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첫 번째 룬 사냥 (1)
이 세상에서 룬은 홀더들의 전유물이다.
따라서 룬을 얻는다는 건 홀더로서의 각성을 의미한다.
[검]을 선택받으면 검을 쓰는 홀더가.
[화염]을 선택받으면 불 마법을 쓰는 홀더가 된다.
한번 선택받은 룬은 곧 해당 홀더의 재능을 의미했다.
정자세로 2001번의 베기를 하며 [검]을 얻는다거나…
허공에 1880번의 화살을 쏴 [활]을 얻는 일.
이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히든피스였다.
“송현…이었나?”
유명 검도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홀더로 선택받지 못했던 등장인물 ‘송현’.
검을 향한 넘치는 열망은 그로 하여금 수천 번이 넘도록 검을 휘두르게 했고, 무의미해 보였던 몸짓은 기어코 [검] 룬을 만들어내며 그를 홀더로 각성시켰다.
송현은 원작에서 스스로 힘으로 룬을 만들어낸.
히든피스의 첫 번째 홀더였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일반인들이 이 방식을 사용해 홀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송현은 결국 홀더가 될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홀더의 재능이 있고 룬과 친밀한 이들만이 이 히든피스로 룬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밝혀지지 않는 방식.
스토리의 시작 시점인 지금은 더더욱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원작의 애독자였던 나는, 이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활]이나 [창]과 같은 내가 얻었던 다른 룬들도.
획득 인물만 다를 뿐 과정은 비슷하다.
엑스트라에 빙의한 내가 불과 한 달 만에 7개에 달하는 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
하지만 이런 특수 케이스를 제외하면.
홀더에게 주어지는 룬은 각성 때 얻어지는 룬.
또는 성장 도중 혹은 던전 보상으로 얻어지는 룬.
그런 종류의 획득 방식이 전부다.
따라서 대부분의 홀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룬을 최선을 다해 성장시키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평범한 룬이어도, 그게 결국 자신의 밥줄이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처음 내게 주어졌던 룬은 [단검].
암살자 계열의 홀더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 룬.
아마 나 역시 그대로였다면, 평범한 암살자가 됐을 것이다.
히든피스로 얻은 7개의 노멀룬과.
그로 인해 방금 눈앞에 나타난 사기 룬.
[룬 사냥꾼]이라는 에픽룬만 아니었다면.
“결투에서 승리하면 상대 룬을 가져올 수 있다고?”
눈을 비비며 정보창을 꼼꼼히 읽었다.
다시 봐도 현실감이 없다.
뭐, 이런 사기 룬이 다 있지?
결투의 기준을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상대의 룬을 하나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효과의 룬이다.
아무리 기준이 까다로워 봤자, 상대를 죽여야 하는 생사결 수준을 요구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룬 사냥꾼]으로 얻을 룬은 무궁무진하다.
각종 노멀룬을 비롯해 독특한 효과를 지닌 레어룬.
거기에 박진우의 [구도자의 땀방울]이나 강주연의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최상급의 에픽룬까지.
극을 이끄는 핵심적인 룬들을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아. 강주연 거는 못 가져오겠네.”
성장형 천재인 박진우와 달리.
강주연은 처음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는 압도적 천재.
아직 평범한 수준의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룬을 가져오려면 아주 훗날을 기약해야 한다.
어찌 됐든 사기적인 성능의 룬인 건 확실하다.
이런 김칫국 섞인 망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유명한 에픽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쓸만한 레어룬이나 평범한 노멀룬.
뭐가 됐든 이들을 얻을 방법이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룬이라는 건 많이 있을수록 나쁠 게 없으니까.
“운이 너무 좋았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이런 사기 룬을 얻게 된 이유.
그건 딱 하나였다.
초심자의 행운에 맞먹는 빙의자의 행운.
남들이 모르는 ‘룬 획득방법’의 히든피스.
그건 모두 내 기억 속에 똑똑히 있었다.
그 후 7개의 룬을 찾았더니, 이런 사기 룬을 얻었다.
이건 원작 소설에도 나온 적이 없던 특이 내용.
빙의자인 내가 운이 너무 좋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뭐가 운이 좋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한쪽으로 땋아 힙하게 내려놓은 스타일.
몸매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캐쥬얼한 의상.
약간은 차가운 인상이 돋보이는 여자.
옆집 친구인 김채은이 와 있었다.
그녀와는 이곳에 떨어진 첫날 친해졌다.
입학 지원 때문에 있었던 아카데미 건물에서.
김채은이 내게 먼저 아는 척을 해왔거든.
-어? 옆집이네?
<넥스트 룬 홀더>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
그녀는 도재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엑스트라였다.
아니, 말이 돼?
이렇게 예쁜 애가 엑스트라라는 게?
그런데 거울을 보고 난 후.
도재현의 개연성을 확인하고 나니 이해가 갔다.
엑스트라.
그거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하는 거더라고.
첫날 내게 거침없이 면박을 주던 아카데미 직원.
그녀는 오히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올바른 가치관의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나 집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
김채은은 차가운 첫인상과 다르게 활발한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 같다.
옆집에 사는 나와도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금세 말을 트고 쉽게 친해졌다.
첫날 집에 같이 가며 금방 가까워졌고, 이후 몇 번 만나 밥도 먹으면서 친분이 생겼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당시 우리 집을 찾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 후.
내가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더라고.
“그냥. 홀더로 선택받은 게.”
“치. 그게 뭐가 운이 좋아. 시작부터 에픽룬 정도는 받아야 운이 좋은 거지…. 우리 같은 평범한 홀더들은 사회 나가서도 힘들다구.”
“…그건 그렇지.”
순간 뜨끔해서 수긍해버렸다.
시작부터 에픽룬을 받은 행운아…
그게 바로 나였다.
“내일 몇 시에 갈 거야?”
“입학시험?”
“응. 2시 시작이잖아.”
내일은 홀더 아카데미 입학시험이 있는 날이다.
말이 입학시험이지, 사실상 입학은 확정된 상태다.
거짓말로 홀더라 하는 이들을 걸러내는 시험이라.
입학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반 산정이다.
상급반에서 하급반에 해당하는 반 분류.
고급 인력을 중점적으로 키워야 하는 아카데미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그래도 미리 가 있어야 하니까… 1시쯤? 왜?”
“밥은?”
“먹고 가야지.”
“나도 너희 집에서 먹고 갈래!”
“…또?”
“응! 저번에 파스타 너무 맛있었단 말이야.”
[요리] 룬의 폐해다.
저번에 한 번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줬더니, 김채은은 몇 번을 찾아와 다시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어지간히 감명 깊게 먹었던 모양이다.
오늘 온 것도 이 말 하려고 온 게 분명하다.
“…너 내일 시험 준비는 다 했어?”
“시험이 뭐 준비한다고 되나-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지. 어차피 배우러 들어가는 아카데미잖아.”
“말로는 너 못 이기겠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며 연습 무구들을 챙겼다.
여긴 일정 시간 돈을 내고 사용하는 사설 훈련장.
슬슬 시간이 다 돼서 무구를 반납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럼 오전에 와. 11시쯤에.”
“와아-”
“대신 디저트 사 와.”
“디저트? 뭘로?”
“푸딩. 포도 맛으로.”
“…….”
날 보는 김채은의 눈빛이 애새끼 보듯 변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입맛은 새 세상에 오고 나서도 변하질 않는다고.
* * *
입학시험 당일.
우리 집에서 가볍게 파스타 먹방을 찍고 난 후.
김채은과 나는 홀더 아카데미 시험장에 와 있었다.
“수험번호 311, 도재현 지원자. 앞으로 나오세요.”
입학시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룬을 보유한 홀더가 정말 맞는지.
다른 하나는 홀더의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전자는 시험장의 측정 기구에 손을 대면 바로 확인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 그를 점검하기 위한 몇몇 시험들이 존재한다.
[단검]을 보유 룬으로 제출한 나에겐 가벼운 단검술과 투척술, 그 외 각종 능력치 측정들이 시험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띠링-
“룬을 보유한 홀더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도재현 지원자는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이후 반 선정을 위해 옆의 시험장으로 가주세요.”
[단검]을 포함해 총 9개의 룬을 가지고 있는 내가 홀더 확인에서 탈락할 리는 없었다.
나는 홀더 확인에 이어, 곧장 등급 산정 시험장으로 가 시험을 받았다.
띠링-
띠링-
“…….”
각종 측정 기구들이 내 점수를 실시간으로 알렸다.
시험장 한쪽에 자리하던 감독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 점수를 읊었다.
“단검술 F, 투척술 F… 홀더 종합 능력치 E…. 도재현 지원자의 임시 반 선정은 하급반입니다.”
결과는 처참한 수준.
다량의 룬을 가지고 있지만, 룬의 성장은 일절 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김채은의 임시 반 선정은 중급반이다.
그녀는 [빙결]을 보유한 마법사 계열의 홀더.
그런데 의외로 능력치와 룬 레벨이 괜찮더라고.
나한테 우리 같은 평범한 홀더 어쩌구 하더니…
결국 기만자였다.
“바로 옆 시험장으로 이동하십시오. 최종 테스트인 실전 대련이 남아있습니다.”
룬 측정과 능력치 측정이 ‘임시 반 선정’인 이유.
마지막 테스트인 ‘실전 대련’을 통해 최종적으로 해당 지원자의 반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 대련은 임시로 선정된 반 내의 지원자들하고만 겨룰 수 있었다.
즉, 상급반의 지원자와 하급반의 지원자는 대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
시작부터 수준 차이가 나기에 합리적인 방식이긴 했다.
그리고….
‘박진우는 여기서 하급반에 선정되지.’
내가 이 실전 대련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
주인공 박진우.
[구도자의 땀방울]이라는 에픽룬을 가진 그의 임시 반이 나와 같은 하급반이기 때문이었다.
[룬 사냥꾼]의 힘을 시험할 첫 번째 기회가…
의외로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