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7화 (7/353)

EP.7 모로 가도 서울만 (1)

[룬 사냥꾼]은 사기적인 룬이다.

룬의 힘이 전부인 이 세계에서.

상대의 룬을 복제할 수 있는 건 규격 외의 능력이다.

나는 이 룬으로 벌써 4개의 룬을 얻었고, 그에 따라 상당한 능력치를 획득했다.

히든피스로 얻은 룬까지 포함하면 벌써 10개가 넘는 룬이다.

황무지같던 정보창이 가득 메워지고, 막막하던 성장에 길이 생겼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물론, [룬 사냥꾼]이 모든 게 만능인 룬은 아니다.

결투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고, 승리하더라도 같은 상대에겐 하나의 룬밖에 못 가져온다는 제한이 걸려 있다.

[구도자의 땀방울]과 [명경지수].

두 개의 에픽룬을 가진 박진우에게서, 전자의 룬밖에 가져오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덧붙여 복제해도 레벨이 하락한다는 단점도 있고.

“그리고… 한계도 분명해.”

이번에 아웃홀더를 소탕하면서 깨달았다.

반복적인 [룬 사냥꾼]의 룬 획득으로 실력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투에서 승리해도 상대가 ‘이미 내가 갖고 있는 룬’만을 가지고 있다면, [룬 사냥꾼]의 효과가 전혀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 일주일 간.

아웃홀더를 소탕하며 획득한 룬은 총 3개.

[격투], [방패], 그리고 [맹독].

나머지는 [검]이나 [단검]과 같은 기존에 있던 노멀룬이라 룬 획득도 안 되고, 그에 따른 능력치 상승도 없었다.

막판에 레어룬인 [맹독]을 획득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시간에 훈련하는 게 나았을 정도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더 성장하려면 룬 레벨을 올려야 해.”

다시 말해, 아무리 많은 룬을 얻더라도.

결국 홀더의 성장은 룬의 성장에 있다는 것.

[구도자의 땀방울]을 괜히 가져온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약한 상대와 맞붙어 잡다한 룬을 얻는 것보다, 기존 룬을 잘 활용하고 훈련하며 홀더 정보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성장하고 더 강한 상대와 붙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이게 [룬 사냥꾼]을 활용할 수 있겠지.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혼잣말로 해?”

김채은이 옆에서 소곤거리며 물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아카데미 대강당.

지금 이곳에선, 학생들을 반기기 위한 총학장의 기나긴 연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루하잖아. 벌써 1시간째야. 슬슬 듣는 사람도 혼잣말 나올 때라고.”

“그건 맞아. 총학장님이 마법사 계열이셨나?”

“응. 현역에선 물러나서 이제 강의는 안 하시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휴… 다행이다.”

김채은은 [빙결] 룬을 가진 마법사 계열이기에 하마터면 같은 계열인 총학장의 강의를 들을 뻔했다.

연설만 해도 이렇게 지루한데, 강의는 어느 정도일지.

안 들어도 대충 예상이 간다.

“재현이 넌 그럼 전사 계열로 수업 듣는 거야?”

김채은이 불쑥 물으며, 내 혼잣말에 끼어들었다.

그녀도 1시간째 이어진 연설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전사 계열 강의.

나도 듣고 싶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는 전사 계열에 유명 교수가 많으니까.

하지만 입학할 때부터 홀더의 계열은 구분되어 나뉜다.

“아니. 당연히 암살자 계열이지. 나 단검 쓰잖아.”

“그런가? 실전 대련 땐 거의 전사처럼 싸웠잖아.”

“그건 내가 근력이 좀 높아서 그래. 다른 암살자 계열처럼 속력에 치중한 편이 아니라서, 그땐 그런 식으로 싸우는 게 편했거든. 아마 속력이 좀 올라오면, 다시 제대로 암살자처럼 싸우겠지.”

아카데미의 수업은 공통과 계열 전용으로 나뉜다.

공통은 말 그대로 모든 학생이 듣는 강의.

홀더와 룬의 역사, 룬 성장의 기초이론, 괴수의 종류와 등급 등 홀더로서 알아야 할 이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내구와 정신의 성장, 그리고 마력의 활용과 같은 홀더에게 중요한 사항들은 이러한 공통 강의에서 빛을 발한다.

계열 전용은 해당 계열에 속한 학생만 들을 수 있는 강의다.

마법사 계열로 룬을 성장시키는 홀더가 뜬금없이 궁술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대학교에서 구분하던 학부와도 비슷한 개념이었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의 계열 구분은 총 여섯 개다.

전사 계열, 마법사 계열, 궁수 계열.

암살자 계열, 신성 계열, 특수 계열.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는 홀더 계열.

서울 아카데미는 이를 따르고 있다.

“그래도 전사 계열 강의랑 많이 겹칠걸?”

“겹쳐?”

“응. 마법사나 궁수 쪽이랑 다르게 우린 공통분모가 많잖아.”

예를 들어, 김명현 교수의 <검의 기세와 전투 호흡> 강의는 전사 계열과 암살자 계열이 같이 들을 수 있다.

둔기류나 창술과 같은 다른 전사 계열의 무기술과 다르게, 검술은 암살자 계열과 결이 비슷하고 실제로 [검] 룬으로 암살자 계열에 들어오는 홀더도 많다.

그래서 두 계열은 겹치는 강의가 많았다.

실제로 다른 아카데미에선 두 계열을 합쳐, 같은 전사 계열로 묶는 곳도 있다고 한다.

“헤- 아무튼 우리 같은 중급반 돼서 너무 좋다.”

“크게 뭐 다를 거 있나?”

“당연히 다르지-! 공통 강의를 같이 듣잖아…!”

모두의 예상대로.

나와 박진우는 저번 입학시험 실전 대련이 끝난 후.

정식 반 선정에서 중급반으로 승급 배정되었다.

교수들이 보기에도 그때의 대련이 어지간히 명경기였던 모양이다.

임시에서 정식으로 바뀔 때.

반이 달라진 경우가 우리 둘 말곤 없을 정도였으니.

덕분에 나와 김채은은 같은 중급반이 됐다.

우린 계열이 달라 강의가 많이 갈리지만, 그녀의 말처럼 공통 강의는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공통 강의는 상급반부터 하급반까지.

반의 수준에 따라 배정되는 강의가 달라지거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

1학년 땐 수업의 질이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3학년에 다다를 땐 하급반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할 정도로 교수들도 가르치는 데에 열정이 없었다.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실력 지상주의인 곳이었다.

“… … 따라서 서울 홀더 아카데미는 한국으로부터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한다. 어떤 나라에도 꿇리지 않는 최상급 아카데미가 되어야 한다! 저는 학생분들께 그런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 …”

당장 총학장이라는 양반부터 저런 말만 하고 있으니.

이전 세계든, 새로운 세계든.

사회적 지위를 판가름하는 틀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재현아, 재현아.”

“응?”

잠깐 생각에 잠겨있자, 김채은이 내 옷깃을 잡았다.

뭔가가 떠오른 듯, 한껏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

아.

느낌이 왔다.

김채은이 저 얼굴일 때 하는 부탁은, 오직 하나였다.

“나 꿔바로우 먹고 싶어.”

“뭐, 뭔 로우요?”

“꿔바로우! 방금 SNS 하다가 봤는데, 너무 맛있어 보이는 거야. 헤헤. 만들어줘!”

“아니… 집에 튀김기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어요, 선생님.”

“큰 냄비에 기름 넣고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 꼭 네가 만들어 준 걸로 먹고 싶단 말이야.”

이젠 어떻게 만들지 방법까지 준비하는 김채은.

과연 [요리] 룬을 3레벨까지 성장시킨 장본인다웠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꿔바로우가 먹고 싶었다.

“푸딩 10개 사 와.”

“넵…!!”

* * *

아카데미가 개강하며 새 학기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약간의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의실 한편에 앉았다.

항상 혼자서만 룬을 연구하고 훈련해왔는데, 본격적으로 날 가르치는 사람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내가 신청한 강의.

이는 김명현 교수의 <검의 기세와 전투 호흡>.

김채은의 아버지가 가르치는 검술에 대한 이론과 실전이다.

김명현 교수는 원작에선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애초에 김채은도 엑스트라였으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의외로 아카데미에서 교수로서의 평가는 굉장히 좋았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검술을 펼치고,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부드럽게 검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도 자주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계열 전용 강의로 김명현 교수의 검술 강의를 신청했다.

지금의 내 핵심 룬이 [단검]이긴 하지만, 두 룬이 결이 비슷한 데다가 난 [검] 룬 또한 보유하고 있으니까.

‘탁원호 교수 수업은… 안 되겠지 아마도.’

물론, 박진우의 스승인 그의 강의도 궁금하긴 했다.

탁원호는 스파르타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며, 홀더를 극한으로 몰아 그가 가진 잠재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는 육체파 교수다.

특히 검술 자체가 강렬하고 파괴적인 느낌이 강해, 보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열망을 끌어 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탁원호 교수의 수업을 내가 들을 순 없었다.

탁원호 교수의 수업은 김명현 교수와 달리, 전사 계열만 들을 수 있어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신청이 되더라도 워낙 인기 많은 교수라 뚫기도 어렵고.

게다가 주인공 박진우가 탁원호 교수의 수업을 듣고, 그의 눈에 들어 전속 제자가 되는 건 원작의 큰 흐름이자 메인 스토리 중 하나다.

혹여나 내가 그 틈에 들어갔다가, 흐름을 비틀 수도 있으니 조금은 자제하고 싶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한 룬을 뺏어 오긴 했어도…’

어쩔 수 없잖아.

나도 먹고살아야지.

게다가 복제라서 박진우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쨌든 초반부 가장 중요한 스토리인 ‘탁원호와 박진우의 만남’, ‘아카데미에 출현한 괴수 퇴치’ 등의 굵직한 줄기에만 손을 대지 않으면 된다.

그것들은 후반부로도 꾸준히 연결되는 핵심 전개니까.

그렇게 강의실 한편에 앉아.

나 홀로 마인드맵을 그려가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탁-

누군가 거칠게 강의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한 남자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반갑다, 도재현! 수업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았는데, 그 전에 한 판 뜨자!”

입학시험 실전 대련 때.

미친놈처럼 날 보며 웃어 대던 박진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저 새끼가 왜 여기 있어…?

탁원호 교수한테 배우러 가야지,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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