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8화 (8/353)

EP.8 모로 가도 서울만 (2)

박진우는 아카데미 입학 1학년.

전사 계열의 탁원호 교수를 만나 급격히 성장한다.

탁원호 교수는 강한 근력과 단련된 지구력으로, 쉴 새 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공격적인 검술의 소유자.

처음엔 근력보다 속력에 중점을 두는 박진우와 안 맞는 성향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단점을 보완해 그를 더 강력한 홀더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박진우가 탁원호 교수에게서 배우게 되는 대표적인 스킬이 [파상천검].

파도처럼 대상을 휘몰아치는 연격과 사이사이에 마력 공격을 집어넣어 빈틈없이 공격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하는 스킬.

이 스킬은 훗날 박진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공격 스킬이 된다.

그렇게 자신과 찰떡궁합인 탁원호 교수를 놔두고.

박진우는 뜬금없이 원작에 나오지도 않았던 김명현 교수의 수업을 들으러 와 있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너 대체 왜 여기에 있냐.”

박진우와는 그날 이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지만, 이미 친근한 느낌이 강해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애초에 박진우도 내게 먼저 말을 놨고.

박진우는 황당한 내 표정을 보고 또 씨익 웃었다.

“동기들에게 물어서 찾아왔다. 네가 유일하게 듣는 전사 계열 강의가 김명현 교수의 강의라고.”

“탁원호 교수 강의는? 신청 안 했어?”

“탁원호 교수? 그게 누군데.”

“아니….”

이 새끼 진짜 바보야?

탁원호 교수가 전사 계열 교수 중에 제일 유명한데, 누군지 모른다고…?

탁원호는 상급반을 가르치는 교수진보다 더 인지도 높고 실력이 출중한 교수다.

완성된 보석보다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다듬고 싶다고 하며 스스로 중급반을 자처한 교육자이기도 하고.

더 원론적으로 들어가면 한국의 검술명가로 유명한 두 가문 중 하나, 탁씨 가문의 후계자.

박진우는 그런 탁원호의 전속 제자가 될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다가올 황금 같은 미래를 마다하고, 갑자기 날 따라 김명현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왔다니….

원래 좀 또라이 기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야, 박진우. 지금이라도 정정 신청하는 게 어때? 너한텐 탁원호 교수님이 딱이야.”

“그래서 그게 누구냐고, 십덕아.”

“…됐다. 탁원호도 모르면서 무슨 검을 배운다고.”

사실 박진우도 별로 관심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었기에, 나는 녀석의 생각을 바꾸는 걸 포기했다.

한 번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선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한때 그의 팬이었던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개가 조금 틀어진다곤 해도 박진우는 박진우다.

김명현 교수 역시 실력이 출중한 홀더 교육자이고, 박진우는 스승이 바뀌더라도 특유의 흡수력으로 새로 배우는 것들의 장점을 챙겨갈 능력이 있었다.

[파상천검]을 못 배우는 건 아쉽겠지만, 어쩌겠나.

자기가 배우기 싫다는데.

그리고 굳이 [파상천검]이 아니더라도 박진우를 대표하는 룬이나 스킬은 차고 넘쳤다.

“둘이 아주 꼴값을 떠네.”

“쟤네가 걔들이지? 실전 대련에서 운 좋게 중급으로 승급한 애들.”

“운빨로 중급반 왔으면서 탁원호니 김명현이니… 어휴.”

“박진우는 대련도 졌는데 왜 중급반이야?”

박진우와 나의 소란스러운 대화에.

주변에서 수강을 준비하던 학생 홀더들이 수군거렸다.

작은 목소리로 웅성대지만, 누가 봐도 우리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들.

‘아. 이게 그건가.’

주인공 디버프.

성장형 홀더이기에 초반엔 낮은 능력치와 룬 레벨.

그 탓에 자주 무시를 받는 박진우의 상황.

나는 운 나쁘게 그 틈에 끼어.

함께 욕을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진우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도재현. 뜨자니까.”

“강의 시작 1분 남았다, 임마.”

“그럼 이따 강의 끝나고 떠.”

“어디서 뜰 건데.”

“…옥상?”

“왜 한판 뜨는 곳은 항상 옥상이냐….”

입학시험 실전 대련의 패배가 너무 강렬했던 걸까.

박진우는 날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난하게 탁원호 교수의 수업을 듣지 않고, 내가 듣는다는 강의를 찾아와 김명현 교수의 수업을 듣는 거겠지.

솔직히 그 니즈를 완벽히 맞춰줄 자신은 없다.

애초에 박진우는 [구도자의 땀방울]이 아니더라도 룬 성장력이 뛰어난 홀더이고, 난 [룬 사냥꾼]을 제외하면 아직 내 잠재력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까.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는 달려볼 생각이다.

<넥스트 룬 홀더>는 내가 일전에 가장 좋아했던 세계였고, 나는 그 안에서 한 명의 홀더로 성장하고 있다.

어차피 부딪쳐야 할 홀더의 세계.

굳이 그 단편을 고르라면.

내가 좋아했던 인물들과 함께 달려가는 게…

더 설레고 기대가 됐다.

“반갑습니다. 검의 기세와 전투 호흡 강의를 맡은 김명현입니다.”

그 다짐에 걸맞게.

이곳의 내 첫 번째 스승이 강의실에 들어오고 있었다.

* * *

아카데미의 강의는 이론과 실전으로 나뉘지만, 대부분이 실전 강의에 해당하고 이론 강의 역시 실전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김명현의 <검의 기세와 전투 호흡>.

이는 대표적인 전사 계열의 실전 강의다.

그래서 강의실에서 10분 정도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곧장 훈련장으로 가 강의가 시작됐다.

“본 강의에서는 검술에 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검을 잡는 방식과 휘두르는 형태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나란히 정렬한 채 검을 휘두르는 학생들.

그들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김명현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만 검을 휘두를 때,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굳건한 마음으로 휘두르십시오. 눈앞의 한 칸을 베어냈을 때,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바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고강한 마력을 품은 검의 기세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김명현은 한 차례 조언을 마치고 학생들을 둘러봤다.

8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모두 검을 쥐고 있었다.

이 강의는 [검] 룬에 편향된 실전 강의다.

기본적으로 그를 보유한 홀더를 수강생으로 받고, 해당 룬이 없더라도 강의에선 반드시 검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전사 계열 강의, 또한 암살자 계열도 들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강생들이 다뤄야 하는 무기는 검이었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군.’

김명현은 아까부터 눈여겨본 학생 몇몇을 살폈다.

먼저 박진우라는 홀더.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주변의 무시를 받는 것 같지만, 김명현이 보기엔 가장 습득력이 빠르고 높은 강의 이해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직 능력치가 낮아 자세가 조금 엉성하기는 하다.

하지만 첫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김명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뚜렷하게 실천하고 보여주는 홀더.

그건 박진우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명현은 다른 무리의 학생을 바라봤다.

그들은 [검] 룬이 없음에도 강의를 선택한 학생들.

그나마 같은 전사 계열이라 따라가고는 있지만, 김명현이 말하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못 잡는 듯 보였다.

김명현이 매번 강의를 시작할 때 경고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수강하다 피를 보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겐 별다른 방책이 없다.

악으로 깡으로 강의에 임하거나.

포기하고 강의 정정을 신청하는 수밖에.

강의 시작 전 사전 경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도재현이라고 했던가.’

반면 비슷한 유형이지만.

강의에 잘 따라오는 학생도 있었다.

유일하게 타 계열로 신청한 수강생, 도재현.

그는 암살자 계열의 홀더임에도, 거의 박진우만큼의 습득력을 보이며 강의를 잘 따라오고 있었다.

[검] 룬이 없는 전사 계열들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놀라운 결과였다.

‘저 학생… 검 룬을 가지고 있군.’

하지만 김명현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도재현이 [검]을 보유하고 있는 타 계열 학생이라는 걸.

멀티 홀더.

그는 다양한 무기의 룬을 지닌 멀티 홀더였던 것이다.

자신의 주력 룬이 아니지만…

가진 룬을 최선을 다해 성장시키려는 모습.

김명현은 도재현의 그런 열정에 괜히 더 관심이 갔다.

“도재현 홀더?”

“네?”

“거기선 조금 더 힘을 빼고 부드럽게 베어내야 합니다. 검의 기세는 단단함을 바탕으로 한 유연함 속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지적한 부분을 곧바로 습득하는 도재현.

김명현은 그런 그를 보며, 간만에 교육열이 조금씩 불타는 것을 느꼈다.

‘전속 제자로 받을까?’

알아서 잘하는 박진우보다, 어쩐지 교육으로 더 큰 성과를 내는 도재현이 자꾸만 끌렸다.

도재현이 자신의 옆집에 사는.

딸 김채은과 절친이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는 그였다.

* * *

‘와, 미친. 갓명현. 찬양합니다.’

무아지경의 자세로 검을 휘두르며.

나는 속으로 김명현 교수에 대한 찬가를 목놓아 불렀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동안 난 계속 혼자서 훈련을 했었다.

특별한 방법도 없고, 뚜렷한 요령도 없는 무지성 훈련.

[구도자의 땀방울] 덕분에.

그런 훈련에도 룬의 레벨은 꾸준히 올랐었다.

하지만 오늘.

김명현 교수의 강의를 듣고 그를 몸에 체득하며 여실히 깨달았다.

룬의 성장에는.

스승의 유무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공간을 베는 당신의 검에 힘이 실리기 시작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 룬의 파생스킬, ‘연격’을 획득했습니다.]

문득 박진우에게 무작정 탁원호 교수만 추천하던 내가 바보 같아졌다.

김명현 교수는 중급반 교수진 중에서 탁원호에 버금가는.

탑클래스에 가까운 교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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