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 아카데미 지하 던전 (2)
“…….”
“…….”
아카데미 내 카페 안.
우리는 서로의 앞에 커피를 두고.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해야 할 말은 있는데, 막상 입이 안 떨어진다.
…사실 나도 바로 대화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
아카데미 지하 던전으로 가기 위한 동료 섭외.
그 적합자로 강주연을 뽑았고, 그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첫 시도 만에 그녀와 이렇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워낙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에, 수준 낮은 홀더에겐 더욱 냉철해지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아니까.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분 건지, 강주연은 잠깐 시간을 내달라는 내 부탁을 가볍게 승낙했다.
원작의 박진우도 10번을 까이고 11번째에서야 겨우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한 번만에 바로 성공하니 뭔가 신기했다.
아무튼 그렇게 된 지금이 이 상황.
숨이 턱턱 막히는 카페 타임이었다.
“그…”
“…헉. 말한다, 말한다.”
아.
또 시작이네.
겨우겨우 입을 떼니.
다시 혼잣말이 들려온다.
대화를 유연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
우리의 옆 옆 테이블.
문가은이 웬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나와 강주연을 훔쳐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언가 잔뜩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내가 무슨 말만 꺼내면 혼잣말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렇게 하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나?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내 소개 먼저 하자면, 중급반의 도재현이라고 해. 넌 잘 모르겠지만, 아까 그 수업도 같이 듣고, 또 저번에 괴수 잡을 때도…”
“알아.”
“…어?”
“알아, 도재현.”
강주연이 날 안다고?
왜?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했다.
박진우도 11번을 매달려서 겨우 대화하는 데에 성공했는데, 내가 단번에 카페까지 오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저번 괴수 사건 때 마주쳤던 게 인상적이었던 걸까.
…솔직히 얻어맞는 것밖에 안 보여준 것 같은데.
그것도 나름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겠지.
어쨌든 날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더 수월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금세 말을 이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갈게.”
이제는 정말 본론을 이야기해야 할 때였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건, 다른 데에 새나가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라서… 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 관한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할 이야기.
절대 다른 데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 까다로운 내 부탁에.
강주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엘리트다.
어떤 상황이든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비밀을 지켜줄 걸 부탁했고, 아마 내용에 상관없이 그를 어기는 건 강주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일이 조금은 수월하게 풀렸음을 느끼며.
준비해뒀던 보고서들을 꺼냈다.
“이거 한번 봐 볼래?”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 관한 탐험 보고서.
던전의 간략한 구조와 초입 출현 괴수.
그리고 아주 약간의 공략 지식이 담겨 있었다.
천천히 보고서를 읽던 강주연의 표정이 묘해졌다.
단번에 그게 뭔지 알아챈 듯.
그녀의 눈빛에 이채가 서리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더욱 낮춰 말을 이었다.
“대충 파악했겠지만… 아카데미 내부 어딘가에 자리한 특수 던전이야. 아직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미발견 던전이기도 하고.”
강주연은 꼼꼼하게 보고서를 살폈다.
보고서는 탁원호 교수가 임시 답사를 한번 다녀오고 작성한 서류였기에 부족한 정보가 많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탐험을 해야하는 이들에겐 괜찮은 지침서였다.
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 곧장 결론을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강주연, 네가 내 동료로 함께 그 던전을 탐험해줬으면 해. 우연치않게 그 던전을 탐험해야 할 명분이 생겼는데, 내 능력으로는 솔직히 부족해.”
미발견 던전은 특별한 보상이 넘치는 홀더들의 낙원이지만, 그를 공략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비참한 묫자리가 될 뿐이다.
난 아직 혼자서 지하 던전을 공략할 힘이 부족했다.
이번 공략엔 강주연이 꼭 필요했다.
“던전 공략?”
“응. 보고서 봐서 알겠지만, 초입에 나타나는 괴수는 주로 C급의 리자드맨. 근력이 높고 마력 공격엔 약한 괴수야. 그래서 내가 앞선에 서서 버티고, 네가 뒤에서 마법 지원을 해주면… 생각보다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솔직히 말하면.
버스 받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녀 정도 되는 마법사 계열 홀더라면, 앞선에 서는 홀더가 누구든 간에 혼자 활약 가능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야 했다.
어차피 강주연도 내가 없으면 이 던전 공략을 시작하지 못하니…
아무튼 윈윈이나 다름없었다.
강주연은 단호한 내 말에 잠깐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왜 나야?”
“어?”
“다른 홀더도 많잖아. 근데 왜 굳이…”
“…….”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동기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B급 홀더.
당장 그 타이틀만으로 무조건 필요한 사람인데, 엘리트 출신이라 자존심도 강하고 입도 무겁다.
그녀는 아마 절대로.
다른 이에게 던전에 대한 내용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적 요소에 관여치 않고 묵묵히 공략해 줄 사람.
주변인 중 그런 사람은 강주연밖에 없었다.
“저번 괴수 사건 때, 네가 보인 마법이 너무 인상적이었어. B급 괴수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마법… 난 처음 봤거든.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1학년 최강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강한 사람이랑 함께 가면 공략이 조금 더 수월해지긴 하니까. 누군가랑 같이 이 던전을 공략을 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강주연. 딱 너밖에 안 떠오르더라.”
하지만 답답한 속마음과 달리.
내 입에선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유가 술술 나왔다.
나도 나름 필사적이었다.
강주연이 없으면, 던전 공략이 불가할 수도 있어서.
거의 이전 세계에서 PPT 발표를 하는 심정으로.
부드럽고 깔끔하게.
그리고 그녀를 약간은 추켜올리며 설명했다.
다행히 내 열정이 먹혀 들었는지.
강주연도 약간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이름이 나왔다.
“…김채은은?”
“예?”
여기서 김채은이 왜 나와?
아니.
애초에 강주연이 김채은을 어떻게 아는 거지.
하지만 별 것 아니라는 듯.
이내 강주연의 고개가 휙휙 저어졌다.
“아니, 아니야. 할게, 그거. 던전 공략.”
“어? 진짜?!”
“응.”
너무도 가볍게 떨어진 승낙.
하지만 그럴 만한 유인은 꽤 명확했다.
워낙 아카데미 생활이 지겹고 수업을 지루하게 여기는 강주연이기에, 비밀 던전 공략이라는 신선한 바람은 그녀를 움직이도록 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됐다.’
나는 주먹을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하 던전 공략을 위한 첫 단추가 제대로 매어졌다.
이제 날짜만 잡고, 탁원호 교수의 승인만 받으면 끝.
기다리고 기대하던 첫 던전 공략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뭐든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없는 걸까.
한 가지 변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거 나도 할래!”
해맑게 웃으며 옆에서 손을 드는 문가은.
그녀는 저 멀리에서 우리를 훔쳐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다가와 대화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
‘룬 썼구나.’
문가은의 룬과 스킬을 대충 아는 나는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이 보유한 레어룬.
[돌고래의 음파] 룬에 담긴 스킬로.
청력을 확대한 게 분명했다.
문가은을 확실히 떨어뜨리지 못했던 내 허술함이었다..
‘근데 나쁘지 않은데?’
돌발 변수가 발생하긴 했지만.
의외로 문가은의 합류는 나쁘지 않다.
앞선을 서 줄 전사 계열과 후방을 지원할 마법사 계열.
여기에 레인저 역할을 하며 간간이 지원 공격도 하는 궁수 계열이 추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3인 파티의 완성이었다.
오히려 둘이서만 하려던 파티보다 더 완성도가 높았다.
…탁원호 교수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 * *
“괜찮다. 네 생각대로 해라.”
탁원호 교수는 문가은의 합류를 선선히 허락해줬다.
살짝 의외였지만, 이유를 들으니 이해가 갔다.
처음 그의 계획은 해당 던전에서 내게 실전 경험을 얻게 하며 꾸준히 성장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수검법]이나 [파상검법]은 홀로 연습할 때보다, 직접 괴수와 상대할 때 진가가 더 드러나니까.
하지만 내 성장만큼이나.
아카데미에 갑자기 출현한 던전.
이 던전을 파헤치고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게 방향을 재설정하며, 상급반에서도 고위 홀더에 속하는 강주연과 문가은의 공략 파티 합류가 확정됐다.
혹시나 비밀 공략이라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두 사람은 정치적인 문제만 엮이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나는 던전 공략에 앞서, 마지막으로 홀더 정보를 점검했다.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성별: 남(20)
◎능력치
[근력: 24] [마력: 6]
[속력: 22] [신성: 2]
[내구: 17] [정신: 14]
◎내성
[독: 1]
◎보유 룬
-에픽(Epic)
[룬 사냥꾼 Lv.Max] [구도자의 땀방울 Lv.Max]
-레어(Rare)
[도마뱀의 비늘 Lv.6] [맹독 Lv.0]
[유수검법 Lv.1] [파상검법 Lv.2]
-노멀(Normal)
[검 Lv.6] [단검 Lv.4] [요리 Lv.3] [격투 Lv.2]
[질주 Lv.2] [마력제어 Lv.2] [활 Lv.1] [도끼 Lv.1]
[창 Lv.1] [둔기 Lv.1] [방패 Lv.1]
◎보유 스킬
[쿼터 나이프] (단검)
[포이즌 클로우] (맹독)
[연격] (검)
[단단해지기] (도마뱀의 비늘)
◎궁극 스킬
-
20을 넘기며 확실히 단단함이 생긴 능력치.
그리고 각종 룬 레벨의 성장이 나를 반겼다.
신성이나 마력 수치는 어떻게 오른 건지 싶지만, [구도자의 땀방울] 룬의 훈련 효과로 얻는 능력치가 랜덤이기에 한 번씩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특히 룬 쪽에서는 최근 공을 들여 성장 중인 검 관련 룬이 확실히 눈에 띄었다.
[검]은 어느새 6레벨에, [파상검법]도 벌써 2레벨.
탁원호 교수의 스파르타식 교육이 꽤 효과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마 아카데미 지하 던전 초입.
주로 나타나는 C급 괴수 리자드맨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홀더 정보였다.
괴수들과 맞서는 앞선에서.
내가 브루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탐험을 떠나는 당일.
나, 강주연, 문가은.
우리 셋은 보고서에 적힌 아카데미 남관 지하 통로, 던전의 비밀 입구에 와 있었다.
문가은이 신기한 듯 지하 통로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우아- 비밀 던전이라니. 엄청 떨린다- 그치, 주연아.”
“…별로.”
공략을 위해 사전에 몇 번 만나서인지.
강주연과 문가은의 만담 아닌 만담도 이제는 익숙했다.
던전의 입장 방법은 간단하다.
입구라고 알려진 장소에 특정 매개체가 숨겨져 있고…
해당 매개체에 마력을 주입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이번 던전의 매개체는, 남관 지하 통로의 벽면 어딘가.
나는 조금씩 벽면을 더듬으며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두 사람을 봤다.
“넣을게.”
아차…!
마력이란 말을 생략했네.
그래도 대충 이해한 듯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대로 마력을 주입하면.
셋 모두 함께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의 스산한 기운과 무거운 공기로 인해 홀더의 속력이 약간 저하합니다.]
이곳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나는 처음으로 던전에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