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아웃홀더 소탕
“하앗!! 흐랴앗…!!”
집 앞마당에서 박진우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동생, 박윤서는 질린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지겹지도 않아?”
“하앗! 말! 걸지 마라앗!”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훈련에 집중했다.
박윤서는 저 오빠라는 족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체 훈련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서울 홀더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보고 온 뒤로는 사람이 더 이상해졌다.
자고 일어나서 훈련, 자기 전에 훈련.
아침 먹고 훈련, 저녁 먹고 훈련.
하루 내내 훈련 또 훈련.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가다의 끊임없는 반복.
입학시험을 보고 온 뒤로 사람이 계속 저 모양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또 도재현에게 밀린다! 오로지 훈련만이 살길! 나는 도재현을 뛰어넘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만의 다짐이랍시고 한 번씩 저런 말을 내뱉는데…
솔직히 꼴불견이다.
자기가 소년 만화 주인공이야 뭐야.
저런 바보의 동생이 자신이라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도재현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박진우를 저토록 훈련에 매진하게 만들었을까.
본래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의 마음에, 한 번 더 기폭제로 불을 붙이게 만든 장본인은 누군 걸까.
괜시리 그런 궁금함이 들었다.
아마 아카데미 입학 동기 중 한 명이겠지?
“진우 또 훈련 중이니?”
문득 옆에 나타난 엄마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의 품엔 복숭아가 가득한 과일 바구니가 있었다.
방금 막 따온 듯 싱싱한 복숭아.
서울에서 몇 안 되기에 오히려 희귀한 시골집답게…
과수원에서나 볼 법한 품질 좋은 과일이었다.
박진우의 집은 독특하게도, 서울에서 밭농사를 하는 도시 농민 가정이었다.
“엄마가 좀 말려봐. 저러다 쓰러지겠어.”
“놔두렴. 그이도 예전엔 한 번씩 꼭 저랬단다. 탐험을 갔다 오는 날이면 더더욱.”
“아빠가?”
“응. 진우가 그런 면에선 아빠를 많이 닮았지. 특별한 상황을 겪고 나면 크게 승부욕이 샘솟나 보더라.”
“난 엄마 닮았나 보다.”
“엄마 생각도 그렇단다. 그이나 진우나 가끔 특이한 면이 있잖니?”
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해는 안 가지만, 아빠도 자주 저랬다고 하니 대충 유전인가 싶기도 했다.
엄마는 그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바구니에 담긴 복숭아를 매만졌다.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는지.
복숭아를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떨 땐 데이트하다가도 훈련하겠다고 뛰쳐나간 적이 있단다. 꼭 이겨야 하는 상대가 생겼다고 하면서…. 그땐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호호.”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잠시 옛날 생각을 한 그녀에게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쌓인 모양이다.
박윤서는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더 있다가는 왠지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 같아서.
자신의 가정이지만, 역시 이상한 집안이다.
뭔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느낌이었다.
* * *
“이 새끼 도대체 뭐야!”
“으악! 형님, 살려주십쇼…!!”
“세 명이 한 놈을 못 잡아? 어떻게든 막아! 막으라고!”
보스라 불린 남자를 포함.
총 네 명의 아웃홀더들이 나와 격전을 펼쳤다.
‘아웃홀더’는 밑바닥에 자리한 홀더들이 낮은 자존감과 깊은 열등감을 견디지 못해 만든 일종의 범죄 집단이다.
워낙 다양한 곳에 분포되어 있고, 수준도 상당히 낮아 <빌런>처럼 엄청난 경각심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낮은 능력치를 보유한 홀더.
아카데미로 치면 하급반 정도의 수준.
그 탓에 이들을 소탕하는 데에는 홀더가 아닌 일반 경찰이 투입되기도 했다.
반면 <빌런>은 홀더가 나타난 현대 사회의 심각한 범죄조직.
그들은 범국가적인 단위로 움직이며 중범죄를 저지르고 다녔고, 한국 내에서도 수배 클랜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소탕이 이뤄지는 집단이다.
그만큼 고위 홀더도 많고, 범죄에 감흥이 없는 싸이코도 많았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빌런>은 솔직히 먼 나라 이야기다.
언젠가 맞닥뜨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당장 내 상대는 눈앞에서 발버둥 쳐대는 아웃홀더들.
일반인의 골칫덩어리인 양아치 집단.
끽해야 룬으로 선택받은 무기나 다루는 깡패나 다름없는 놈들이었다.
아카데미 입학을 앞두고.
내가 이런 허접한 깡패들과 어울리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룬 사냥꾼]의 힘을 놀리지 않고 써먹기 위해서였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보유한 룬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해당 룬을 복제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1 얻습니다.]
‘와! 노다지다, 노다지!’
가진 힘은 약하지만, 룬을 보유한 아웃홀더.
결투에서 승리하면, 상대 룬을 복제하는 [룬 사냥꾼].
둘의 조합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약하지만, 악질적인 홀더들을 합법적으로 패고.
덤으로 룬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내 기분도 상쾌해지니 일석삼조.
덕분에 입학시험이 있고 나서 일주일 간.
나는 날이면 날마다 서울 근방의 아웃홀더들를 찾아다니며 시비를 걸었다.
아웃홀더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계속해서 승리하면서, 새로운 룬과 능력치를 얻을 수 있었다.
“형님! 이 새끼 그놈입니다. 근래 주변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신입 홀더…!!”
“아오. 말 더럽게 많네. 빨리빨리 좀 덤벼라. 쪽팔리지도 않냐?”
이미 두 명의 아웃홀더는 녹다운 상태.
남은 건 형님이라고 불리는 놈과 따까리 한 명이었다.
처음엔 나도 이렇듯 여러 명의 아웃홀더를 상대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아무리 약한 아웃홀더라고는 해도, 그들 역시 룬을 가지고 있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한 명의 홀더다.
일대 다수의 싸움은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근차근 아웃홀더를 격파하며 새로운 룬과 능력치를 얻고, 또 [구도자의 땀방울]을 통해 일주일간 꾸준한 훈련을 병행하다 보니 룬의 성장도 궤도에 올라갔다.
덕분에 [단검]의 레벨은 3.
[검]과 [질주]는 2레벨까지 올랐다.
…참고로 [요리]는 그새 레벨이 또 올라 3레벨.
김채은의 요리 독촉이 한 건을 해냈었다.
어쨌든 빠르게 성장한 룬 레벨과 그에 따른 능력치 상승으로, 난 이렇듯 여러 명의 아웃홀더와 대치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거나 먹어라, 개새끼야…!!”
그리고 그때.
부하들 뒤에 숨어 한 방을 노리고 있던 아웃홀더 리더가 내게 달려들었다.
별다른 무기 없이 맨손으로 달려드는 아웃홀더.
순간 격투나 박투의 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내게 달려드는 놈의 손.
손이 주먹을 쥐지 않고, 쫙 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긁으려는 듯한 자세로.
‘스킬이다!’
<넥스트 룬 홀더>의 애독자인 나는 이러한 공격이 금세 ‘스킬’의 형태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현재까지 직접 눈으로 본 스킬은 강주연의 [마력 방어막] 뿐이다.
그래서 다른 스킬의 시전 형태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전투와 동떨어진 것 같은 저 자세는 스킬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내 머리가 말하고 있었다.
“흡…!!”
나는 경각심을 느끼고 재빨리 회피의 자세를 취했다.
반격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지금 내 속력 수치는 10.
오로지 회피에만 집중하면.
느려 터진 놈의 스킬을 타격 없이 피할 수 있었다.
“피했어…?!”
나는 그대로 몸을 급격히 돌렸다.
거의 360도에 가깝게 회전하는 내 몸.
그리고 놈의 얼굴에 꽂아 넣는 백스핀 블로우!
최근에 획득한 룬 [격투]의 보조를 받은 동작이었다.
“크악!!”
“형니이임! 씨발! 살려줘!!”
살려달라니.
애초에 죽인 적도 없다고….
싸움은 그걸로 끝이었다.
스킬을 쓸 정도로 특수한 룬을 지닌 아웃홀더 리더.
그는 아무래도 별다른 무기 관련 룬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스킬이 빗나가자 곧장 내 일격을 허용하며 쓰러졌고, 남은 한 명의 아웃홀더는 그대로 골목 밖으로 내달리며 도망쳤다.
참 뭐랄까….
가진 힘이 약해 비겁하게 일반인들만 괴롭히는 아웃홀더다운 허무한 끝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룬 사냥꾼] 보상이다.
나는 손을 한 번 털고 정보창을 확인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보유한 룬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해당 룬을 복제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얻습니다.]
[홀더 정보에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내성?”
여기서 내성이 활성화된다고?
‘내성’은 특수한 상황을 겪거나 룬의 보조를 통해 활성화할 수 있는 일종의 저항력이다.
주인공 박진우도 중반 쯤부터 활성화 되는 정보이기에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상이 굴러 들어왔다.
서둘러 <홀더 정보>와 새로 얻은 <룬 정보>를 확인해봤다.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성별: 남(20)
◎능력치
[근력: 12] [마력: 2]
[속력: 10] [신성: 1]
[내구: 7] [정신: 11]
◎내성
[독: 1]
◎보유 룬
[룬 사냥꾼 Lv.Max] [구도자의 땀방울 Lv.Max]
[단검 Lv.3] [요리 Lv.3] [검 Lv.2] [질주 Lv.2]
[둔기 Lv.1] [활 Lv.1] [도끼 Lv.1] [창 Lv.1]
[격투 Lv.1] [방패 Lv.0] [맹독 Lv.0]
◎보유 스킬
[쿼터 나이프] (단검)
[포이즌 클로우] (맹독)
◎궁극 스킬
-
<룬 정보>
◎이름: 맹독
◎등급: 레어(Rare)
◎레벨: 0
◎새겨진 부위: 손톱
◎특수효과
: 독 내성 +1
◎파생스킬
[포이즌 클로우]
◎세부정보
: 독을 다룰 수 있게 되고, 이해도가 높아진다.
일주일 만에 개벽 수준으로 달라진 정보창.
화려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정보창은 빼곡했다.
[구도자의 땀방울]과 [룬 사냥꾼].
두 에픽룬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콜라보라고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아웃홀더를 사냥하며 얻은 룬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룬이 다 거기서 거기였거든.
괜히 놈들이 하급반 수준이라고 여겨지는 게 아니다.
반면 방금 얻은 [맹독]은 특수 능력치인 내성을 활성화하고, 시작부터 스킬을 보유한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레어룬’.
심 봤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횡재였다.
“고맙다, 아웃홀더들아…!!”
아웃홀더.
애매한 성향과 수준 탓에 사회의 골칫덩어리로 불리는 그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만큼은.
누구보다 아낌없이 룬을 퍼주는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