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아카데미 지하 던전 (3)
<홀더의 역사와 기초>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는 그렇게 말했었다.
“현대 사회에서 홀더가 돈을 버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첫 번째가 괴수를 잡는 것 그 자체.
결계 밖의 괴수나 가끔 결계 안에 출몰하는 괴수들을 잡으면, 국가에서 지정한 보상금과 괴수의 몸에 박힌 ‘마력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홀더의 가장 보편적인 소득이고, 현대 사회가 홀더를 필요로 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익이다.
“두 번째로는… 일반인들의 의뢰를 맡는 것. 즉, 홀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근력을 과하게 요구하는 일이라거나…
일반인이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
그런 걸 홀더가 도맡아 하면,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수요 자체가 많지 않고, F급 정도 되는 홀더들이 아니라면 거의 맡지 않는다.
게다가 아카데미 교수직과 같은 전문직을 제외하면, 벌이도 많지 않기에 크게 선호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마지막이 바로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 던전 공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던전.
무수히 많은 괴수가 숨어져 있는 특수 공간.
이곳엔 괴수의 위험이 도사리는 만큼 다양한 보상이 숨겨져 있고, 이는 훈련이나 일반적 성장으론 이뤄내기 어려운 보상일 때가 많다.
특히 최초로 던전을 공략하면 특별한 성장을 이룰 수도 있어, 홀더들이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드는 게 ‘미발견 던전’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던전 공략의 꽃은 보스 룸이죠.”
던전 공략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인 ‘보스 룸’.
보스 룸은 각 던전마다 난이도와 보상이 다르고, 만약 운이 좋다면 공략에 성공했을 때 엄청난 대박을 물어다 주기도 한다.
한국의 암살자 계열 중 유일한 S급 홀더.
유은설 또한 보스 룸으로 성장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녀가 최상급 던전으로 불리는 <용의 숨결이 닿는 강>의 보스 룸을 깨고 난 후, 급격히 성장하며 S급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한창 홀더 계에 맴돌았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렵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는 법.
그만큼 던전 내 보스 룸이 가지는 가치는 뛰어났다.
던전.
그곳은 룬 홀더에게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달콤한 땅인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더 특별한 미발견 던전.
아카데미 지하 던전의 초입부.
우리는 입구부터 10분 정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괴수가 등장하는 곳은 조금 더 가야 나오는 모양이다.
“그럼 도재현 넌 던전 처음 와 보는 거야?”
“응. 애초에 홀더 된 지도 두 달밖에 안 됐어.”
“와. 진짜? 너도 은근히 재능러였구나?”
심심함 속에 주로 대화하는 건 나와 문가은이었다.
강주연은 워낙 말이 없는 타입이라 조용했다.
가끔 힐끔거리며 우리에게 시선을 던지는 걸 보면, 뭔가 대화에 끼고 싶은 것 같기는 한데… 말을 안 하면 알 수가 있나.
“진짜 재능 둘 앞에서 그런 말 들으면 민망한데.”
“에이. 나랑 주연이는 그래도 홀더 된 지 꽤 됐어. 반년 정도? 그리고 유전적인 것도 있고. 그치, 주연아?”
끄덕끄덕-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날아온 질문에.
강주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걸 보면 문가은도 참 대단하다.
딱딱한 반응과 단답이 돌아올 걸 알면서도, 저렇게 꾸준하게 강주연에게 말을 건다.
이래서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 된 건가….
“그리고 도재현 너 D급 아니야? 나 두 달 만에 F급에서 D급에 올랐다는 홀더 얘기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
“F급은 아니고. 거의 E급 끝자락이긴 했지.”
홀더의 등급은 협회 공인으로 결정된다.
아카데미 입학 당시 사용했던 능력 측정 기구들.
홀더 협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를 사용해 해당 홀더의 능력치를 측정하고, 실전적 시험을 통해 룬의 활용성과 레벨을 측정한다.
거기에 괴수 사냥이나 던전 공략의 성과까지 측정.
아직 한 번도 홀로 괴수를 잡거나 던전을 공략한 적이 없는 나는 정규 D급 홀더는 아니었다.
그냥 힘의 강도만 D급 수준일 뿐.
“어? 잠깐만.”
잡담을 나누면서 걷던 중.
문가은이 잠깐 손을 들어 우리를 멈춰 세웠다.
급정지에 그녀의 애쉬 블루 톤 머릿결도 찰랑거렸다.
그녀는 빠르게 제자리에 앉으며 손으로 땅을 짚었다.
청각과 진동 등 소리와 파동에 관련된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돌고래의 음파].
이를 활용하는 것 같았다.
궁수 계열은 던전을 공략할 때 이렇듯 레인저의 역할을 자주 맡고, 전투가 벌어질 땐 후방에서 사격 지원을 한다.
보통 궁수 계열이 주로 사용하는 룬은 [날카로운 감각].
하지만 문가은은 수준 높은 엘리트답게 [돌고래의 음파]라는 특수한 레어룬을 보유하고 있고, 이러한 룬이 일반 궁수 계열의 룬보다 성능이 뛰어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온다. 100m쯤?”
문가은의 말과 함께.
쿵쿵- 하고 던전이 울리며.
웬 괴수들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무기로 삼지창을 든 괴수.
이족보행을 하며 형태는 영락없는 사람이지만, 얼굴과 몸의 형상은 도마뱀인…
C급 괴수, 리자드맨이었다.
-카아아악!!
-카악, 카아아-!!
얼핏 보이는 리자드맨의 숫자만 4마리.
D급수준의 내가 혼자 리자드맨 넷을 상대하는 건 욕심이다.
아무리 내 성장 속도가 빨라도 동시에 C급 넷 상대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내 뒤엔 강주연과 문가은이 있었다.
두 사람이 일격을 가하기 전까지, 난 시간만 벌면 된다.
“먼저 갈게!”
그 말과 함께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리자드맨들이 여기까지 도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앞선을 차지해야 했다.
‘검 쓰기 전에…!!’
나는 등 뒤에 맨 검을 뽑기 전.
허리춤에 있는 투척용 단검 네 자루를 먼저 꺼냈다.
[단검] 룬의 활용.
B급 괴수였던 시즐링 샐러맨더는 워낙 내구가 높고, [도마뱀의 비늘]이라는 내구 보조 레어룬까지 있어 단검의 활용이 무의미했다.
당장 검을 써도 거의 흠집을 못 냈으니.
그러나 C급 괴수인 리자드맨은 다르다.
리자드맨은 근력에 강점이 있는 괴수고, 상대적으로 내구가 약해 타격을 입힐 수 있다.
4레벨까지 끌어 올린 [단검]이, 분명 효과를 보일 거다.
“흡…!!”
네 자루의 단검을 리자드맨 한 마리에게 모두 던졌다.
[단검]의 파생스킬, [쿼터 나이프]…!
네 자루의 단검을 던지고, 그중 하나에만 마력을 담아 공격을 강화하는 트릭형 스킬.
아니나 다를까.
내 단검을 맞이한 리자드맨은 당황한 채 반응했다.
가장 먼저 날아든 단검을 삼지창으로 쳐내고.
다음 동작으로 두 번째 단검을 쳐냈다.
하지만 동시 반응에도 한계가 있는 법.
딱 두 개.
리자드맨의 속력으로 반응 가능한 단검은 두 개였다.
-카아아악!!
남은 두 단검이 리자드맨의 몸에 꽂혔다.
하나는 발목에.
하나는 목덜미에.
그리고 [쿼터 나이프].
네 단검 중 마력이 담긴 하나의 단검은.
녀석의 목덜미에 박힌 단검이었다.
“럭키 세븐이다, 이 새끼야.”
씨발.
이게 표도지.
아니, 표창은 아니지만 어쨌든.
급소에 마력이 풀로 담긴 단검을 얻어맞은 리자드맨은 그대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됐다.
완전히 사망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매우 효과적인 기습이다.
나는 그대로 등 뒤의 검을 꺼내 들었다.
기습 성공에 기뻐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카아아악!!
-카악, 카아아!!
동족이 당한 걸 보고 분노한 걸까.
세 마리의 리자드맨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양손으로 검을 쥔 채.
놈들의 찔러 들어오는 삼지창을 흘려냈다.
[유수검법]의 묘리.
여러 무기가 동시에 닥쳐오더라도, 공격의 중심 지점만 파악할 수 있다면 이들을 흘려낼 수 있었다.
챙- 채쟁-
리자드맨들의 삼지창과 내 검이 맞물렸다.
몇 번이고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아직 삼지창이 내 몸에 닿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꾸준하게 틈을 노렸다.
“하압…!!”
공격을 흘려내면서도 카운터로 받아치는 [연격].
빈틈이 생긴 리자드맨에 찔러 넣는 [파상검법]의 묘리.
아무래도 등급의 차이가 있기에 초반 기습으로 전력을 담아 쏟아냈던 [쿼터 나이프] 급의 위력을 보이진 못했지만, 확실히 타격은 있는 듯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만들어냈다.
‘안 좋다.’
하지만 이런 전투에도 한계는 찾아온다.
조금씩 힘에 부치는 게 손목과 살결을 타고 느껴졌다.
그건 미숙한 내 룬 활용과 능력치의 문제였다.
난 이제 막 교수들의 검법을 배우기 시작한 단계이고, 룬 레벨도 고작 1, 2레벨에 그치는 수준이다.
낮은 내 능력치를 커버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리자드맨의 삼지창.
그리고 그들의 무차별적인 공격.
이를 받아내려면, 능력치와 룬 중 어느 하나 뛰어난 측면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D급 수준인 능력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크윽….”
반사적으로 고통에 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드럽게 공격을 받아치던 검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리자드맨들의 삼지창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카아아악!!
설상가상으로.
전투 중인 우리의 앞쪽에서.
또 다른 리자드맨 무리의 소리가 들렸다.
아.
좆됐다….
생각해보니 여기 던전이었지.
처음 나온 무리가 이 네 마리였을 뿐, 던전 안엔 얼마든지 많은 리자드맨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의 녀석들은 후속으로 오는 리자드맨.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세 마리의 리자드맨도 벅찬데, 여기서 더 많은 숫자와 싸우라고 하면 난 진짜 죽는다.
한계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날 구원해주는 문가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재현, 물러서!”
지원 마법과 사격이 모두 준비됐다는 신호탄.
나는 그와 동시에 재빨리 리자드맨들에게서 벗어났다.
방금까지 싸우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속도.
리자드맨들도 당황한 게 느껴진다.
이는 높은 속력도 한몫하지만, [질주]의 도움도 크다.
[질주] 룬은 단순히 이동하고 달리는 것 외에도 순간적인 움직임이나 민첩함에도 보조를 해주는 룬이다.
당연히 전투에서 벗어나는 도주에도 영향이 있었다.
쾅- 콰가강-!!
쉬이익-
그리고 전투에서 벗어나자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살 세례가 날아들었다.
[라이트 메테오]와 [트리플 파워샷].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상당히 효과적인…
그녀들의 주력 광역스킬.
나와 싸우던 리자드맨 셋.
그리고 이후에 온 리자드맨 다섯.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 틈도 없이.
강주연과 문가은의 폭격에 명을 달리했다.
-카, 카아아….
그대로 전투 종료였다.
“…….”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너무 압도적인 공격을 보고 나니.
오히려 몸과 마음이 경건해진다.
이게 그…
몰이 사냥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