자 고 헌이 얼른 그를 지원 쪽으로 떠밀었다. 여자인 제갈 수련에게 칼자국이 나는 것보다는, 남자인 대현에게 칼자국이 나는 것이 더 낫다 판단해서다. 물론 만약의 일이다. 되도록 인질에게 상처가 안 나는 쪽으로 일이 해결되길 바라는 그다.
"야. 뭐해? 빨리 가!"
"어? 으응......"
대현은 고 헌의 부릅떠진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원 앞으로 엉거주춤 다가왔다. 꼭 죽으러 가는 것 같다는 암담한 심정으로.
"넌 이제 저리가."
지원은 수련을 놔주며 이제 대현을 자기 앞에 끌어다 앉혔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돌아간 셈이다. 원래 지원의 인질은 대현이었으니.
"여자는 놔줬다. 대신 이제부터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널 팰 테니 잔말 말도록. 그리고 또 뭐 요구할 것이 있나?"
턱 아래에서 번뜩이는 일본도 때문에 대현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수련은 지원을 빤히 쳐다보며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고 헌은 '요구'라는 말에 반색을 하며 당장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요. 당신은 대체 누군데 우리에게 이러는 거지요?"
지원은 이들에게 정체를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건 이들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니까. 사실 다급한 것은 지원이기에, 그 점을 알게 되면 협박이고 뭐고 통할 리가 없다.
"질문은 안 받는다."
할 말 없게 만드는 그의 간단한 대답에 고 헌과 우 대현은 속으로나마 치사한 놈 어쩌고 하며 열심히 지원을 욕했다. 그때 난데없이 수련이 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소리쳤다.
"맞아!"
"넌 또 뭐가 맞다는 거야?"
지원이 슬쩍 인상을 쓰며 묻자, 수련은 그런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했다.
"당신 '다이' 맞지요? 라크세인의 블러드 나이츠 길마 다이!"
지원은 상당히 동요했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왜 내가 그 다이라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수련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당신은 다이가 맞아요. 아까는 너무 상황이 급박했고, 또 당신이 내 뒤에 서 있어서 몰랐는데. 여기서 보니까 분명 라크세인을 할 때 본 얼굴이에요. 멀찍한 곳에서 본 것이긴 하지만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제 기억이 틀릴 리가 없어요. 블러드 나이츠의 처음이자 마지막 길마였?사신 다이. 맞죠?"
유명한 것도 이럴 때는 참 곤란하다. 하지만 라크세인의 다이와 에피소드의 EM 다크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었기에 지원은 당당할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다이라 치자. 그래서 뭐 어쨌는데?"
수련은 약간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그가 다이든 뭐든, 지금 그걸 밝히는 것은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이라면 라크세인 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뻔뻔하고 악랄한 놈으로 소문이 자자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다 죽이?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수련은 생각했다. 그냥 두면 이번 일을 신고할 위험성이 크니까 말이다.
"그냥요. 그냥 다이라는 사람 같다는 것뿐이에요. 자세히 보니 아닌 것도 같고......"
수련의 기가 죽은 듯한 말투에 지원은 약간 의아해 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혼자 기가 죽어서 저러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생각을 모르기 때문이다. 알면 오히려 쾌재를 부르며 더욱 다그쳤겠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절대 아니에요."
지원은 수련을 지그시 노려보다 그냥 말을 돌렸다. 그 문제는 지극히 사소한 것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진짜 정보를 판 놈의 이름뿐이다.
"좋아. 앞으로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까먹지 말도록."
"네!"
"그럼 다시 질문하겠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EM 다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진실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지원은 그 점을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지?"
수련은 지원이 자신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저희는 메모리즈 라는 회사의 경리부에 다니고 있어요."
"......"
사실 지원은 쉐자 돌림 파티의 직업을 모른다. 하지만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 짐작 중에서 '경리'라는 이름은 절대 없다. 경리가 왜 남의 회사 게임에 들어와서 깽판을 친단 말인가.
지원은 상당히 뻔뻔스런 수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냥 쥐어 팰까? 아니면 고문?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수련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말단 사원이라서 공금을 빼돌리거나 하지는 못해요. 절대로.
혹시나 경리부라고 했기 때문에 회사 공금이라도 빼돌려 오라고 명령할까봐 다급히 말한 수련이었다. 착각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착각은 지원의 분노를 일으켰다.
"너 진짜 죽어 볼래?"
살벌한 지원의 말에 수련은 찔끔하며 놀랐다.
"네? 무슨......?"
아무래도 수련은 시치미 떼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모양이다. 에피소드 내에서 쉐나와 EM 다크로 만났을 때에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더니 오늘도 그런다.
"너희들이 경리? 하! 웃기지도 않는군. 얌전히 대해줬더니 사람 만만하게 보는 모양인데."
퍽!
지원은 벌떡 일어나더니 앞에 앉아있는 대현의 등짝을 확 걷어차 쓰러트렸다. 말로 해서 안 될 때는 본보기가 필요한 법이라 생각하면서. 게다가 대현에게는 미리 말했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들면 너 팬다고.
"뭐야? 으윽....."
얼떨결에 앞으로 꼬꾸라지고만 대현. 그는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곧이어 지원의 발이 그의 등을 밟아 짓눌렀다.
"켁! 케엑!"
비록 한발만을 올려놓은 것이지만, 지원이 잔뜩 힘을 주고 있기에 결코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대현은 바동거리며 그 짓눌림에서 벗어나려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텐데?"
지원은 그렇게 말하며 대현의 등을 일본도로 쿡 찔렀다. 물론 세게 찌르지 않았기에 약간의 생채기만 날 뿐이었다. 허나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게 아니었다. 당연히 찔린 대현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으악!"
"무. 무슨 짓을!"
"그만. 그만둬요!"
대현이 가장 먼저. 그리고 고 헌과 제갈 수련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지원은 아주 싸늘하게 웃었다.
"일부러 잘 보이도록 엎어놓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멈추면 재미없잖아?"
지원은 대현의 등을 향해 슬쩍 일본도를 휘둘렀다. 당장 대현의 셔츠가 길게 잘리고 그 사이로 햇빛을 별로 받지 못한 듯한 흰 등이 드러났다. 물론 지원은 그리 대단한 검도 고수가 아니기에, 상처 없이 옷만 베어낼 수는 없었다.
"아악!"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맨살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베어 가는 느낌이 결코 좋을 리 없다. 당연히 대현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대현의 등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살짝 베였을 뿐인데 엄살은."
지원의 말대로 대현의 상처는 꼬맬 필요도 전혀 없을 만큼 슬쩍 베인 정도였다. 단지 그 길이가 길어 피가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일 뿐.
"말할게요! 사실대로 말할게요! 그러니 그만해요!"
새파랗게 질린 수련이 당장 그렇게 외쳤다. 아무리 게임 속에서 칼질과 피에 익숙해 졌다 하더라도 현실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 것은 수련이 여자라 더욱 그랬다.
"아, 그래? 그럼 다시 대답해봐. 너희들의 직업이 뭐라고?"
지원은 태연하게 말하며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 대현의 등을 누르고 있는 한 발은 그대로인 채였다. 여차하면 다시 칼 들고 설칠 듯이 말이다.
"우. 우린 메모리즈 사의 프로그래머들이에요."
짐작대로라 생각하며 지원은 담담히 물었다.
"그리고 해커들이기도 하지?"
"어. 어떻게?"
수련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을 재미있게 쳐다보던 지원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것 없어. 단지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제갈 수련."
대현은 이미 지원이 자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수련은 전혀 몰랐기에 상당히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름 정도야 어떻게든 못 알아낼 것은 없다는 생각에 겨우 놀란 가슴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반격을 준비했다. 말이라면 그녀도 한 말발 하는데 이렇게 聆構磁?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몸으로는 안 되도 말로 교묘히 돌려서 지원을 압박해 보려는 그녀였다.
"그렇게 많이 아신다면 왜 굳이 대답하라고 윽박지르시나요? 아는 것보다 모르시는 것이 더 많아서 그러는 것 아닌가요?"
지원은 여러 가지 대답을 생각해 보았다. '그냥.' 이라는 대답으로 황당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닥쳐.'라는 대답으로 위협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은 전혀 다른 대답을 아주 능청스럽게 내뱉었다.
"내 기억에는 없는데 말야. 내가 언제 나한테 질문해도 좋다고 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