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6화 (16/353)

EP.16 아카데미 지하 던전 (1)

몇 번이고 드나들어 익숙해진 집무실.

날카로운 인상의 탁원호 교수가 집중하며 앉아있었다.

나는 인기척을 내며 그를 불렀다.

“교수님, 저 왔습니다.”

“아. 왔나.”

“부르셨다고…”

“음. 네게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불렀다. 잠시 시간 괜찮나?”

“공강이라 괜찮습니다.”

탁원호 교수는 처음 볼 때와 달리, 이제는 내게 말을 편하게 한다.

차가운 인상과 냉철한 말투는 변하지 않았지만, 한 달에 가깝게 날 교육하면서 많이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특히 탁원호 교수는 검을 가르칠 땐 스파르타에 가깝게 상대를 휘몰아친다.

안 되면 되게 하고, 되면 더 되게 한다.

거의 이전 세계에서의 해병대 마인드.

어색하던 사이였더라도 탁원호 교수의 걸쭉한 욕설 몇 번을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김명현 교수는 여전히 내게 존대를 한다.

김명현 교수가 반말하는 사람은 김채은밖에 없었다.

“일단… 그래. 나와 김 교수가 가르치는 검술에 대해선 감을 좀 잡았나?”

탁원호와 김명현.

두 교수가 합심해 가르치는 나는 괴물처럼 성장했다.

원작의 박진우보다 더 빠른 기간에 [검]을 5레벨까지 상승시켰고, 교수들의 가르침에 곧장 깨달음을 얻으며 ‘검법’과 관련된 두 개의 레어룬을 획득했다.

능력치의 성장폭도 매우 가파랐다.

근력과 속력은 이미 20 이상.

정신과 내구도 20에 점점 가까워졌다.

이전 세계에선 검을 잡아본 적조차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마치 검의 달인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부로 유수검법과 파상검법을 익혔습니다. 아까 훈련할 때 룬으로 등록됐어요.”

“벌써 익혔다고?”

“네. 운이 좋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내 앞에서 그런 겸손은 필요 없다.”

탁원호 교수의 질책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곤 재빨리 새로운 답안을 제출했다.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뛰어났습니다.”

“…흠흠.”

정답이었나 보다.

“어쨌든 그럼 일이 조금 더 쉬워지겠군.”

탁원호 교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안쪽에 넣어놨던 서류 뭉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걸 받아라. 도재현.”

“이게…?”

“설명하기에 앞서 한 가지 서약을 하고 들어가기로 하지. 지금부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절대 밖에 새어나가서는 안 될 일급비밀이다. 다른 이에게 이 내용을 말해서도, 문서로 남겨서도 안 된다. 알겠나?”

“예.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스륵-

탁원호 교수가 굳게 닫힌 서류의 밀봉을 풀었다.

열 장 이내로 보이는 듯한 탐험 보고서.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대로.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 관한 구조 및 공략 보고서였다.

“아카데미 남관 지하 통로에서 발견된 미발견 던전이다. 현재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던전이지. 도재현, 네가 이 던전의 공략을 맡아줬으면 한다.”

“…제가요?”

“그래. 내가 직접 공략 파티를 꾸리고 싶지만, 대외적인 내 위치와 아카데미 내부 사정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전에도 말해서 대충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탁씨 가문의 여러 후계자가 탁원호를 견제하는 상황.

그리고 [마력 결계]를 뚫고 나온 B급 괴수 때문에, 언론을 비롯한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중인 아카데미.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아카데미 내부에 지하 던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돌면, 지금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게 분명했다.

탁원호 교수는 그를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최근 전속 제자로 들어오며 믿을 만한 구석이 생긴 내게 이를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박진우에게 갔어야 할 제안.

전속 제자에 이어 아카데미 던전까지.

의도한 건 아닌데, 또 내가 먹게 됐다.

‘미안해, 진우야.’

나는 속으로 가볍게 박진우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최대한 표정관리를 했다.

지금의 나는 기뻐할 게 아니라, 혼자서는 어렵다는 밑밥을 충분히 깔아야 했다.

“하지만 교수님. 제가 두 교수님들께 전담으로 배우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D급 수준에 머무르는 홀더입니다. 당장 보고서에 보인 초입부 괴수 리자드맨만 하더라도 C급인데… 저 혼자서는 좀 무리 아닐까요?”

“음… 일리가 있군.”

탁원호 교수가 한 차례 턱을 쓸며 고민했다.

그리곤 이내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도재현, 네가 원하는 선에서 한 명의 학생 홀더를 동료로 데려가라. 대신 철저한 비밀 서약을 받아야 하며, 최종적으로 내게 승인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됐다.

예정대로 탁원호 교수는 동료 한 명을 허락해줬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은 히든 던전답게 괴수의 수준도 높고, 그만큼 보상도 어마어마한 곳이다.

사실상 원작 주인공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주연 전용 편의성 던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마음 같아선 그 보상을 모두 독점하고 싶었다.

그를 모두 얻어내면 성장의 수준이 확 올라가니까.

하지만 이는 아직 D급 홀더인 내가 혼자서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의 던전이 아니다.

원작의 박진우가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때의 박진우도, 지금의 나도.

골라야 할 동료는 오로지 한 명 뿐이었다.

‘강주연.’

그녀가 있어야 안전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

1학년인데도 벌써 B급에 오른 학생.

불 계열 최고 수준의 에픽룬을 보유한 홀더.

전 학년을 통틀어도 마법사 계열에서 원탑일 여자.

강주연.

그녀가 필요했다.

* * *

배울 게 없다.

지루한 아카데미 강의를 들으며, 강주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주연은 S급 홀더의 딸로 태어나 엘리트로 자랐다.

그동안 받은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의 양은 아카데미에서 고작 3년 배우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이미 철저하게 배운 내용을 또 배우는 것.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강주연은 이미 B급 홀더.

당장 아카데미 교수진도 A급 및 B급 홀더가 대부분인 판에, 비슷한 수준의 그녀를 교육하는 건 어떤 교수든 쉽지 않았다.

‘…재미없네.’

강주연이 아카데미에 진학 중인 이유는 단 하나.

타이틀 때문이었다.

홀더 아카데미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

재학 내내 최고의 성적으로 학기 마무리.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는 그녀로서는, <불의 심판> 클랜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딸 수 있는 모든 타이틀을 따야만 했다.

특히 아카데미는 대부분의 홀더가 거쳐 가는 기관.

많은 인맥을 쌓고, 홀더끼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곳.

엘리트인 그녀가 단지 재미없다는 이유로, 이토록 중요한 기관의 졸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그럼에도 이 수업, <괴수의 역사와 정보>는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

주변 학생들이 전부 졸고 있을 정도로.

강주연도 대충 수업을 듣는 척하며,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고요한 강의 속에서 홀로 열심히 필기 중인 한 남자.

‘…도재현.’

그는 요즘 강주연의 관심사였다.

처음은 단지 인간적인 호기심이었다면.

지금은 홀더로서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입학 당시, 실전 대련으로 중급반에 막 올랐던 도재현.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E급 수준의 홀더일 때, 아카데미에 나타난 B급 괴수에 겁 없이 덤볐고…

놀랍게도 놈에게 꼬리를 자르는 유효타를 먹였다.

그것만으로 이미 기적인데, 이후 계속해서 성장하며 벌써 D급 홀더에 다다르는 능력을 보인다.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소문이 워낙 많아 알 수 있었다.

E급 끝자락 수준에서 D급 머리 수준까지.

거의 최단 기간에 몰아쳐 성장한 그였다.

아카데미의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학생들은 능력도 없이 어떻게든 상급반 학생들과 인맥만 쌓으려 하지만.

그 안에서 도재현이라는 남자는.

스스로 노력하고 도전함으로써…

성장하는 홀더라 불릴 가치를 만든 이였다.

“ … …따라서 아무리 강력한 방어 룬과 내구 수치를 지닌 괴수라고 하더라도, 마력석이 자리한 곳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겠습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교수의 마지막 말과 함께 강의가 드디어 끝났다.

학생들은 가볍게 인사하며, 각기 강의실을 나섰다.

“뜨, 다다- 드디어 끝났다. 푸우, 지루해.”

옆에서 같이 강의를 듣던 문가은이 기지개를 켰다.

역시나 모두가 느꼈던 지루함.

이 강의의 교수는 유난히 수업이 재미없었다.

문가은이 웃으며 강주연을 바라봤다.

“카페 가자, 주연아.”

“카페?”

“응. 나 바닐라 라떼 먹고 싶어.”

강주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문가은이 뭔가를 하자고 할 때면 강주연은 어지간해서 그녀를 따랐다.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와 실제로 그런 성향.

그 때문에 친구가 아예 없다시피 한 강주연에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문가은은 유일한 친구였다.

가족끼리도 친분이 있고, 같은 엘리트로 수준도 비슷해 공감대가 많았다.

내색은 잘 안 하지만.

강주연은 그런 그녀를 꽤 많이 신뢰하고 의지했다.

그래서 딱히 다른 친구를 만들 생각도 없었다.

아카데미나 사회에서의 관계는, 모두 비즈니스라 생각하기에.

“저기…”

그런데 강의실을 나가려던 찰나.

웬 남자 한 명이 그녀들을 가로막았다.

큰 키와 단단한 체격.

누가 봐도 전사 계열인 것처럼 보이는 몸집.

강주연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그리곤 이내 살짝 눈이 커졌다.

오랫동안 담아 왔던 눈빛.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을까?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강주연이 수업 내내 힐끗힐끗 보던 홀더.

도재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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