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아카데미 괴수 사냥 (3)
서울 홀더 아카데미 동관.
한 강의실에 B급 괴수가 나타났다.
이 사실은 강의실을 나와 도망쳐 온 학생들에 의해 빠르게 알려졌다.
괴수가 던전이 아닌 현세의 틈을 뚫고 출현한다.
이는 꽤 흔한 일이지만, 이 정도로 높은 등급…
B급 괴수가 나타나는 현상은 굉장히 드물었다.
특히 [마력 결계]가 있는 아카데미에 괴수가 나온 건 더욱 드문 일이다.
심지어 아카데미 동관은 중급반 학생들의 주 강의실.
B급 괴수는 C급 홀더 다섯이 합심해야 사냥이 된다.
고작 D급 홀더가 최대 등급인 중급반에서.
이런 강력한 괴수를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강주연은 잰걸음으로 동관 강의실로 향했다.
그녀는 교수진이나 아카데미 내 여타 고위 홀더들보다 더 빠르게 소식을 접했다.
다음 시간에 들어야 할 수업이 중급반의 공통 강의.
<괴수의 역사와 정보>였기에…
그녀는 이미 동관으로 가던 중이었다.
-키에에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듯.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러대는 괴수.
그를 듣고, 함께 오던 문가은이 강주연의 옷깃을 잡았다.
“주연아. 이쪽인 것 같은데?”
소리가 들린 건 지척까지 다가온 강의실 안이었다.
온갖 책상과 강의 도구들이 난장판처럼 강의실 안을 뒹굴고 있고, 몇몇 학생들의 시체가 각양각색의 형태로 너부러져 있었다.
아수라장.
B급이라는 고등급 괴수가 나타난 강의실은 누군가 손 쓸 틈도 없이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강주연의 시선을 끄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도…재현?’
아카데미 입학시험 실전 대련.
지루하던 그 날에, 가장 눈에 띄었던 사람.
지극히 평범하지만, 유난히 신경 쓰였던 사람.
도재현이라던 홀더가 B급 괴수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괴수의 꼬리를 잘라낼 정도의 큰 타격을 입히면서.
‘중급반이 B급 괴수를?’
시즐링 샐러맨더.
높은 근력과 불을 다루는 까다로운 능력의 도마뱀.
홀더들 사이에서도 난이도 있는 괴수라 불리는 B급 괴수를, 중급반의 도재현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중급반 학생들의 실력은 대부분 E~D급 홀더.
B급 괴수에겐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게다가 도재현은 이제 막 중급반으로 승급했다.
능력치의 우위로 승급한 케이스가 아니기에 시즐링 샐러맨더를 상대할 때 더욱 불리했다.
‘그런데….’
도재현과 시즐링 샐러맨더의 전투는 나름 비등했다.
근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 같지만, 검술을 잘 활용해 공격을 빗겨내고 있었다.
특히 괴수의 몸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몇몇 얼음 조각.
시즐링 샐러맨더는 극 상성의 불편한 마법 때문에, 전투에 더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키에에에!!
“크악…!!”
살짝 웅크렸던 시즐링 샐러맨더가 쏜살같이 도재현의 몸을 가격했다.
도재현이 순간적인 근력을 견디지 못해 강의실 벽면에 날아가 부딪쳤다.
사실 도재현의 상태는 이미 말이 아니었다.
시즐링 샐러맨더의 화기에 온몸이 그을리고 화상을 입었고, 막대한 근력 차로 허용한 공격들 때문에 곳곳에 멍이 들어있었다.
이번 가격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틴 결과였다.
“재현아…!!”
그때 강의실 한쪽에 있던 여자가 소리쳤다.
김채은.
도재현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던 여자였다.
강주연은 그제야 저 두 사람이 다른 학생들을 대신해.
외로이 B급 괴수와 싸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즐링 샐러맨더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줬던 [빙결] 룬 마법이 그녀에게서 나왔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본 강주연도.
곧장 마법을 준비했다.
힘을 보태줘야 할 차례였다.
동기들이 이렇게나 시간을 벌어줬는데,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은. 지원 사격.”
“아, 응!”
넋 놓고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문가은도 활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주특기이자, 레어룬 [윈드 아쳐]의 파생스킬.
[익스트림 샷]의 준비 자세.
강주연도 주력 마법의 시전을 준비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의 파생스킬 [플레어].
그녀가 쓸 수 있는 전투마법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의 마법이었다.
어쩌면 불을 다루는 시즐링 샐러맨더에게 화염 마법은 효과가 미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력한 공격은 때로 상성을 무시하는 법.
강주연은 그대로 괴수를 날려버리기 위해,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 스킬을 준비했다.
상급반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 두 홀더.
한 명은 B급에, 다른 한 명은 C급.
두 홀더의 필살에 가까운 공격이…
시즐링 샐러맨더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 * *
-키, 키에에….
지금까지 괴성을 질러대던 놈이라곤 믿기지 않는.
자그맣고 힘없는 소리가 괴수에게서 흘러나왔다.
강주연의 마법과 문가은의 화살을 정통으로 직격당한 결과였다.
“와….”
나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가누면서도.
장관에 가까운 그 광경에 감탄을 내질렀다.
이게 고위 홀더의 힘인가?
나랑 김채은이 한참을 고전하던 상대 괴수가 공격 단 두 방에 무너지다니….
살짝 허무하면서도 멍하니 보게 된다.
고작 스무 살에 저 정도 능력이라니.
그녀들도 어지간히 재능을 타고난 홀더들이었다.
“저기, 괜찮아?”
문득 문가은이 내게 다가와 상태를 물었다.
그녀는 원작 사건 때 이 자리에 없었었다.
게다가 본래 나타나야 할 박진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새 학기에 강의를 고르는 주연들의 선택이 조금씩 바뀌었기에, 이번 사건에서의 흐름도 약간 달라진 것 같았다.
그래도 시즐링 샐러맨더를 사냥할 핵심 멤버.
강주연은 시간 내에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빨리 안 왔으면, 나 진짜 죽었을지도 몰라….
“응. 고마워. 문가은 맞지?”
“어? 날 알아?”
“당연히 알지. 이번 기수 궁수 계열 탑인데. 전체로 봐도 거의 차석 아니야?”
“헤헤… 차석까진 아니구. 3등, 4등 왔다 갔다 해.”
문가은은 익히 알던 대로 활발한 성격이었다.
<로열> 클랜 핵심 간부 문정혁의 딸에, 신입생 홀더 중 3, 4등 다툴 정도면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엘리트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걸 보니, 얼마나 편견 없는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홀더의 세계에서, 특히 아카데미에선 더욱.
자기보다 낮은 상대를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것보다 몸은 괜찮아? 아까 엄청 세게 부딪히던데.”
“아, 뭐. 많이 아프긴 한데… 신성 계열에 치료 받으면 금방 낫겠지.”
“너도 진짜 대단하다. 시즐링 샐러맨더면 B급 괴수인데, 중급반 실력으로 덤비다니….”
“솔직히 좀 만용이었지.”
시즐링 샐러맨더를 잡을 수 있겠다고 본 건 착각이었다.
처음 꼬리를 잘라낸 이후로.
난 이렇다 할 유효타없이 계속 놈에게 끌려다녔다.
불에 그을리고, 끊임없이 얻어맞고.
마지막엔 강의실 벽면에 부딪히기까지.
어쩔 수 없는 등급과 능력치의 차이였다.
그때, 가만히 여길 지켜보던 강주연이 몸을 돌렸다.
괴수의 처치가 끝났으니 돌아가겠다는 의사 표현.
참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딱딱한 행동이었다.
그걸 보던 문가은도 재빨리 갈 준비를 했다.
그녀도 강주연을 따라 여기에 왔을 테니 당연했다.
“나 그만 가볼게. 또 보자, 도재현!”
…내가 이름을 말해준 적이 있었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다른 화제가 나를 덮쳤다.
강의실에 쏟아지는 무수한 학생들과 교수진.
그리고 입학식 때 봤던 총학장까지.
아카데미의 핵심 인원들이 어느새 모두 이 좁은 강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괜찮은가? 신성 계열, 어서 치료를!”
“부상 학생들을 먼저 치료하라!”
“현우야! 안 돼, 죽으면…!! 제발….”
“괴수의 시체를 수거하시오! 연구가 필요하오!”
일찍도 온다, 씨발….
늦게 와서 소리는 제일 큰 사람들에 골이 울린다.
이해는 가지만.
다치고 나니 괜히 짜증이 솟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채은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법을 쏟아붓느라 모든 마력을 탕진했는지.
탈력 상태로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곤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힌 채로…
날 보고 있었다.
‘…미안하네.’
김채은은 아마 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공격을 허용한 아까의 나.
심지어 나조차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강주연은 시간 내에 도착했고.
강력한 힘으로 괴수 처치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김채은은 그런 전후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른다.
아마 강주연이 없었다면, 그녀도 위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억지를 좀 부린 것 같아서.
그냥 도망을 갔어도 어떻게든 처치는 됐을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지금은… 둘 다 치료부터 하고.’
솔직히 온몸이 비명을 질러대서, 움직일 힘도 없다.
빨리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웬 정보창 몇 개가 뒤늦게 눈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럽지만 굉장히 익숙한 홀로그램.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룬 관련 정보창이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이글거리는 불꽃 2.사족 격투 3.도마뱀의 비늘]
순간적으로 바보가 된 느낌이다.
머리가 멍해지고, 상황 인식이 잘 안 된다.
뭐냐, 이거….
괴수 상대로 싸우는 것도.
‘결투’가 되는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