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두 명의 스승 (3)
“말씀은 감사하지만… 죄송합니다. 교수님 강의를 듣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번엔 탁원호 교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만석인 강의를 열어주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했는데.
거절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이거, 내가 자존심 긁은 건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다행히 불쾌하다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순수히 궁금하다는 듯한 그의 질문에, 나는 최대한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 말했다.
“제가 운 좋게 김명현 교수님의 전속 제자 제안을 받아서요… 아무래도 김명현 교수님 전속 제자로 있으면서, 다른 교수님의 검술 강의를 듣는 건 실례인 것 같아서요.”
그러자 탁원호 교수의 얼굴이 더 놀람으로 가득 찼다.
“김명현 그자가 자넬 전속 제자로 삼았다고?”
“네? 아, 네. 열심히 하는 걸 좋게 봐주셨나 봐요.”
“허어… 무슨 변심이 생겨서….”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전속 제자는 홀더 간에 사제지간을 맺고 교육을 하는 비공식적인 관계다.
보통은 아카데미 학생이 아닌 홀더끼리 관계를 맺는다.
아카데미가 아니면, 홀더들이 배울 기회가 없기에.
하지만 당연히 아카데미 내에서 교수와 학생 간에도 이를 맺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맺고 끊음이 자유롭지만, 의외로 홀더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받는 정식 관계이기도 했다.
탁원호 교수는 전속 제자 이야기 이후.
끊임없이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내게 말했다.
“자네. 아까 분명 내 검술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었지?”
“네? 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내 전속 제자로도 들어오게.”
“…예?”
그의 황당한 말에 바보처럼 되묻고 말았다.
이미 김명현 교수의 전속 제자가 된다고 말했는데도, 자신의 전속 제자로 들어오라는 말을 한다고?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전속 사제 관계는 자유롭고 비공식적인 관계이고, 따라서 한 명의 제자가 여러 명의 스승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도의적인 문제다.
이미 스승을 두고 있는데, 또 다른 스승을 받는다는 건 상식의 선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였다.
심지어 분야도 같은 검술이니까….
그러나 탁원호 교수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 웃었다.
“걱정하는 게 뭔지 아네만, 괜찮네. 김명현 교수에겐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
“…두 분이 잘 아는 사이신가요?”
“하하. 같은 전사 계열의 교수끼리인데 당연히 잘 알지.”
“아, 죄송합니다.”
“거기에 김명현 교수와 나는 홀더 아카데미 동기일세. 자네가 생각하는 것 외로 친분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여기까지 들으니 나도 안심이 됐다.
도의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준다고 하니…
난 편하게 선택만 하면 됐다.
그러니까.
검술 교육에 있어서 최고로 꼽히는 탁원호 교수와…
부드럽고 유려한 검술의 김명현 교수.
두 사람의 전속 강의를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거잖아?
‘씨발. 섹스다.’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 수는 없었다.
성장 효율을 높이는 룬들과 이를 가속하는 스승들.
두 요소가 마주친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탁원호 교수가 웃으며 물었다.
“어떤가. 생각이 좀 바뀌었나?”
“예, 교수님! 꼭 하고 싶습니다!”
내게 두 명의 스승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김명현 교수와 탁원호 교수.
두 사람의 전속 제자가 되는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던 탁원호 교수의 말처럼.
김명현 교수는 동시에 배우는 걸 흔쾌히 허락했다.
덕분에 나는 [검]을 배우는 데에 있어, 누구보다 호화로운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을 베는 당신의 검이 더욱 부드럽고 유연해집니다. 이제는 검을 다루는 룬에서 검술에 대해 고찰하는 룬을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1 획득합니다.]
[거침없이 찔러 들어가는 당신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이제는 검을 다루는 룬에서 검술에 대해 고찰하는 룬을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1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유수검법
◎등급: 레어(Rare)
◎레벨: 1
◎새겨진 부위: 왼쪽 손목
◎특수효과
: 속력+1
◎파생스킬
◎세부정보
: 흘러내리는 물의 움직임엔 베어내는 검의 부드러움이 담겨 있다. 이 검법을 통해 새로운 검의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
<룬 정보>
◎이름: 파상검법
◎등급: 레어(Rare)
◎레벨: 1
◎새겨진 부위: 오른쪽 손목
◎특수효과
: 근력+1
◎파생스킬
◎세부정보
: 거침없이 밀려왔다가는 물결엔 찔러 들어가는 검의 파괴력이 담겨 있다. 이 검법을 통해 새로운 검의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
끊임없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정보창.
이번에 새로 얻은 룬에 관한 정보였다.
두 교수의 독창적인 검술을 배우고.
그에 관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검법’에 관한 새로운 룬들이 [검]으로부터 파생됐다.
이건 [룬 사냥꾼]의 조건이었던 ‘인위적 룬 획득’의 히든피스와는 명백히 달랐다.
히든피스는 요구하는 조건만 만족한다면 어떤 홀더든 획득이 가능한 룬들이다.
하지만 [유수검법]이나 [파상검법], 혹은 내가 <마력 제어의 기초> 시간에 익혔던 [마력 제어]와 같은 룬들은 관련 룬의 성장이나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
홀더의 재능과 교수의 교육 방식에 따라.
획득 조건과 시기가 전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룬들은 ‘파생 룬’의 형태로 보지, ‘인위적 룬’의 형태로 보지는 않았다.
“드디어 익혔다….”
어쨌든 나는 두 검법을 모두 익히는 데에 성공했다.
[검] 룬이 5레벨에 다다르고, 두 교수의 가르침과 깨달음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검법 룬들.
이들을 성장시키면, 훗날 내게 큰 힘이 될 게 분명했다.
당장 원작에서 박진우의 주력 스킬이었던 [파상천검] 또한, [파상검법] 룬에서 파생되는 스킬이니까.
“으으… 아빠 같아. 도재현.”
여느 때처럼 김채은의 목소리가 내 집중을 깨웠다.
그녀는 내 스승인 김명현 교수의 딸.
[유수검법]을 펼치는 내 모습이 아빠와 오버랩 된 모양이다.
“교수님 검술이 어때서. 부드럽고 멋있잖아.”
“지겨워. 맨날 보던 거란 말이야.”
“원래 익숙해지면 소중한 줄을 몰라. A급 홀더의 고유 검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잔소리하는 것도 아빠 같아.”
새침하게 말을 돌린 김채은은 훈련장을 돌아봤다.
공강 타이밍의 훈련장이라 평소보다 조금 한산했다.
“박진우는? 맨날 이 시간에 둘이 대련하잖아.”
이 시간에 맨날 훈련장에서 대련을 하다보니, 이제 김채은도 박진우를 알고 있었다.
딱히 막 친하지는 않고…
그냥 맨날 내게 지면서 또 들이박는 바보 홀더 정도로 알고 있다.
“오늘 무슨 조별과제 같은 거 있다던데. 자기가 조장이래.”
“엑. 그런 강의를 왜 들었대.”
“알잖아. 걔 아무 생각 없이 강의 고르는 거.”
아카데미 괴수 사건 이후.
박진우와 대련 횟수는 10번을 더 넘어갔다.
결과는 15승 0패.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주인공만이 가질 수 있는 특전인 [구도자의 땀방울]을 가져왔고, 홀로 성장 중인 박진우와 달리 두 명의 최고급 교수로부터 전담 교육을 받고 있으니까.
능력치, 룬 레벨, 룬 다양성.
모든 면에서 박진우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 자체의 성장력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기에, 우리가 대련하는 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근력, 속력 등의 핵심 능력치는 20이 넘었다.
중급반에서도 상위로 볼 만한 능력치.
완전히 D급 수준의 홀더로, 둘 다 올라온 것이다.
“재현아, 재현아.”
“응?”
“그런데 왜 요즘 계속 검으로만 훈련해? 넌 단검도 잘 쓰잖아.”
“음….”
내가 홀더가 되며 가장 먼저 얻었던 [단검].
최근 들어 이 룬의 성장에 약간 소홀하게 됐다.
[검]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자랑하는 두 명의 교수가 내 전담이지만, [단검]은 아무래도 평범한 교수의 평범한 강의를 듣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홀더 개인마다 주력 룬이 다르듯, 나라마다 강점이 있는 분야도 달랐다.
홀더 강국인 한국의 주력 분야는 전사와 마법사 계열.
암살자 계열로 성공하려면 아무래도 일본 쪽에서 배우는 게 더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S급 암살자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아카데미엔 그런 수준급의 교육자가 부족했다.
“도재현 홀더! 중급반의 도재현 홀더 있습니까?”
그렇게 김채은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한 아카데미 직원이 훈련장에서 날 찾았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
저번 아카데미 괴수 사건 때 날 찾았던 직원이었다.
“여기 계셨군요. 탁원호 교수님께서 도재현 홀더를 찾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들리시죠.”
그때처럼 이번도 탁원호 교수가 시켜 내게 왔다.
그리고 이를 보며, 난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아카데미 지하 던전.
탁원호 교수가 직접 나설 수 없는 현 상황에.
학생들을 선발해 던전을 공략하게 하는 일.
아카데미 괴수 출현에 이어.
극을 이끌던 두 번째 핵심 사건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