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59화 (59/74)

7. 잘못 건드린 대가

"아, 지원군!"

진영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막 비서실로 들어서는 지원을 반겼다.

"어떻게 됐어요?"

그녀는 지난 삼일간 자신이 빼돌려준 정보들이 잘 이용되었는지가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지원은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진영의 볼에 키스했다.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이건 감사의 키스!"

진영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 분들은...... 아!"

지원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네 명을 보며 묻던 진영. 그녀는 세 남매의 얼굴을 보더니 금방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 냈다. 증거 동영상을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쉐자 돌림 파티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과 에피소드 사이에서 유저의 외모 변화는 옷차림과 머리 스타矩湛繭撰?더욱 쉬웠다.

"제 동료들입니다. 지금 아버지 계시죠?"

쉐자 돌림 파티를 힐끔거리던 진영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지원은 노크도 없이 덜컥 부사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앗. 지원군. 잠깐!"

그러나 진영의 외침은 너무 늦었다.

"......"

"......"

서로를 마주 쳐다보는 부자 사이에는 잠시 간의 침묵이 맴돌고. 지원은 조용히 다시 문을 닫았다. 허나 문 밖에 있던 이들은 이미 지원의 어깨 너머로 부사장실 안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다 본 후였다. 이때 승익은 지난 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에 비해 몸이 좋으시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수련. 당연히 모든 사람의 어이없는 눈길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특히 지원의 눈총이 많이 따가웠다.

똑똑.

지원은 다시 예의를 차려 부사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잠시 후 점잖은 대꾸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지원과 그의 일당은 멋쩍게 웃으며 부사장실로 몰려 들어갔다. 승익은 완벽히 옷을 갈아입은 후, 사무실 중앙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앉아라."

승익의 말에 냉큼 지원이 건너편 소파에 앉자 나머지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 주춤거렸다. 그러다 그들은 그냥 지원의 등뒤에 서 있는 것을 선택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좀 보이는 구나."

승익도 진영과 마찬가지로 동영상을 본 적이 있기에 쉽게 쉐자 돌림 파티를 알아보았다.

"저들이 제가 제시할 증거입니다."

지원이 당당하게 말하자, 승익은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올 때부터 얼굴 표정이 환한 것이 뭔가 수를 냈구나 싶었다. 그런데 네 명이구나?"

부사장실에 와본 것이 처음인지라 잔뜩 굳어 있던 원기는 그 말에 움찔했다. 그의 소개는 지원이 대신 했다.

"네. 버그 플레이 파티는 아실 것이고. 저기 저 녀석은 온라인 운영과의 김 원기입니다."

승익은 그가 여기 있는 이유를 대강 알겠다는 듯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라인 운영과 소속이라면 GM이 분명하다. 쉐자 돌림 파티와 나란히 서 있는 GM. 굳이 묻지 않아도 뻔한 사연이다.

"이번 휴가를 참 알차게 보냈나 보구나. 어떻게 된 일이었더냐?"

"맨입으로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

여전한 지원의 건방기가 다시 발휘되는 순간이다. 승익은 저절로 찌푸려지는 이마를 검지로 펴며 물었다.

"그럼 맨입이 아니라면 뭘 원하느냐?"

지원은 히죽 웃으며 냉큼 승익의 호의(?)를 받아 들였다.

"약간의 도움 정도면 됩니다. 아주 약간."

승익은 '아주 약간이라고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뭐냐?'라고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보는 눈도 많으니 예전처럼 지원과 말싸움을 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 왕왕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아주 아주 쉬운 일이니 물론 도와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거듭된 지원의 강조에 승익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던 말을 툭 내뱉고 말았다.

"아주 아주 쉽다고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뭐냐?"

"정말 쉬우니까 그렇습니다."

지원의 태연하고 뻔뻔한 태도는 승익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이어지는 승익의 말은 비비 꼬여 있었다.

"안 쉬우면 안 도와도 된다는 말이냐?"

"절대 아닙니다."

"내게는 어려운 일이면 안 도와도 된다는 식으로 들렸는데?"

"저런. 제가 곧 좋은 보청기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말문이 막힐 뻔한 승익.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이 녹록치 않음을 드러내듯 입을 열었다.

"......이제 날 귀먹은 노인네 취급하는 게냐?"

지원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 상큼한 미소를 흩날렸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제 말 뜻을 왜곡해서 듣지 말아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입니다."

"우회적인 것치고는 상당히 건방지구나."

"좀 그렇지요?"

"......"

승익은 지원을 지그시 노려보았고 지원은 뻔뻔하게 그를 마주 보았다. 이 묘한 대치는 쉐자 돌림 파티와 원기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대며 웃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겨우 깨졌다.

"험험. 서론은 그만하고. 그래.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거냐?"

남의 눈을 의식해 재빨리 본론으로 돌아간 승익의 뒤를 따라 지원도 냉큼 본론을 꺼냈다.

"제게 씌워진 누명을 벗겨 주시고 또 한가지 거래를 성사되게 해주십시오."

승익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명이야 네가 증거만 나에게 준다면 당연히 내가 직접 벗겨주려 한 일이다. 그런데 거래라니?"

"이들과 모종의 거래를 하나 했습니다."

"어떤 거래냐?"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지원은 헌에게 들었던 쉐자 돌림 파티의 에피소드 플레이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승익에게 얘기해 주었다. 간간이 지원이 빼먹은 부분을 수련과 헌이 보충했고, 승익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끝까지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다 이야기가 끝나자 승익은 쉐자 돌림 파티를 노졺만?말했다.

"메모리즈 사의 프로그래머들이 단지 놀기 위해서 에피소드를 해킹 했다니. 그렇게 말한다고 누가 믿겠느냐? 나도 안 믿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이들은 어제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승익은 지원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셋 다?"

"네."

그 대신 그가 이들을 고용했다는 말은 슬쩍 빼먹은 지원이었다. 그것까지 설명하려면 일본도에 이어 리틀 머더러까지 꺼내들고 설치며 협박한 것까지 모조리 불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허, 거참. 웃기는 녀석들이로군."

승익은 그렇게 말하며 쉐자 돌림 파티를 하나 하나 뜯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 지원이 말한 거래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떤 관계인 건가? 설마......

"이제 결론을 말해봐라. 그래서 네가 이들과 했다는 거래가 뭐라는 얘기냐?"

지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제가 이들에게 받을 것은 약간의 도움과 제 무죄에 대한 증언이죠. 그리고 제가 이들에게 줄 것은 이 증언으로 인해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설득하느라 상당히 힘들었답니다."

설득이 아니라 협박을 했으며, 힘들기는커녕 천직이 아닐까 의심될 만큼 협박에 익숙했던 지원. 그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쉐자 돌림 파티도 알지만 승익만은 몰랐다.

"으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승익은 지원의 등뒤에서 잔뜩 긴장해 있는 이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잠시만 밖의 비서실에 있어 주지 않겠나? 짧은 시간이나마 지원이와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다네."

대현과 원기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헌과 수련은 지원의 의사를 묻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수련은 모두를 이끌고 부사장실을 나섰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승익이 대뜸 물었다.

"지원아. 저들이 너의 무죄를 증언한다면, 그건 곧 저들의 범죄 사실을 털어놓는 것임을 모르느냐?"

"압니다."

"그럼 당연히 그 거래가 불가능한 것도 알겠구나. 곧바로 경찰에 넘겨질 테니 피해를 안 입을 수는 없다."

"아니요. 가능합니다."

슬쩍 눈살을 찌푸린 승익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재차 물었다.

"어떻게 그 거래가 가능하다는 말이냐?"

"무작정 이들의 범죄 사실만 덮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피해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비슷하지만 약간 틀립니다. 보상은 보상이지만 금전적인 것은 아니죠. 오히려 회사 입장에선 금전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승익은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게 어떤 보상이냐?"

회심의 미소랄까. 지금 지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들이 에피소드를 해킹하는데 사용했던 툴과 아까 말씀드린 투명 망토 바이러스. 또 이들이 에피소드 서버에 침입했던 경로와 보안 취약점. 그리고 이들이 분석해낸 시스템 오류와 발견해낸 버그 레포트 70여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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