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5화 (5/353)

EP.5 첫 번째 룬 사냥 (4)

“와… 진짜 잘 싸운다, 쟤네. 하급반 수준이 아닌데?”

애쉬 블루 톤의 머릿결을 매만지던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문가은.

<로열> 클랜 핵심 간부 문정혁의 딸이자, 이번 서울 홀더 아카데미 입학생에서도 촉망받는 기대주 중 하나.

문가은은 방금 끝난 하급반 경기에 순수히 감탄했다.

박진우와 도재현의 실전 대련.

이는 오늘 있던 대련 중 단연코 가장 치열했다.

특별히 스킬이 오가거나 눈에 띄는 룬의 활용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입학생들의 능력을 측정하는 기계를 부정할 순 없다.

그들은 하급반이라는 임시 반답게 룬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였고, 룬의 레벨조차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각자 자신의 우위 능력치를 기반으로, 모자란 부분을 커버하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들의 우위 능력치는 이미 중급반 수준이었고, 탁월한 전투 감각은 중급반에서도 찾기 힘든 실력이었다.

“중급반으로 승급할 수도 있겠다.”

입학시험의 실전 대련은, 사실상 이러한 숨은 인재들을 위해 존재하는 최종 단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박진우와 도재현은 아마 이번 경기를 통해.

정식 반 선정에서 중급반으로 승급할 확률이 높았다.

“주연아, 네 생각은 어때?”

문가은이 옆에서 고고하게 서 있는 강주연에게 물었다.

S급 홀더이자 거대 클랜 마스터의 딸.

넘치는 재능을 가진 최고의 유망주 홀더.

이번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할 때도…

가장 많은 소문과 기사가 났던 유명인사.

심지어 이번 기수엔 전혀 적수가 없어서, 수석 입학이 유력한 엘리트였다.

문가은은 그런 강주연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둘의 아버지가 사회에서 한 자리씩 맡은 유명 홀더이기도 했기에, 가족끼리도 안면을 트고 식사도 했던 가까운 사이였다.

“…별로.”

강주연은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짧게 답했다.

하기야 한국 최고의 재능으로 손꼽히는 그녀에겐, 투박하기만 했던 하급반 홀더들의 대련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사실 대련이 끝났을 때 그대로 집에 가야 했지만….

어떤 원석이 숨어있을지 모르니 클랜을 위해 끝까지 다른 이들의 대련을 살펴보라던 아버지의 말에, 강주연은 지루함을 참고 대련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볼만했어도 고작해야 하급반 대련.

그에 열광하는 문가은이 오히려 특이케이스였다.

“그래? 난 궁수 계열이라 그런가… 뭔가 보는 맛이 있던데. 별다른 스킬도 없이 탁, 탁, 하고 무기끼리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거. 다른 애들은 능력치나 룬 차이 나면 바로 포기해버리잖아.”

상급반과 중급반의 실전 대련은 너무 싱거웠다.

같은 등급의 반이라고 해도 홀더는 능력치와 룬의 차이에 따라 따라잡을 수 없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한다.

그건 대련을 한번 붙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대련을 치른 대부분의 홀더들은 생각보다 쉽게 기권하거나 전투를 포기했다.

입학성적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해도, 어차피 수석이나 차석급이 아닌 이상 순위는 크게 중요치 않으니까.

“…하급반이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강주연은 단 한 마디로 문가은의 수다를 일축해 버리고는, 난간에 기댄 채 경기장 한쪽 구석을 바라봤다.

양손에 단검을 쥔 채, 허공에 시선을 맞춘 남자.

방금 대련을 치른 홀더, 도재현.

그는 분명 승리를 거머쥐었음에도, 달리 기쁜 기색 없이 무덤덤하게 앉아 허공을 보고 있었다.

홀더 정보를 점검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

강주연은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그를 봤다.

‘…이상한 사람이네.’

강주연도 경기를 모두 보긴 봤다.

솔직히 하급반의 대련 경기였기에 별 관심이 없고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지만, 당사자들에겐 꽤 흥분될 만한 경기였다.

어쨌든 오랫동안 대치했고, 감각적으로 승리했으니까.

하지만 도재현은 그러한 일련의 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가만히 앉은 채 무기를 손질하고.

가끔 허공을 볼 뿐이었다.

‘…정신력이 높은 건가.’

누구보다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

아마 정신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높을 수도 있었다.

강주연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자꾸 그에게 시선이 갔다.

어떤 상황에도 차분하고 침착한 홀더.

그게 강주연이 본 도재현의 첫인상이었다.

* * *

‘오, 씨발!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우야, 고마워. 그동안 행복했고, 3년 뒤에 웃는 얼굴로 보자.’

나는 경기장 한쪽 구석에 틀어박힌 채.

필사적으로 박장대소가 나오려는 걸 참아냈다.

갑자기 소리 내서 크게 웃으면, 아까의 박진우처럼 미친놈으로 보일까 봐.

하지만 하늘을 날 것처럼 좋은 기분과 격한 흥분 상태.

속으로는 이를 전혀 감출 수 없었다.

[구도자의 땀방울].

주인공의 특혜라고만 생각했던 사기 룬이.

이제는 내 손 안에 와 있었다.

‘하나같이 버릴 게 없는 효과들이구만.’

상대의 룬을 복제할 수 있다는 단출한 내용의 [룬 사냥꾼]과 달리, [구도자의 땀방울]은 에픽룬다운 엄청난 효과들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보이는 효과만 무려 3개다.

먼저 룬 레벨 성장 속도 3배 증가.

룬의 힘이 곧 홀더의 힘인 걸 생각하면…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엄청난 효과.

이건 후반에 다양한 룬을 얻게 되는 박진우가 별 탈 없이 룬 레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거기에 100시간의 훈련 당 무작위 능력치 증가.

이 또한 사기적인 효과다.

어떤 계열의 홀더든 높은 능력치는 늘 중요하다.

대략 하루에 5시간만 훈련을 한다고 해도, 20일이면 한 개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구와 정신을 3 올려주는 것까지.

Max 레벨의 에픽룬이 주는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진짜 조금만 방심했으면 졌겠다.’

박진우는 노력의 괴물답게 전투 중에도 성장한다.

잠깐 방심했으면 싸우는 도중에 성장한 박진우에게 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스토리가 시작하고 이제 막 홀더가 된 박진우.

그의 능력이 아직은 미완의 대기였기에.

나는 다행히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재현아!”

잠깐 화장실에 갔던 김채은이 돌아왔다.

“왔어?”

“응! 진짜 진짜 잘 싸우더라. 한 달 동안 훈련만 한 효과가 있나 봐.”

“그 정도였어?”

“응응. 완전 멋있던데. 휙휙, 하면서. 나도 단검이나 배워볼까?”

“아서라. 룬도 없잖아.”

이렇게 활발한 김채은의 모습을 보면 뭔가 신기하다.

바로 옆집에 살았음에도, 내가 도재현에 빙의하고 나서야 그녀와 친해졌다는 게.

전에 이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내 첫인상이 조금 차가워서 다가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홀더 아카데미에 지원한 걸 보고 동질감이 생겨서 말을 걸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전부 이해가 갔다.

김채은도 사실 첫인상이 차가운 편이기에…

그녀의 성격을 모르면, 처음에 다가가기 힘들거든.

“오늘로 그러면 입학시험은 끝인 건가?”

“응. 다음 주에 바로 입학식하고 개강이래. 기대된다, 아카데미 생활.”

“채은이 넌 아버지가 교수님이라 많이 와보지 않았어?”

“그거랑은 다르지! 구경 가는 거랑 학생으로 들어가는 거랑은 하늘과 땅 차이라구-”

김채은의 아버지는 아카데미 교수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서 검술을 가르치는 홀더.

김명현 교수.

처음 그에 대해 들었을 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검술에 조예가 깊은 홀더인데, 딸은 [빙결] 룬을 가진 마법사 계열의 홀더라니.

홀더가 각성하는 룬은 무작위일 때도 많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주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

강우현을 따라 화염 계열의 룬 [꺼지지 않는 불꽃]을 얻게 된 강주연이 그랬고, 이도권을 이어 대장장이로서 크게 이름을 알리게 되는 이현호가 그랬다.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영향을 받은 홀더였다.

따라서 부모가 검을 다루는 홀더라면, 어렸을 때부터 검을 접할 기회가 많기에 각성 시 [검] 룬을 얻을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김명현 교수와 완전히 정반대인 종류의 룬을 얻은 김채은이 신기한 것이다.

게다가 [빙결] 룬은 노멀룬임에도 불구하고, 마법사 계열 내에서 꽤 희귀한 편에 속하는 룬이었으니.

‘내 단검은… 완전히 무작위겠지.’

내 부모님은 홀더가 아니다.

전에 핸드폰을 뒤져 연락해봤을 때, 두 분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었다.

내가 갑작스럽게 홀더로 각성을 하게 되며, 서울에 자취 집을 잡고 올라오게 된 케이스였다.

거기에 특별히 형제자매도 없는 외동아들.

당연히 내 첫 번째 룬인 [단검]은 무작위성 룬이었다.

재능 있는 자의 자식들이 계속해서 재능을 보유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룬은 무작위성일수록 효력이 평범하고 성장성이 더뎌진다.

만약 [룬 사냥꾼]이라는 룬이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평범한 홀더가 됐을지, 안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배고파. 밥 먹고 싶어.”

입학시험이 모두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채은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의도가 담긴 듯한 그녀의 말에 한숨이 나온다.

“먹으면 되잖아.”

“도재현 씨가 차려준 음식이 먹고 싶습니다!”

“하루에 두 번을 차려달라고? 양심 있는 거 맞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이제는 나도 내 요리가 맛있으니까.

심지어 요즘 그녀가 하도 내 요리를 조르는 탓에…

오늘 점심에 파스타를 만들 때.

기어코 [요리] 룬이 2레벨이 됐다.

내 모든 룬을 통틀어 첫 번째 룬 레벨업.

믿기지 않지만 실화였다.

그래도 레벨업 효과로 정신 수치를 1 얻긴 했다.

김채은은 민망하게 웃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헤헤. 대신 내일은 내가 해줄게.”

“미안. 그건 내가 사양할게. 그냥 푸딩이나 사 와.”

“씨이… 죽을래?”

미안하지만 김채은의 요리는 진지하게 사양이다.

전에 한 번 만들어 준다 해서 먹어봤는데, 다음 날 훈련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내상을 입었다.

내구 능력치가 아니었으면 진짜 암살당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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