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아카데미 괴수 사냥 (4)
이 세상은 룬으로 강함의 척도가 결정된다.
그건 비단 홀더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괴수.
총을 쓰면 일반인도 잡을 수 있는 F급 괴수부터.
홀더들이 가장 많이 사냥하는 E~A급 괴수.
극소수만 사냥할 수 있는 S급 괴수, 혹은.
전설로 여겨지는 그 이상 등급의 괴수들까지.
강력한 괴수들은 모두 자기만의 룬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B급 괴수 켄타우로스가 가진 에픽룬.
[무자비한 돌격].
돌격 시 마력이 담기지 않은 물리적 공격을 모두 무시하고, 근력 수치의 두 배에 가까운 힘으로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특수룬.
모든 켄타우로스가 돌격 시에 이런 효과를 발휘하고, 사용 당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괴수도 룬을 보유한다’는 게 확실시되던 연구결과였다.
마찬가지로 B급 괴수인 시즐링 샐러맨더.
녀석도 룬을 가지고 있을 게 당연했다.
일단 불을 다루고, 그 외에도 신체적 요건을 강화하는 능력들이 꽤 많았으니까.
그런데 내 [룬 사냥꾼]으로 녀석의 룬을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녀석과의 치열했던 전투도 ‘결투’로 인정을 받았기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멍하니 정보창을 바라봤다.
여전히 황금색의 정보창은 선택을 종용하듯 번쩍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괴수를 사냥할 때마다.
놈들이 보유한 룬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굳이 홀더들 중에 상대를 골라가며 싸울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괴수만 사냥해도 룬이 얻어지니까.
“진짜 개사기룬이잖아….”
물론, 모든 괴수가 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적당히 높은 등급에 다다라야 룬을 지닌 괴수들이 나타나고, 그마저도 쓸 만한 룬은 더 높은 등급을 사냥해야 얻을 수 있다.
시즐링 샐러맨더.
이 녀석은 여타 괴수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B급 괴수였고, 그 때문에 보유룬이 3개나 됐다.
의도치 않은 행운이자,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다.
‘뭘 고르는 게 낫지?’
총 3개의 룬.
[이글거리는 불꽃], [사족 격투], [도마뱀의 비늘].
이 중에서 [사족 격투]는 바로 제외다.
녀석이 막대한 근력을 바탕으로 거칠게 날 몰아붙이던 격투술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족 보행을 하는 괴수도 격투술에 보조를 받게 해주는 룬.
하지만 홀더인 내겐 하등 쓸모없는 룬이었다.
난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이라서 가져도 의미가 없거든.
애초에 이미 [격투] 룬이 있기도 하고.
‘그럼 두 개 중에 하난데….’
[이글거리는 불꽃]과 [도마뱀의 비늘].
나는 고민 끝에 결국 후자로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글거리는 불꽃]은 불을 다룰 수 있게 보조를 받는, 일종의 불 계열 마법룬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런 룬은 앞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불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계열의 홀더와 결투를 해 얻을 수도 있고, 특수 능력으로 불을 다루는 괴수들을 사냥해서 획득할 수도 있다.
불은 마법 쪽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원소 계열이고, 그를 얻을 기회는 많다.
반면 [도마뱀의 비늘]은 오로지 도마뱀 계열 괴수에게서만 획득할 수 있는 룬.
그마저도 이 녀석이 B급 괴수라 룬이 있는 거지, 다른 도마뱀 괴수들은 룬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선택은 마지막 룬이었다.
[도마뱀의 비늘을 선택하셨습니다. 11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6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내구를 6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도마뱀의 비늘
◎등급: 레어(Rare)
◎레벨: 6
◎새겨진 부위: 등
◎특수효과
: 한 달에 한 번, 가볍게 피부의 허물을 벗겨낼 수 있다. 허물을 벗으면 가벼운 생채기나 흉터 등이 모두 사라지고,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새로이 지닐 수 있다.
: 내구 +6
◎파생스킬
[단단해지기]
◎세부정보
: 도마뱀들만이 지니고 있다는 날카롭고 단단한 비늘. 마력이 담긴 공격이 아니라면, 절대 이 비늘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스킬 정보>
◎이름: 단단해지기
◎파생 룬: 도마뱀의 비늘
◎대기시간: 1시간
◎효과
: 5초간 내구 수치를 두 배로 상승시키며, 더욱 단단해진다. 또한, 단단해지는 동안 모든 원소 계열의 공격에 내성이 10씩 생긴다. 5초가 끝나면, 단단해지기가 해제된다.
“단단해지기 이러고 있다….”
놀라운 수준의 스킬 작명 센스에 감탄이 나온다.
분명 원작 작가가 만든 스킬 이름이겠지?
그래도 쓰레기 같은 이름에 비해, 효과는 엄청났다.
5초간 내구를 강화해 필살 일격에 대비할 수 있고, 순간적으로 원소 저항을 높여 마법에도 대처할 수 있다.
대기시간이 조금 길긴 하지만, 이 정도 효과라면 오히려 짧은 수준이지.
‘룬도 상당히 괜찮은데.’
앞선 스킬을 파생시킨 룬.
[도마뱀의 비늘].
고심 끝에 고른 이 룬 역시 대만족이었다.
요즘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치가 있었다면 ‘내구’다.
다른 전투 능력치에 비하면 내구는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이는 달리 훈련으로도 성장시킬 방법이 없어 고민이 많던 차였다.
그런 순간에 내구를 올려주는 룬이 딱 나타나니 마음에 들 수밖에.
심지어 꽤 고레벨의 룬이라 상승 수치가 6이나 된다.
덕분에 내 내구는 최고 능력치인 근력과 마찬가지로 14가 되어있었다.
‘레벨 하락은… 룬 레벨에 따라 다른가 보네.’
새로운 정보도 얻었다.
[룬 사냥꾼]에 표기된 레벨 하락은, 해당 룬의 레벨 따라 그 폭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11레벨에서 6레벨.
다른 룬을 얻을 때는 모두 1레벨의 룬들이었다.
때문에 곧장 0레벨로 등록되어 몰랐지만…
고레벨의 룬을 획득하니 하락폭이 꽤 컸다.
사기룬 중에서도 역대급 사기룬인 [룬 사냥꾼]의 효과에도, 어느 정도 양심은 있는 것 같았다.
“도재현 홀더. 괜찮나?”
새로운 룬을 얻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시끌벅적하던 무리에서 한 교수가 내게 걸어왔다.
언뜻 보니 신성 계열을 가르치는 교수로 보였다.
나는 잔뜩 그을리고 멍이 든 몸을 보이며 말했다.
“아뇨… 보시다시피, 만신창이입니다. 치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한 이야기를. 그대로 자리에 눕게. 바로 치료를 시작할 테니.”
“감사합니다.”
초반부의 중요 사건인 아카데미 내부 괴수 출현.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어떻게든 사건은 일단락이 될 수 있었다.
* * *
아카데미에 B급 괴수가 나타났다.
이는 아카데미를 넘어, 한국 전역에 큰 화제가 됐다.
지금껏 도심이나 사람들 틈에 괴수가 나타난 적은 있었지만, B급 괴수는 어지간해선 나타나지 않는 고위 괴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아카데미는 더 이례적이다.
B급은 물론, 어떤 괴수든 간에 그들이 틈을 뚫고 아카데미에 출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카데미에 B급 괴수가 나타난 건 처음 아닌가?”
“당연하지. 아카데미엔 결계가 있잖아. 괴수 방지용 마력 결계.”
서울 홀더 아카데미엔 마력에 일가견이 있는 고위 홀더들이 교수진과 운영진으로 다수 포진되어 있다.
앞으로의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기관에서.
고위 홀더들이 안전을 기하는 건 당연한 일.
따라서 아카데미엔 학생 홀더들의 안전을 위해 마력적인 장치가 상시 준비되어 있곤 했다.
[마력 제어] 룬을 Max 레벨까지 성장하면.
비로소 획득할 수 있는 파생스킬, [마력 결계].
이는 시전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변형할 수 있고, 아카데미에 설치된 [마력 결계]는 주로 괴수 출현을 방지하는 방어형 결계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괴수가 아카데미에 출현했다는 건, 이 [마력 결계]가 뚫렸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빌런에서 클랜원 보내서 파괴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뭐? 그게 진짜야?!”
“쉿. 소문이야, 소문. 그럴 수도 있다는.”
때문에 사건을 두고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빌런> 클랜에서 의도적으로 결계를 파괴했다…
[마력 결계]의 관리자가 일을 허투루 했다…
총학장이 무능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밑도 끝도 없는 루머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지나가는 이들의 그런 웅성거림을 들으며…
아카데미 전사 계열 소속 교수.
탁원호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거칠게 서류 더미를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뭐 이런 망신이….”
탁원호.
그는 아카데미의 교육자 중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검술의 대가로 유명한 전사 계열 교수.
혹자는 전사 계열의 모든 교수 중 그의 실력을 최고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대외적인 위치는…
아카데미 이사장, 탁윤재의 아들.
검술명가 탁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탁씨 가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검술명가 중 하나다.
오랜 기간 동안 명예로운 가문의 이름을 이어온 만큼 쌓아온 부와 명성이 상당했고, 그들이 한국 내에서 가지는 사회적 지위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의 총괄 운영.
이를 맡은 재단의 역할 또한…
탁씨 가문의 그러한 사회적 지위의 일환.
탁원호는 아카데미 내에서 전사 계열의 교수이기도 하지만, 아카데미를 관리할 의무가 있는 한 명의 운영진이기도 했다.
아카데미를 욕보이는 건 결국 탁원호와 탁씨 가문을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카데미 괴수 출현 사건은.
탁원호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였다.
“도대체 어떻게 아카데미에 괴수가….”
분명 [마력 결계]로 감싸져 있어야 할 아카데미에 괴수가 나타났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물론, 아카데미에 괴수가 출현한 게 처음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
[마력 결계]에 관한 이론이 충분하지 않고, 실질적 활용이 범용적이지 않을 땐 아카데미에도 괴수가 자주 출현했다.
심지어 설치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완성도가 100%가 아닌 터라 가끔 결계를 뚫고 괴수가 나타났었다.
하지만 현시점.
[마력 결계]의 구축, 관리가 꾸준하게 이어져 온 지금.
이를 뚫고 괴수가 출현하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음모론처럼 정말.
<빌런> 클랜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탁 교수님.”
아카데미 직원이 집무실에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탁원호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어제 B급 괴수와 혈전을 치렀다던 그 학생 좀 불러줘요. 개인 면담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시즐링 샐러맨더를 실질적으로 처리한 건 상급반의 강주연과 문가은.
하지만 그 괴수를 거의 처음부터 맞닥뜨리고 오래도록 전투를 이어간 건, 중급반의 도재현이라는 홀더였다.
탁원호는 그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