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벤트마스터-71화 (71/74)

8. 여름 이벤트

"에?"

허탈함이란 것이 온 몸을 휘감는다. 음침한 성 분위기에 맞게 언데드라도 하나 나오나 했었는데, 네레이프의 뒤엔 평범한 유저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멀뚱히 서있었던 것이다. 은빛 플레이트 메일로 온 몸을 감싼 것으로 보아 기사인 듯 했다.

"왜...... 그러시죠?"

네레이프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기 때문일까. 기사는 조심스레 그리 물었다. 의외로 약간 높은 소프라노. 네레이프가 가만히 살피자 확실히 일반 플레이트 메일과 다르게 갑옷 형태에 곡선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사다.

"아무 것도 아녀요. 그냥 뒤에 사람이 있는 줄 몰라서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아, 네......"

괜히 혼자 놀랬던 쑥스러움에 네레이프는 애써 쾌활함을 가장하여 물었다.

"그런데 제가 행렬의 가장 뒤쪽 아니었나요? 갑자기 어디서 나오셨어요?"

여기사의 투구 속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게. 그러니까...... 성 구경을 좀 하느라 뒤쳐졌었어요."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변명. 허나 네레이프는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을 반짝였다.

"어머. 다른 사람들은 집사 따라가느라 바쁘던데 취향이 참 정상적이신가 봐요. 이 멋진 성을 제대로 구경할 생각도 안 하다니. 저 앞에 가는 사람들은 취향이 좀 이상한 것 있죠?"

여기사는 '네 취향이 이상한 거야!'라고 소리쳐주고 싶었다. 사실 그녀에게 부여된 임무만 아니었다면 소리치고도 남을 그녀다. 하지만 지금 그런 트러블이 일어나면 안되었다.

"저기... 앞의 사람이 벌써 저만큼 멀어졌는데요. 어서 따라 가야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길을 잃을텐데......"

"아!"

그제야 고개를 돌린 네레이프는 종종 걸음으로 앞사람의 뒤를 따랐다. 여기사에 대한 의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에 쉽게 기사의 의도에 넘어간 그녀다. 여기사는 그런 네레이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구울 집사의 안내를 따라온 오백 명의 유저들은 커다란 홀로 들어서게 되었다. 창문 하나 없지만 사방에 켜진 마법 촛대로 인해 시야에 거리낌이 없는 원형의 홀. 유저들이 들어선 문의 반대편에는 검붉은 장막이 드리워진 무대가 있었고, 그 앞엔 붉은 보가 씌워진 탁자와 의자가 정확히 사람 수에 맞춰 놓여져 있었다.

"정확히 인원수에 맞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편하신 곳에 앉아 계십시오. 곧 주인님께서 나오실 겁니다."

사실 의자의 개수는 오백 개가 아니라 오백일 개지만 그걸 일일이 세어 보거나 하는 이상한 성격의 유저는 없었다.

구울 집사는 할 말을 마치자 홀의 문을 굳게 닫고 사라졌다. 그러자 지금껏 조용하던 유저들의 말문이 둑 터지듯 와르르 터져 나왔다.

"이거 분위기가 묘한 걸?"

"그러게. 나름대로 공포 영화 같은 것을 많이 봐서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런 장소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 오싹하네."

"자기야. 나 무서워."

"걱정마. 내가 있잖아. 오빠 못 믿니~?"

"꼭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닭살 떨어대는 것들이 있어요. 우우우! 커플 지옥! 솔로 천국!"

"오오! 무적의 솔로 부대 만세~!"

"동지!"

오백여 명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소리는 홀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네레이프는 귀가 멍멍하다는 듯한 몸짓을 하며 무대와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복도에서 그녀의 뒤를 쫓아와 놀라게 했던 여기사가 다가왔다.

"여기 같이 앉아도 되겠죠?"

네레이프는 당연하다는 듯 수락했다. 여기 의자에 이름표가 붙은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랴.

"물론이죠."

투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네레이프는 여기사가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확신은 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감사합니다."

여기사는 빙긋이 웃으며 네레이프의 건너편에 앉았고 사방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테이블당 의자 수는 네 개. 정확히 네 명으로 파티를 짜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두 낮선 이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과 함께 모두가 자리를 잡았을 무렵. 홀을 환하게 밝혀주던 마법 촛대들이 하나둘 꺼져갔다. 홀은 점차 어둠에 휩싸여 갔고 덩달아 유저들의 소란스러움도 잦아들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쯤되면 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긴장하?마련이다.

휘잉~

창문도 없는 홀에 서늘한 바람이 몰아친다. 그와 동시에 모든 마법 촛대가 빛을 잃었다.

"시작인가?"

"뭐. 뭘 할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지?"

몇몇 유저들의 소근거림. 허나 옆에 앉은 사람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에 그 작은 속삭임도 곧 사라졌다.

묘한 정적. 싸늘한 긴장감.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스르륵.

소름끼치도록 싸늘한 무언가가 홀에 앉아있는 모든 유저들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꺄아악!"

"으악!"

쿵! 콰당탕!

"뭐. 뭐야!"

"악! 누가 내 목을!"

당연스레 이어진 것은 엄청난 혼란이다.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유저에 비명을 지르며 옆의 친구나 연인의 팔에 매달리는 유저 등등, 아무리 대담한 자라 하더라도 이런 짙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 것은 얼음처럼 차가운 누군가의 손길이었기에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저들의 놀람은 그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후후후...... 무얼 그리 놀라시나......

귓가에 느껴지는 차가운 숨결과 함께 들려온 달콤한 목소리. 유저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내 귓가에 바싹 붙어선 채 속삭인다!'

"아악! 저리가!"

"꺄아아!"

"엄마야! 흑흑."

심약한 몇몇 여성들은 너무 놀라 울음까지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달콤한 목소리라고는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신과 바싹 붙어있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간이 자신의 발 밑 어딘가에 뒹굴고 있는 것 아닌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런. 내가 장난이 심했던 모양이군. 후후후.

다행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더 이상 사람들을 놀래킬 생각이 없는 듯 뚜렷한 발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멀어져 갔다.

저벅. 저벅.

몸이 오백 개라도 되는 걸까? 오백명 모두에게 똑같은 손길의 느낌과 속삭임. 발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물론 진짜로 몸이 오백 개인 존재가 있을 리는 없다. 이건 단지 다크가 기획하고 엠이 실현하는 연출일 뿐. 어차피 가상 현실이기에 똑같은 느낌과 소리를 각자에게 동시에 전달하는 것쯤은 우스운 일이다.

"흑. 흐윽."

"울지마. 괜찮아."

"젠장. 간 떨어질 뻔했네."

"난 이미 떨어진 것 같아. 내 간 못 봤냐?"

발소리가 멀어지자 유저들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넘어진 의자를 일으켜 세웠다. 어둠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대다수가 벌떡 일어나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놀랬었는지 알만한 상황이다. 아마 무척 서늘했으리라.

얼마 후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자 무대 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당연히 그 쪽으로 유저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시선을 느꼈기 때문일까? 무대를 가리고 있던 검붉은 장막이 서서히 걷혔다.

"오오오......"

"어머."

★======================================

난데없이 터진 집안문제와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고'라는

에이션트 레드 드래곤 급 몬스터가 제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좀 상황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홀로 고군분투하곤 있지만 아무래도 어렵네요.

혹시 추천과 선작, 코멘트라는 최고위급 사제의 축복이라도 내려주셔서

제게 힘을 북돋아 주실 분 안 계신가요...?

기진맥진한 상태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