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69화 (69/74)

8. 여름 이벤트

"반항이라니요. 무슨 그런......"

여기사로 분장한 쉐나가 은근슬쩍 말꼬리를 흘렸다. 다크는 피식 웃으며 다시 그들을 몰아붙이려다 문득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벤트 시작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이거나 하나씩 받아."

다크는 품에서 철제 팔찌 세 개를 꺼내어 구울로 변장하고 있는 쉐반과 쉐인, 쉐핀에게 건넸다. 팔찌를 받아든 그들이 의문스런 눈길을 보내자 다크는 좀비 쪽을 가리키며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건 저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 담긴 거다."

"아!"

그제야 셋은 제각각 팔찌를 팔에 채웠다. 아무런 장식도 문양도 없는 밋밋하고 얇은 철제 팔찌. 그 것을 요리조리 살피던 쉐핀이 물었다.

"사용법은요?"

다크는 피식 웃었다.

"칼 들고 덤벼드는 유저들 앞에서 팔찌를 조물락거리고 있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전투가 벌어진 급박한 상황에 팔찌를 조종할 시간이 있을 리 없다. 다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고 쉐핀은 머쓱함에 괜히 머리만 긁적였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니 말이다. 다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냥 차고만 있으면 저 좀비들이 너희들 말을 들을 거다. 그리고 그 팔찌를 찬 사람을 철저히 경호하도록 해놨으니까 그 점에 대해선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 없을 거야."

역시 매사 철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쉐자 돌림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악한데다 치밀하기까지 하니 그들에게 다크는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엠. 외모 변환 준비됐지?"

[물론입니다.]

"좋아. 설정해둔 걸로 변환해."

언제나 그렇듯 외모 변환은 순식간에 끝났다. 다크는 거울을 하나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조각과도 같이 반듯한 이목구비는 남자라기엔 너무 아름답고, 살짝 곱슬거리며 어깨에 닿는 은발 머리는 보라빛이 살짝 돌아 신비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 핏기하나 없이 창백한 피부에 대비되는 붉디붉은 입술과 어딘가 몽롱해 보이는 짙은 보라색 눈동자. 반쯤 풀어헤쳐 하늘거??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 그의 외모는 어둠의 귀족이라 불리는 뱀파이어답게 기품과 퇴폐적인 미가 함께 느껴지는 신비한 모습이었다.

"흠. 괜찮군."

그가 오늘 연기하는 존재는 이번 이벤트의 메인인 드라크 백작. 일반 뱀파이어가 아닌 뱀파이어 로드 역이니 이 정도 외모는 되어줘야 되리라. 물론 이벤트 마무리쯤엔 흉악하게 생긴 본 모습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은 접대용일 뿐이다.

이때 그의 외모를 본 쉐자 돌림들은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떻게 인간이 저리 치사할 수 있는가. 누구는 걸어다니는 시체인 구울로 만들고 자기는 저런 멋진 역할을 하다니! 라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 후환이 두려워 차마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한 쉐자 돌림들은 그냥 조용히 다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라고 했으면 좋겠지만, 갑작스런 변수는 어디나 있는 법이다. 항상 촐랑대던 쉐반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던 것이다.

"치사해요! 우린 이렇게 끔찍한 모습인데 혼자 그렇게 잘생긴 사람으로 변신하시다니. 너무하잖아요?"

입을 삐죽이며 투덜대는 쉐반. 인간 모습이라면 귀엽기라도 하겠지만 구울인 이상 끔찍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다. 다크는 가만히 그런 그를 바라보다 나직하게 말했다.

"다시 게가 되고 싶냐?"

"......"

핫 비치 이벤트 첫 날 게가 된 쉐반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입맛을 다시는 유저들을 피해 하루 종일 도망다녀야만 했고, 결국엔 잡혀 산채로 불에 구어져야만 했던 그 처절한 기억...... 부르르 몸을 떠는 쉐반을 보며 피식 웃은 다크는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정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면 바꿔주지. 이리와 봐라."

"마. 말실수예요."

"안 와?"

"......"

이제와 사과한다 해도 받아줄 다크가 아니다. 그걸 잘 아는 쉐반은 움찔거리며 다크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다크는 천천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퍼펑!

순간 구울로 변해있던 쉐반의 몸에서 터져 나온 빛.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쉐반의 몸은 전과 다르게 변해 있었다. 그나마 깔끔하게 입고 있던 정장은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거리고 썩은 부위가 적은 다른 구울들과 다르게 온 몸의 반 이상이 썩어 문드러진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입가를 따라 질질 흘러내리고 있는 ? 그야말로 지저분함의 극치랄까.

킥킥거리며 웃던 다크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던 거울을 쉐반에게 건넸다.

"어떠냐. 이제 너도 잘생겨졌지?"

"......"

자신의 모습을 본 쉐반은 울고만 싶었다. 전의 모습이 구울 중에선 한 외모한다던 다크의 말. 그 것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 모습으로 유저들 앞에 나서야 하다니. 그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쉐반은 홀 구석의 벽에 머리를 박고 손가락으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말실수 한번으로 저렇게 된 쉐반을 위해 잠시 묵념을......

"후후. 엠. 너도 이제 나와."

[알겠습니다.]

엠 역시 이번 이벤트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았다. 전체적인 이벤트 진행뿐만 아니라 연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 허나 그 정도 멀티쯤은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A,I다.

"헉!"

"우와~"

다크 때와 다르게 엠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실체화되자 쉐반을 제외한 쉐자 돌림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슴 굴곡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푹 패인데다 하늘거리며 살짝 속이 비치는 검은 드레스. 블루블랙의 긴 생머리는 허리까지 늘어졌고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는 몽롱하다. 백치미와 섹시함을 동시에 갖추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신비하면서도 청순 가련해 보이는 미녀임이 분명하다.

"이제 등장인물들은 다 갖춰졌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작은 실수 하나도 없도록 신중해라. 실수하면 넷홈에서 온갖 비웃음을 다 당하게 될 거다. 오늘 모일 유저수가 장난 아니란 것은 다들 알지?"

"네."

"열심히 할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이미 성밖에 새까맣게 몰려와 있는 유저들을 보았기에 쉐자 돌림들은 한껏 긴장했다. 엠이야 긴장이 뭔지 아직 모르니 담담했지만 말이다. 물론 아직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쉐반은 다크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 나서야 대답했다.

"네. 넵!"

"좋아. 그럼 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겠다. 실수한 사람이 그 후 어떻게 될 지는 상상에 맡겨보지. 각자 위치로!"

이미 미리 진행에 대해서 들었기에 구울들은 각자에게 배당된 좀비들을 이끌고 정해진 위치로 이동했다. 이동은 벽에 그려진 원을 통해 했는데 어설픈 모습과 다르게 그 원들은 모두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다. 어디로 통하는 마법진인지는 새겨진 숫자로 구분했다.

마지막으로 여기사로 변한 쉐나가 자신의 검과 방패를 챙겨들고 마법진 안으로 사라지자 작은 홀엔 다크와 엠만이 남게 되었다.

"엠. 우리도 가자."

[네. 다크님.]

입조차 벌리지 않은 엠에게서 대답이 흘러나오자 다크는 혀를 찼다.

"목소리도 미리 변화시켜. 있다가 실수하지 말고."

잠시 가만있던 엠은 잠시 안면 근육을 몇 번 움직여본 후 입을 움직여 말했다. 원래의 중성적인 목소리는 사라지고 낮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크는 먼저 1이라 새겨진 원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엠도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드라크 백작의 초대' 이벤트가 곧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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