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잘못 건드린 대가
롤플레잉 프로젝트팀 소속 제 1 이벤트 관리과 과장인 김 진혁은 요 몇 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섣부른 중간 보고로 인해, 순식간에 지원이 매장 당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진혁은 그저 임 부장의 명령에 따라 조사를 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보고한 것뿐. 사실상 큰 책임은 없다 할 수 있겠다.
허나 그는 계속 마음이 편치 못했다. 자신도 낙하산 인사라는 것 때문에 지원을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이 진짜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혐의를 단정짓고 징계를 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서다. 최소한 결정적인 증거 정도는 찾아낸 후에 징계해야 하지 않는가.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 그 억울함은 엄청날 터이니 말이다.
"휴. 내가 괴로워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머리를 휘휘 내저은 진혁은 눈앞에 떠올라 있는 수하 EM들의 업무일지를 살폈다. 죄책감은 죄책감이고 일은 일이니, 그 생각에만 매달려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지원이 안으로 들어섰다. 임 부장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노크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지원이 히죽 웃으며 인사하자 진혁은 놀람을 애써 감추며 일어섰다.
"서 과장님 아니십니까? 제게 무슨 일로......?"
지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안부 인사차 들렸습니다. 겸사겸사 한 가지 처리할 일도 있고요."
진혁은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네. 일단 이 쪽으로 앉으시죠."
사무실 한 편에 놓인 소파를 진혁이 가리키며 말하자, 지원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냉큼 가서 앉았다. 곧 진혁도 뒤따라와 마주 앉았다.
"차 한잔 하셔야지요. 어떤 차로 드릴까요? 시원한 음료도 조금 있습니다."
지원은 약간 놀랐다. 임 부장이나 김 전무 때와 달리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아서다. 결단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일로 찾아와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뻔뻔함으로 태연히 넘겼다.
"커피로 주십시오."
곧 커피 두 잔이 날라져 왔다. 그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잔을 보자, 지원은 이걸 진혁의 얼굴에 확 뿌려버리면 어떨까를 상상했다. 그건 애초에 계획했던 진혁에 대한 복수 방법과 비슷하니 한번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던 것이다.
지원이 계획한 복수 방법은 이거다. 다른 두 복수 대상과 달리 나이 차이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진혁을 먼지 나게 두들겨 패버리려고 했던 것. 이렇게 일으킨 폭력 사건을 마무리할 방법도 이미 구상을 끝낸 후이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지원의 머릿속 궁리를 전혀 모르는 진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버그 유저 사건 말입니다."
안 그래도 하려던 얘기를 대신 해주니 참 고맙다고 느낀 지원은 냉큼 주먹부터 들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이어진 진혁의 말과 행동 때문에 놀라 손을 멈추고 말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진혁은 지원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에?"
이 갑작스러운 사과로 인해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원래 두들겨 패놓고 사과를 들을 계획이었는데 먼저 선수를 쳐버리니 황당해서다.
"진행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 일의 원인은 제가 찍은 동영상이니, 언젠가 기필코 사과를 드리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왔네요. 이런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번 사과 드립니다. 섣부른 추측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불확실한 貂타?올린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진혁은 아예 소파에서 일어나 지원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걸로 죄책감이 덜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가 얼마나 올곧은 성격인지 알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그런데 진혁이 이렇게 나오자 지원은 왠지 머쓱한 느낌이었다. 복수를 하려고 찾아왔고 또 사과를 받으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식이라니...... 설마 자진해서 사과를 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복수할 마음을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지만, 그 열기를 식히기엔 충분한 진심 어린 사과. 지난 두 사람에 대한 복수로 이미 통쾌함을 맛본 지원이기에 더욱 그 열기가 쉽게 식었다.
"뭐. 받아 드리죠."
"감사합니다."
진혁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지원의 앞쪽 소파에 앉았다. 그런 그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지원은 애초의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혹시 복수를 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우리의 사악 무도, 엽기 발랄한 주인공 지원을 뭘로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가? 사과를 받아 주는 것과 복수는 별개다. 비록 그 열기가 식긴 했지만, 복수할 생각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고로 지원이 수정한 계획은 이렇다. 열 대 때릴 것을 반 줄여서 다섯 대만 때리겠다는. 복수의 강도를 조금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지원은 자신이 너무 착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한 후, 입을 열었다.
"당신 말야.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친해져도 괜찮았겠어. 성격이 맘에 들어."
"네?"
의아한 기색을 떠올린 진혁의 얼굴을 보며 빙긋이 웃은 지원은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날렸다.
퍽!
진혁의 오뚝한 코를 노리고 날아갔던 주먹은 슬쩍 빗나가 볼을 강타했다. 진혁이 얼떨결에 살짝 피한 탓이다.
"컥!"
빗맞았다고는 하지만 거기 실린 힘은 무시 못할 수준. 진혁은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소파에서 떨어졌다.
"몸을 보니 운동 꽤나 하신 것 같은데. 한번 덤벼 보지 그러십니까?"
어느새 진혁의 머리맡에 와서 서있는 지원이 그렇게 비아냥거렸지만, 진혁은 분노보다 씁쓸함을 먼저 느꼈다.
"사과만으로 화가 풀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속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치십시오."
"......"
차라리 덤볐다면. 아니, 최소한 화를 내며 소리라도 질렀다면 맘 편히 팼을 지원이리라. 하지만 진혁이 저렇게 나오자 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허탈해서다.
물론 그런다고 아예 안 팰 생각은 추호도 없다. 빈 말로라도 성격 좋다 할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니까. 대신 지원은 복수의 강도를 아까보다 좀 더 내려 주기로 했다. 딱 한 대만 더 패기로.
"그런다고 안 때릴 줄 아셨습니까?"
지원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있는 힘껏 진혁의 배를 걷어찼다.
퍼억!
"허윽!"
지금 지원이 입고 있는 옷은 정장. 정장에는 당연히 구두. 너무도 당연한 그 공식대로 딱딱한 구둣발에 채인 진혁은 괜히 때리라고 했던가 하는 약간의 후회를 했다. 허나 맞고 난 후에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많이 아프십니까?"
"으으......"
아파서 쩔쩔 매는 것을 보면서도 저렇게 묻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뭐.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길.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것에 비하면 정말 약소한 대가니까."
김 전무와 임 부장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해소해서일까. 진혁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워진 지원이다. 어쨌든 나름대로. 어디까지나 나름대로 만족스런 복수를 했다 생각한 지원은 쓰러진 진혁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쿨럭. 때리라고 한다고 진짜 때리시다니."
원망인지 투정인지 아리송한 말이다. 피식 웃은 지원은 진혁을 부축해서 소파에 앉히며 물었다.
"김 과장님은 절 싫어하시지요?"
난데없는 질문에 진혁은 어리둥절해 했다. 싫어하냐고? 당연히 그는 지원을 싫어한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과장 자리에 오른 그가, 낙하산 인사로 덜컥 과장 자리를 꿰찬 지원을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것과 이번 사건에 대한 진혁의 죄책감은 별개의 문제. 다른 것은 몰라도 일에서만큼은 감정적인 처리를 용납하지 않는 고지식한 그였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개인적인 감정을 업무에 대입하지는 않으니까요."
"싫어한다는 얘기로군요."
"......"
무언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지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제 나름대로는 꽤 열심히 일했고, 또 과장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김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만약 제가 낙하산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제 능력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바뀌었을까요?"
진혁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원이 낙하산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라는 빽이 없었다면 아마도 애초에 쫓겨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과정과 방식은 이상해도 항상 결과만은 좋은 지원의 일 처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회사에 가장 중요한 존재들인 유저들은 EM 다크라는 운영자를 무척 좋아하지 않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진혁의 두루뭉실한 대답은 지원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시키지도 않았다는 점은 조금이나마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생각이 바뀌신다면......"
진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지원을 올려다보았다. 하던 말은 다 해야지. 왜 멈추는가?
"바뀐다면? 그 뒷말은 무엇입니까?"
지원은 멋쩍어했다. 그 말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거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 드리지요. 그럼 전 이만."
빙긋이 웃으며 진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지원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과장실을 나섰다. 그러자 의문과 경멸, 질투가 골고루 섞인 시선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이벤트 1과의 직원들이 지원이 찾아온 것을 보고는 과장실 주변에 몰려 서있었던 것이다.
"뭘 봐?"
지원이 슬쩍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그들은 후닥닥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끼리끼리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멍청한 것들."
나직하게 중얼거린 지원은 성큼 이벤트 1과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등뒤의 수군거림은 당연히 무시. 일일이 저런 것에 신경 쓰다가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리라.
하지만 무시한다고 해도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지원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심각한 수준임을 느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넘겨왔는데, 과연 이대로 내버려둬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하긴 해야할 것 같지?"
지원은 이때 새로운 목표를 하나 세웠다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 또 어떻게 그 목표를 이룰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자.
이 날 (주)테이머에선 하루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첫째로 지원이 행한 개인적인 복수들이 있지만 이건 다들 알 테니 제쳐 두자.
그리고 두 번째는 (주)테이머가 '쉐자 돌림 파티'라 불리는 해커들과의 모종의 거래를 통해 상당히 유용한 자료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원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반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 거래로 얻은 정보와 자료들은 앞으로 에피소드의 정식 서비스 준비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세 번째는 지원의 누명이 깨끗이 벗겨졌다는 것. 뭐. 이건 워낙 당연한 일이고 뻔한 결과이니 부연 설명은 않겠다.
네 번째는 롤플레잉 프로젝트팀 운영부의 임 동원 부장이 전격 해고당한 일인데, 여기에 지원이 아닌 김 도진 전무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에게 거짓 보고를 올렸다는 이유로 김 전무가 그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지원에게 채이고 김 전무에게 채이고. 오늘 임 부장은 더럽게 운이 없는 것 같다.
네 번째는 'GM 원'이라고 불리던 온라인 운영과의 김 원기가 해고된 일이다. 쉐자 돌림 파티와의 거래를 통해 경찰에 고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밀 누출이라는 죄를 저지른 그에게 징계가 내리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는 해고되면서도 표정이 꽤 밝았는데, 그건 재취업 자리가 이미 보장되어 있어서다. 과연 지원이 그를 어디다 써먹을 지는 두고 봐야겠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하루가 지나고 어스름한 노을이 질 때, 지원은 오늘 하루를 이렇게 평가했다.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그냥 이벤트나 열면서 놀 것을. 왜 날 건드려 가지고."
그를 건드린 대가는...... 훗. 뒷말은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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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완료입니다. 다음 챕터부터는 다시 게임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지원의 복수...편은 차후 수정 계획이 있습니다.
복수 방법이나 여러가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시는 분들이 좀 있어서요.
지금은 진도 나가기 바빠 수정하지 못하지만
차후 여유가 생기면 수정해서 은근슬쩍 바꿔치기 해놓거나 하겠습니다.
그러니 요건 요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있으신분은
메세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요 몇일 x도 안 걸린다던 여름 감기에 걸려서 골골 대고 있답니다.
마냥 멍하고 어지러워서 글이 제대로 써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_-;;
요 근래 글이 좀 이상해도 조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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