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름 이벤트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저물고 핫 비치에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달빛을 받아 검푸르게 빛나는 바다. 밤의 바다는 연인들의 공간이라고들 한다. 모래사장에 다정하게 어깨를 두르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는 달콤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다크는 어덜트 비치와 메인 비치를 완전히 분리하여 전혀 다른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하늘 가득한 별과 밝게 빛나는 달을 무시한 채 어덜트 비치를 짙은 어둠으로 감싼 것이다.
오늘 낮에 핫 비치에서 NPC나 다른 유저와의 썸싱에 성공한 커플들. 그리고 소수는 원래 커플이었던 유저들을 위한 다크의 작은 배려다. 굳이 거대 도시에만 있는 성인 전용 여관을 찾아갈 필요가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 로맨틱한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리라.
그렇게 어덜트 비치에 끈적한 침묵이 맴돌 때 메인 비치는 낮과는 다른 활기가 가득했다. 쉐인과 쉐핀을 시켜 해변 곳곳에 오색의 마법등을 설치한 다크는 수많은 NPC들을 풀어 야시장을 연 것이다.
경품을 따낼 수 있는 각양 각색의 미니 게임들과 암상인 NPC를 통한 독특한 레어 아이템들의 판매. 세계 각지의 모든 음식을 모아둔 듯한 다양한 먹거리. 엄청난 규모로 벌어진 화려한 야간 댄스 파티와 불꽃놀이 등. 메인 비치는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오세요! 와보세요! 공 5개를 던져서 단 1개만 맞춰도 상품을 드립니다!"
"이 포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신사분들에게는 삼일 밤을 꼬박 세워도 끄떡없는 무한한 정력을! 숙녀분들에게는 파리가 앉았다 미끄러질 정도로 매끈한 피부를 약속하는 바로 그런 약입니다! 일단 한번 먹어보시라니까요? 어라? 워이~ 애들은 가라. 가!"
"자! 돌리고 돌리고. 돈 놓고 돈 먹기~! 셋 중에 하나 골라봐. 맞추면 3배로 돌려준다니까?"
"방금 구운 달콤한 케이크 있어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로그아웃 되도 모르는 환상적인 맛입니다!"
"헤헤. 거기 가시는 신사분들. 이 쪽으로 오셔서 한잔하고 가세요. 쭉쭉빵빵 섹시한 미녀 50명이 최고의 서비스를 해드립니다."
"날씬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자, 여기 핸드 멘트와 함께 하세요!"
"젠피드 숙녀용 경갑옷 3종 세트가 모두 합쳐 398골드! 게다가 입어보고 살 수 있는 후불제 혜택까지! 이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아마 이 밤이 다 지나도록 이 즐거운 소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핫 비치 이벤트가 끝나는 날까지 쭈욱~
2178년 11월 21일.
핫 비치 오픈이 어제 새벽을 기해 성공리에 끝나고 넷홈은 그와 관련한 이야기나 스크린샷. 동영상 등으로 떠들썩했다. 물론 어덜트 비치나 누드 비치 쪽의 스크린샷이나 동영상은 없었지만, 메인 비치만으로도 이야기 꺼리는 충분했다.
대부분의 유저에게 골고루 돌아간 작업의 기회. 즉 NPC들의 의도적인 접근이라던가. 난데없이 해변에 나타난 식인 상어와의 혈투. 수많은 미녀들로 남성 유저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던 비키니 콘테스트. 늦은 밤에 이루어진 깡패들-당연히 NPC들-의 야시장 습격. 야시장의 은밀한 곳에 자리했던 암상인들이 판매하던 몇몇 희귀한 레어 아이템들, 유랑 극단과 서커스단의 공연 같은 볼거리. 등등등.
그 외에도 해변에서 일어날 만한 수많은 부속 이벤트들이 있었기에 유저들은 무척 즐거워했고 또 크게 놀라워했다. 이 것이 정말 단 한 명의 EM이 만들어낸 이벤트일 수가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만큼 이번 이벤트가 대규모였고 또 엄청난 부속 이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저들은 모르지만 다크 혼자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사실 기획과 지시는 그가 했지만, 대략적인 준비는 엠이 했으며 그 실행 중 반 이상을 쉐자 돌림 파티가 온 몸을 받쳐 이루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어쨌든 다크는 이번 이벤트로 유저들에게 다시 한번 그 존재를 확실히 어필할 수 있었고 더욱 큰 환호와 우러름을 받게 되었다.
허나 이후 쉐나와 쉐반, 쉐핀과 쉐인은 다크가 없는 곳에서 그를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악덕 업주'라 부르며 열심히 뒷담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지난 3일 간의 이벤트 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악랄하게 착취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대충 짐작은 하지만 별로 신경 안 쓰는- 다크는 진짜 여름 이벤트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다. 핫 비치 이벤트는 여름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 위한 것일 뿐. 이제 본 이벤트인 '드라크 백작의 초대'로 이번 여름 특집 이벤트의 깔끔한 마ジ??짓기 위해서다.
"엠. 저 쪽 복도에 배경음악이 너무 시끄럽다. 좀 더 음산한 느낌이 들도록 배경음향을 줄여봐."
[네. 다크님.]
다크는 이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드라크 백작의 초대'를 위해 이벤트 장소인 거대한 성을 점검하고 있었다. 엠이 그의 세부 기획과 디자인에 따라 훌륭히 이벤트 장소를 만들어놨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A.I기 때문에 세심한 조율은 그가 직접 해야만 했으니 말이?
"음. 그래. 딱 지금 정도의 볼륨이 좋을 것 같다. 다른 복도도 여기와 똑같이 조종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쉐자 돌림 녀석들의 준비는 끝났나?"
[바뀐 외모로 인해 아직도 많이 어색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대본을 외우고 계시긴 합니다.]
"큭큭."
다크는 현재 쉐반, 쉐인과 쉐핀의 몰골과 심정을 내심 짐작하며 작게 웃었다. 아마 거울을 보며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하고 또 비참해 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다크의 명령이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고 있겠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것은 쉐나겠지만 그녀도 방대한 분량의 대본 때문에 무척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그들을 생각하며 웃던 다크는 다시 바삐 다리를 움직여 성의 메인 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배경과 음향. 조명등의 부분적인 수정을 가한 후 다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이벤트에 사용될 성 안의 공간을 모두 점검하기 위해서다. 허나 이미 2차례의 중간 점검이 있었기에 최종 점검은 금새 끝날 수 있었다.
이제 이벤트 개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30분 가량. 유저들을 맞을 준비를 완벽히 끝낸 다크는 성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한 작은 홀로 이동 명령어를 사용해 갔다.
이벤트 분위기 상 어두침침한 성의 다른 공간과 다르게 환한 빛으로 가득한 네모반듯한 홀에 소리 없이 다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1부터 33까지의 아라비아 숫자가 새겨진 원들이 흔한 장식 하나 없이 밋밋한 벽에 그려져 있는 곳. 그 홀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시체 썩는 내를 지독하게 풍겨내는 좀비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존재도 있다. 명령을 기다리며 멀뚱하니 서있는 좀비들과 다르게 한쪽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존재들. 눈부신 흰빛의 플레이트 메일을 잘 차려입은 한 여기사와 깔끔한 정장 차림이 어색하게도 누런 침을 뚝뚝 흘리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구울 세 마리다.
"대본은 다 외웠겠지?"
다크의 목소리에 그제야 그가 왔다는 것을 알게된 여기사와 구울들이 시선을 돌렸다. 헌데 외모는 무척 낯설지만 그들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다크를 향한 반항기가 그득한 것이 말이다. 저러다 언제 또 한번 당하고 말지......
"대충 다 외웠어요."
그들을 대표하듯 나선 여기사가 대답하자 다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불만 가득한 눈빛을 줄기줄기 뿌려대던 구울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다크의 의해 강제 설정된 그의 목소리는 가래 끊는 듯한 소리와 어우러져 음울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크륵. 이런 지저분한 모습으로 꼭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겁니까? 왜 하필 구울입니까. 그냥 하급 뱀파이어쯤으로 해도 되지 않습니까?"
피식 웃은 다크는 나름대로 성의를 담아 대답해 주었다. 어디까지나 나름대로다.
"구울이 뭐가 어때서 그래. 그래도 뱀파이어의 종 하면 대표적인 것이 구울 아니냐? 게다가 나름대로 다들 한 외모하게 만들어 줬잖아. 물론 구울 중에서 한 외모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쿡쿡."
비록 혼이 떠나가 그냥 움직이는 시체일 뿐인 좀비들과 다르게 이성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구울도 엄연히 죽은 시체가 걸어다니는 듯한 몰골이다. 말 그대로 몸 여기저기가 썩어가고 있어 흉측하기 그지없는데 구울 중에서는 한 외모 한다니. 애초에 인간인 그들에게 구울의 缺?감각이 알게 뭐냐.
다크에게 질문을 던졌던 구울. 즉 쉐인은 이를 갈며 다시 물었다.
"지금 저희 놀리시면서 재미있어 하시는 거죠?"
가끔은 솔직해지기도 하는 다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눈치챘냐?"
"......"
"......"
구울들도 여 기사도 너무 솔직한 다크의 반응에 황당하여 말을 잊었다. 그들을 고용한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악덕 업주'는 가끔 저렇게 사람의 말문을 턱턱 막아버리는 특기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당하니 지금 그들의 심정이 오輪耐?
잔뜩 일그러진 그들의 표정을 본 다크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말발이 약해서 그렇지. 꽤 영리해서 시키는 일도 잘하고 이렇게 놀리는 재미가 있는 수하들이라니. 그들을 종속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음. 지금 나한테 반항하려는 것 맞지? 눈빛들 멋진걸?"
은근한 다크의 말에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쉐자 돌림들은 얼른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의 사악한 성격을 뻔히 아니 괜히 건드려서 손해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