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65화 (65/74)

8. 여름 이벤트

2178년 11월 16일.

지원은 출근하자마자 에피소드 넷홈의 이벤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어제 하루 종일 기획한 여름 특집 이벤트의 소개와 알림. 이 것은 그가 EM이 된 후 처음으로 쓴 기념할 만한 이벤트 공지라 하겠다. 그동안 열었던 이벤트들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즉흥적이었기에 공지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지원이 넷홈에 공지한 이벤트는 총 4개. 그 공지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우선 첫 번째 이벤트는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이루어질 핫 비치(Hot Beach)오픈이다. 모두가 편안히 해수욕과 썬탠, 서핑 보드 등을 즐길 수 있는 메인 비치와 성인 전용 누드 비치, 또 수영복 상점을 비롯해 갖가지 상점과 음식점 등의 편의시설들이 모두 갖춰지고, 비객?콘테스트 같은 것은 기본. 갖가지 부록 이벤트들이 많이 준비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픈 시간은 오후 1시부터 오전 4시까지이며 위치는 바티안 제국 동쪽의 작은 섬. 수도 자이렌의 중앙 광장에 여기로 향하는 텔레포터를 설치하니 이 텔레포터를 통해 오면 된다고 써있다.

이 첫 번째 이벤트는 그냥 여름 느낌을 주기 위한 이벤트이며 다크가 진짜 고심한 것은 바로 두 번째 이벤트다.

두 번째는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벌어질 드라크 백작 저택으로의 초대. 초대장은 필요 없으니 아무나 공개된 약도에 그려진 그의 저택으로 놀러와도 좋다고 되어 있다. 이 저택을 찾아와서 드라크 백작과 만나는 사람은 소정의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지坪?여기에 임산부와 노약자, 심장질환이 있는 자는 절대 오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붙였다.

이 경고로 보아 이 이벤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다들 짐작하리라. 드라크 백작이라는 이름부터가 무언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EM 다크의 이름으로 올라온 이 이벤트 공지들에 유저들은 즐거운 탄성을 지르며 그 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다른 운영자들과는 틀린 그이니 뭔가 색다른 이벤트를 보여 주리라 기대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몰라도 메인 스토리 관련 이벤트가 아닌, 다른 이벤트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그리고 이 공지가 나간 후 온라인 운영과의 GM들은 한껏 긴장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또 뭘 어떻게 때려부수고 망가트려서 그들이 뒷수습으로 밤을 새게 만들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참 걱정도 팔자라고 해야 하나? 뭐. 지원이야 이미 전적이 있으니 그럴 만하긴 하다.

그렇게 유저들의 기대와 운영진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지원은 이날 하루 철저한 사전 준비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기간 벌어지는 대규모 이벤트는 처음이기 때문에 언제나 태연자약한 그도 조금은 긴장한 것이다.

어쨌든 여름 특집 이벤트. 그 첫 번째인 핫 비치가 열리기까지 이제 하루 남았다.

2178년 11월 17일 오전 9시.

붉은 태양은 뜨겁게 내리 쬐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푸르다. 넓게 펼쳐진 새하얀 모래사장에 연신 시원한 소리를 내뿜으며 들이쳐 부서지는 푸른 파도. 그리고 투명한 물 속에서 아른아른 비치는 오색의 산호초들과 곳곳에 싱그러운 초록 잎을 늘어트린 야자수들. 화가의 그림 속에나 나올 법한 정녕 아름다운 해변이다.

EM 다크는 멋들어지게 잘 꾸며진 해변을 만족스런 얼굴로 살펴보았다. 현실성 넘치게도 푸르죽죽한 바다에 거친 모래사장이었던 곳을 이렇게 바꿔놓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래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놓고 보니 보람은 있는 것 같다.

[다크님. 배경은 모두 완성되었으니 이제 소품 배열 작업을 하셔야 합니다. 미리 생성해둔 소품들을 지금 불러올까요?]

"음. 불러와."

곧 그의 앞에 갖가지 소품들이 차근차근 나타났다. 비치 파라솔부터 야외용 테이블에 썬탠용 긴 의자, 커다란 수건, 간의 매점 칸막이, 천막 탈의실 등등등. 갖은 소품들이 쌓이고 쌓여 작은 산을 이뤘다.

그걸 본 순간 다크는 지독한 귀차니즘에 빠지고 말았다.

"이걸 다 내가 직접 배치해야 한단 말이야? 암담하군."

하지만 곧 다크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번뜩였다.

"엠. 쉐자 돌림 녀석들 어디 있냐?"

[쉐반님과 쉐인님, 쉐핀님은 현재 어덜트 비치(Adult Beach)에 계시며 쉐나님은 수영복 매장에 계십니다.]

다크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요것들 봐라. 나는 죽어라 일하는데 지들은 여자 NPC들 구경이나 하면서 놀고 있다 이거지? 엠!"

[네. 다크님.]

"쉐나는 지금 수영복 매장에서 뭘 하고 있냐?"

[상품 진열을 하시는 중입니다.]

"그럼 걔 빼고 남자 녀석들 죄다 이리로 강제 소환해."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셋의 모습이 다크 옆에 나타났다. 쉐인과 쉐핀은 일광욕을 즐기는 듯 편히 누운 자세로, 쉐반은 엉거주춤하게 엎드린 묘한 자세였다.

"어? 어라?"

쉐인과 쉐핀은 갑자기 바뀐 주변 풍경을 보고는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대번에 다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자신들이 그에게 강제 소환 당했음을 깨달았다. 사뭇 심각해 보이는 다크의 표정에 과거 GM 원이라고 불렸었던 쉐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과장님. 아직 오픈 시간 안됐지 않나요......?"

하지만 다크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저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어리둥절한 쉐핀과 쉐인은 고개를 갸웃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헉?"

둘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다크의 시선이 닿은 곳. 그 곳엔 수영복 바지를 반쯤 내린 채 엎드려서 허리를 들썩이고 있는 쉐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쉐반이 취한 자세가 무엇을 하는 자세인지는 뻔하다. 햇빛을 별로 받지 못해 뽀얀 엉덩이까지 드러나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 것도 못 알아볼 만큼 순진한 사람은 여기 없었던 것이다.

이때쯤 뭔가 이상함을 느꼈던 걸까. 한껏 들뜬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쉐반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엇!"

간신히 꼬드겨 부드러운 백사장 위에 눕혔던 여자 NPC가 없다. 쉐반은 거기에 가장 먼저 놀랐고, 그의 등에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며 길게 늘어져 있는 그림자 3개에 또 한번 놀랐다. 움찔거리며 고개를 든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의 쉐인과 쉐핀을 가장 먼저 보고, 이어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다크를 보았다.

"......"

"......"

"......"

"......"

네 남자 사이에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다르게 싸늘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