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두 명의 스승 (2)
강주연은 자신의 아티팩트를 점검했다.
검지에 알맞게 들어가 반짝거리는 에메랄드빛 반지.
마력 수치를 보조하고, 마법의 시전 속도를 급증시키는 희귀한 아티팩트였다.
직접 전투계열이 무구나 방어구를 착용한다면, 마법사 계열은 주로 이런 아티팩트와 로브를 사용한다.
마법사 계열의 전투 아티팩트는 지팡이, 마법서, 팔찌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강주연이 즐겨 사용하는 건 초록빛의 보석이 박힌 이 반지였다.
<아이템 정보>
◎이름: 위즈덤 링
◎종류: 반지
◎등급: 레어(Rare)
◎제작자: -
◎특수효과
: 마력+3
: 조금 더 효율적인 마력 활용이 가능해진다. 마법의 시전 시간을 크게 줄여준다.
◎세부정보
: 지혜의 빛을 담은 에메랄드 반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맑은 빛을 지녔다.
그 구하기 힘들다는 레어 등급의 반지.
강주연은 B급 홀더에, 집안이 좋아 쉽게 얻었지만…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에.
평범한 홀더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아티팩트였다.
‘…괜찮은 것 같네.’
다행히 모나거나 망가진 흔적은 없다.
전력을 다해 마력을 퍼부었다곤 해도, 고작 1개의 화염 마법을 사용했을 뿐이니 오히려 망가지는 게 더 이상했다.
강주연은 어제 있었던 괴수 사건을 떠올렸다.
[마력 결계]를 뚫고 아카데미에 출현한 괴수.
하지만 그런 이슈는 강주연에게 큰 관심사는 아니다.
고작해야 E급 정도의 능력치로.
B급 괴수에게 달려들던 한 학생 홀더.
무모하지만 망설임이 없었던 그 홀더의 뒷모습이…
오히려 더 그녀의 머리에 남았다.
‘도재현.’
이제는 이름을 외웠다.
도재현.
중급반 소속 1학년 학생 홀더.
암살자 계열.
그런데 멀티홀더의 재능을 지녔는지, 어제 괴수와 싸울 땐 검으로 혈전을 벌였었다.
특이하기 짝이 없는 홀더.
첫인상부터 강주연에게 그런 이미지로 다가왔던 그는, 지치지도 않고 꾸준한 느낌으로 모습을 보였다.
첫날 실전 대련 때보다 훨씬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한 상대에게 두려움 없이 부딪쳤다.
그건 강주연이 지금껏 봐왔던.
어떤 홀더에게서도 볼 수 없던 신선함이었다.
아빠 강우현이 말했던 숨겨진 원석.
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면…
아마 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기… 고마워.”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한 여자의 목소리에 강주연은 고개를 돌렸다.
눈에 확 띄는 아름다운 외모와 트렌디한 스타일.
1학년에서 외모로 세 손가락 안에 들기로 유명한…
동기 김채은이었다.
지금 강주연이 들을 강의는 <괴수의 역사와 정보>.
개설 및 강의는 중급반.
강주연과 김채은은 같은 수업을 준비 중이었다.
“어젠 정신없어서 인사를 못 했는데… 도와준 거에 감사 인사는 꼭 하고 싶어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
어제 있었던 괴수와의 혈전.
강주연과 문가은이 개입하며 손쉽게 끝나버린 전투.
학생들이 꽤 많이 다치고 죽은 큰 사건이기도 하고,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김채은 역시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생명의 은인이 된 그들이었다.
강주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홀더는 자신의 무력에 그만큼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고, 딱히 감사 인사를 듣기 위해 도왔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다.
같은 동기인 그녀가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김채은은 한발 더 나아가 말을 이었다.
“네가 오기 전까지 정말 위험한 상황이어서… 그대로 있었으면 우리 재현이가 잘못됐을 수도 있거든…. 진짜 고마워.”
“……?”
우리 재현이?
순간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단어에.
강주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채은이 도재현과 자주 어울리는 친구인 것도 잘 알고, 그에 대해 딱히 신경 쓸 이유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의문 하나가 피어났다.
이 여자.
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지…?
무표정하던 강주연의 눈빛에.
아주 살짝.
미세할 정도로 조금의 짜증이 깃들기 시작했다.
* * *
“…….”
나는 한 교수의 집무실에 불려 와 있었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본래 박진우와 강주연이 처치했어야 할 괴수는.
그 사냥의 주체가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김채은이 최대한 많은 시간을 끌고, 강주연과 문가은이 마무리를 지으며 처치.
그 현장에 박진우는 없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내가 채웠던 만큼.
이어질 사건 전개의 핵심 인물도 내가 되어있었다.
“반갑네. 전사 계열 교수 탁원호라고 하네.”
“안녕하십니까. 1학년 중급반 홀더, 도재현입니다.”
탁원호 교수와 가볍게 악수했다.
하지만 악수하며 날 보는 그의 눈빛이 미묘하게 빛났다.
“자네가 이번 괴수 처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아닙니다. 상급반 강주연 홀더와 문가은 홀더의 합동 공격이 결정적이었어요. 저는 단지 두 홀더가 올 때까지 시간만 조금 벌었을 뿐입니다.”
“당장 1학년 상급반 홀더 중에 그 시간을 벌 전사 계열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군.”
…칭찬인 거지?
탁원호 교수의 화법은 늘 이런 식이다.
사람 자체가 워낙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강해, 상대를 칭찬할 때도 이렇듯 뭔가 비아냥대는 느낌이 든다.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며 날 추켜올리던 김명현 교수.
그와는 성격적으로도, 검술적으로도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자넬 부른 건 그 괴수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네.”
“말씀하시죠.”
탁원호 교수는 턱을 한 번 쓸더니 말을 이었다.
“어제 출현했던 B급 괴수, 시즐링 샐러맨더의 특이점을 말해줄 수 있나? 일반적인 괴수의 정보보다, 자네가 직접 부딪치면서 알게 된 점들이 있을 것 같은데.”
“외관적으로요? 아니면 능력적인 부분에서요?”
“능력적인 부분에서.”
“음….”
시즐링 샐러맨더는 개체 수는 적지만, 나름 정보가 잘 알려진 B급 괴수다.
[이글거리는 불꽃] 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불을 다룰 수 있는 화염 계열의 괴수이고, 다른 두 개 룬을 고려해도 일반적인 도마뱀 괴수들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다.
딱 홀더들에게 알려진 시즐링 샐러맨더의 느낌.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원작을 통해 알고 있는 점이기도 했고, 내가 직접 겪어보며 체감한 사실이기도 했다.
“근력. 근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았어요.”
“…근력이?”
“네. 보통 시즐링 샐러맨더를 포함해서 도마뱀 계열의 괴수들은 속력이 높은 편이잖아요? 톡신 이구아나 같은 녀석들은 관련 룬도 가지고 있고요.”
“음.”
“그런데 시즐링 샐러맨더는 근력이 훨씬 높았어요. 그래서 싸우면서도, 근력 차가 너무 심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탁원호 교수는 내 말에 다시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
나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
어느 날 야간에 순찰 도중 발견했던.
오로지 탁원호 교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아카데미 내부 지하 던전.
그 던전의 초입부는 도마뱀 계열 C급 괴수.
리자드맨으로 구성된 소굴이다.
탁원호 교수는 아마 그 던전과 이번에 나타난 ‘시즐링 샐러맨더’와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리자드맨은 도마뱀 계열 괴수 중에서도 유별나게 근력이 높은 괴수니까…
내 이야기와 맞물려 연결이 되고 있겠지.
“그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나?”
“네. 제가 겪은 바로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가….”
그럼 당장 던전을 공략하면 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탁씨 가문엔 탁원호 외에도…
다른 후계자들과 수많은 자제들이 있다.
그들에겐 당연할 만큼의 각기 파벌이 존재하고, 가문에서 더 좋은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견제한다.
당장 아카데미 지하 던전의 존재를 밝히고 공략을 선언하면, 탁씨 가문 내 다른 파벌에서 그 공적을 뺏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탁원호 교수가 일은 신중하게 처리하는 건.
그러한 진흙탕 싸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지하 던전과는 별개로.
아카데미 내 [마력 결계]가 무너진 건 또 다른 세력의 공작이었으니….
이는 정말 여러 상황이 겹치고 겹친 사건이었다.
“아, 참. 자네가 괴수를 상대할 때 사용한 게 단검이 아니라, 검이었다던데.”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는지.
분위기를 환기하듯 탁원호 교수가 물었다.
“아. 제가 암살자 계열이지만 검 룬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녀석을 상대할 땐 검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아서 검을 썼습니다.”
[검]과 [단검]을 모두 쓰는 멀티홀더.
홀더의 세계에서 두 개 이상의 무기를 다루는 멀티홀더는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자 탁원호 교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검 룬도 있는데 어째서 내 강의를 신청하지 않았지?”
전사 계열, 특히 검술에 있어선 최강이라 자부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탁원호 교수의 검술 강의.
그는 검을 다루는 내가 자신의 강의를 듣지 않는 데에 자존심이 조금 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난 억울하다.
“그… 교수님께서 강의를 전사 계열만 들을 수 있게 제한하셔서.”
못 듣는데 어떻게 신청해요….
나도 듣고 싶었다고.
탁원호 교수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검술.
화려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검술.
하지만 암살자 계열인 나는 애초에 신청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탁원호 교수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그랬었나. 내가 멀티홀더를 생각하지 못했군. 미안하네. 내 조수에게 말해둬 한 자리를 열어놓을 테니, 정정신청으로 내 강의를 듣게. 이럼 괜찮나?”
그 제안에, 나는 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탁원호 교수의 강의는 언제나 만석이다.
잘 가르치고 인기 많은 교수의 강의답게, 현재 그의 강의 중 정정신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남은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전사 계열들도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가는 강의.
그를 암살자 계열인 내게 특별히 열어준다는 것.
아마 부족한 능력에도 B급 괴수와 맞서 싸운 내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보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김명현 교수가 날 검술적으로 좋게 본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고 싶은데.’
쉽게 오지 않는 기회다.
점점 궤도에 오르는 [검]을 더욱 성장시킬 기회였고, 홀더로서도 한층 더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바로 예스라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됐다.
‘김명현 교수님 전속 제자 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오기 전.
김명현 교수의 전속 제자 제안을 받아들인 것.
한두 달 된 것도 아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수락한 내용.
전속 제자가 되면 본격적으로 그의 검술을 배우기 시작할 텐데, 정반대에 있는 탁원호 교수의 검술 강의를 듣는 건 김명현 교수에 대한 모욕이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