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55화 (55/74)

6. 쉐자 돌림 파티

당연히 그런 적이 없으니 수련으로선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꿀 먹은 벙어리라고 부르던가? 지원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날카롭게 다그쳤다.

"그런 적 있어. 없어?"

"......"

"대답 안 해!"

지원의 윽박지름에 수련은 움찔하며 얼른 대답했다.

"어. 없어요."

"좋아."

그렇게 간단히 수련의 잘난 말발을 눌러놓은 지원은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꾸 엉뚱한 얘기만 오고가던 참이라 그도 슬슬 조급해 지고 있었다.

"그럼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진짜 질문을 시작하겠다."

이때부터 지원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더불어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뭔가가 작동을 시작했으나, 그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것을 가동시킨 지원뿐이었다.

"너희들의 해커 경력은?"

"7살 때부터니까 16년이에요."

"왜 해킹을 시작한 거지?"

"재미있어 보였으니까요."

"그런 기술은 누구에게 배웠지?"

"넷 여기저기에서 보고 익혔어요."

대답은 수련과 헌이 번갈아 했으나 주로 헌이 했다.

"독학이란 말이군. 그럼 셋 다?"

"수련이 가장 먼저 배우고 그 다음이 저. 그리고 대현이죠."

"프로그래밍도 독학인가?"

"아니오. 그건 버추얼 아카데미에서 4년간 배웠어요."

계속된 질문과 짧은 답변. 그 것들은 주로 해킹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었다. 이로 인해 쉐자 돌림 파티는 지원의 의도가 해킹과 관련된 것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저 의문만이 더해갈 뿐 그의 의도를 추측해내지는 못했다.

그 후 비슷한 십여 개의 질문을 더 던지던 지원은 결정적인 질문을 담담하게 꺼내놓았다.

"가장 최근에 한 해킹은 뭐였지?"

"그건 에피소드의...... 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라 역시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던 수련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확 떠오른 의문. 질문을 던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련은 자기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당신 혹시 경찰이에요?"

지원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듣지 못하자 약간 짜증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지? 질문은 안 받는다고 했을 텐데?"

이 대답 회피로 인해 수련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경찰이 아니라면 왜 남의 범죄 사실을 캐묻는가? 게다가 지금 그들은 보호 관찰중이다. 이 기간 중에 다시 해킹으로 잡혀 들어갔다가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니,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일이 없어요."

또 다시 시작된 수련의 오리발 작전. 하지만 지원은 이미 '에피소드의'까지를 들었다.

"누굴 귀머거리로 알아?"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지원은 대현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하필 그가 밟은 곳이 아까 베인 상처였기에 당장 대현의 신음이 작게 울렸다.

"으윽......"

수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와 몇 일 차이나지 않는 남동생인 대현도 중요하고 범죄 사실을 숨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경찰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세요."

사뭇 진지한 수련의 요구에 지원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들어줄 수 없는 요구다. 경찰이 아님을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굳이 증명하려면 진짜 정체를 밝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안 될 말이다.

"난 경찰이 아냐."

"그걸 어떻게 믿죠?"

"그냥 믿어."

"......그냥 믿으라고 한다고 순진하게 네~ 하면서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원은 코웃음을 쳤다.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수련은 대답할 말이 빈곤해짐을 느꼈다. 저런 식으로 몰아 부치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배 째라 식으로 버티지 않는 한은 말이다. 평소라면 그렇게 버텨보겠지만, 지금은 그런 오기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수련은 지금 상황을 조금 변화 시켜 보기로 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기나 하자는 생각에서다.

"우리 협상해요. 아니, 타협!"

지원은 수련을 비웃었다. 그에게 한참 유리한 이 상황에 왜 타협 따위를 한단 말인가.

"웃기지 말고 대답이나 제대로 해."

허나 수련은 웃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위협만 계속 해봤자,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알아내지는 못해요. 전 바보가 아니니까요. 적당히 거짓말도 섞을 거고, 속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당신을 속일 거예요."

지원은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당돌한 그녀를 보자, 문득 참 재미있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영악함. 그래서일까. 지원의 대꾸는 장난기가 살짝 배어 있었다.

"속였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텐데?"

"속였다는 것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 그만 아닌가요?"

잔뜩 겁먹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애써 당당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수련. 지원은 그 노력이 가상해서-사실은 우스워서- 일단 넘어가 주는 척 하기로 했다. 그로서는 손해볼 것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좋아. 그러면 어쩌자는 거지? 원하는 것이 뭐야?"

순간 수련의 눈이 살짝 번득였다. 약은 머리를 어설프게 굴리는 그녀. 지금 그녀는 지원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서로 주고받아요. 우린 당신이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고. 당신은 우리의 안전과 비밀을 보장 해주는 거죠."

"안전? 흠. 그거야 제대로 답변만 해주면 보장해줄 수 있지. 그런데 비밀 보장이라니?"

"여기서 들은 말로 우리를 경찰에 고발한다던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알린다던가 하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이들의 증언을 가져다가 자신의 누명을 벗는데 쓰려는 지원이다. 당연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는 얘기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지원은 아주 뻔뻔하다. 또 거짓말도 잘 한다.

"좋아. 비밀을 보장해주지."

무척 당당하고 태연한 지원의 거짓말에 수련은 안도했다. 하지만 그녀도 그리 순진한 인물이 아닌지라, 그냥 대놓고 믿지는 않았다.

"그럼 그에 대한 증거를 보여줘요. 당신이 우리의 비밀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것을 제가 믿을 수 있도록."

"어떻게?"

수련은 요구할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지금이 이 협상의 고비다.

"대현이를 놔주고 그 칼을 저리 치우세요. 그리고 당신의 정체를 알려줘요. 우리에게 찾아와서 이러는 이유도."

"......"

이해득실을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이건 지원에게 손해인 일이다. 그 것도 아주 엄청난 손해랄까. 지원은 내심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좋아. 알려주지. 단 내가 받을 것을 받고 난 후에."

순간 수련과 헌, 대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지원이 아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인물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안도감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안도했고, 더욱 욕심을 부렸다. 상황을 호전된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溝돈?바꾸려는 욕심이다. 쉽게 협상에 넘어오자 조금은 지원을 우습게 봤음이 틀림없다.

"그건 우리에게 너무 불리해요. 들을 거 다 들은 다음에 당신의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하죠?"

이제는 떨지도 않는 수련의 말에 지원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애초에 알려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바뀌면 어쩌냐니? 우습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이고, 일단 시작한 거짓말은 끝을 봐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난 너희들을 어떻게 믿지? 인질도 놔주고 무기도 버리고. 거기다 내 정체까지 다 떠벌린 후에 너희들의 마음이 바뀌면?"

"절대로 안 바꿀게요!"

수련은 지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으나, 당연히 지원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필요가 없던가? 먼저든 나중이든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나도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그 쪽이 먼저고 난 나중이야."

"그런 터무니없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요!"

앙칼지기까지 한 수련의 대답에 지원은 그녀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저 여자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완전히 잊은 걸까? 조금 순순히 대해줬더니 이젠 머리 위에 올라서려 한다. 그렇다면 상황을 다시 일깨워 줘야만 하리라.

지원은 일본도의 날을 손가락으로 살짝 퉁기며 느긋하게 말했다.

"나야 너희들과 협상을 하든, 계속 협박을 하든 상관없어. 어차피 둘 다 대답을 듣는다는 점은 똑같으니까. 그래도 너희들을 존중해 주기 위해 타협이란 것을 한번 해보려 했는데.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

그제야 수련은 자신이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음을. 그리고 상황을 잠시 잊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지금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와중에 간 크게도 배짱을 퉁겨버린 것이다.

"그 협상 조건을 받아들일게요!"

난감해하는 수련을 제쳐두고 헌이 냉큼 말했다. 말없이 지켜보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타협을 받아들이는 쪽이 낫다는 것. 결과는 지원이 약속을 지키느냐. 어기느냐에 달려있지만 이러나 저러나 최악의 경우는 마찬가지다. 즉, 그나마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후후. 잘 생각했다."

지원은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를 본 헌과 수련은 상당히 불안해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지원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아니, 믿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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