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인재 (2)
“돈이 없어, 돈이.”
아카데미 특수 계열 소속 홀더.
그중에서도 대장장이라는 특이 계열의 홀더.
최유민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룬 홀더에게 주말은 천금과 같은 시간이다.
수업이 없는 휴일이기도 하고, 배운 걸 훈련으로 체화하는 자유 시간이기도 하기에.
그래서 많은 학생 홀더들은 주말에 훈련장에서 자신의 룬을 성장시키곤 한다.
이는 대장장이 계열의 홀더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일엔 각종 이론과 실전 수업을 받고, 주말엔 그를 적용해 자신만의 무구나 방어구를 제작한다.
아카데미 내 대장간을 이용해도 되고, 사설 대장간을 잠시 대여해도 된다.
장인은 시간이 쌓일 수록 빛을 발한다는 말이 있듯.
대장장이 계열 홀더들도 남는 시간에 경험을 쌓아야 했다.
이는 아이템을 제작하는 모든 계열의 공식 같은 내용.
하지만 최유민은 그를 실천할 수 없었다.
돈.
그녀에게 충분한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대장장이 계열 홀더는 돈이 많이 든다.
마력석을 사는 데에도, 광물을 살 때도 돈이 든다.
하다못해 이들을 제련하고 제작함에 있어 필요한 기구나 보조 아이템마저 전부 돈이었다.
돈, 돈, 돈.
모든 게 돈이었다.
“이현호는 좋겠다….”
국내 최고의 대장장이로 유명한 이도권의 아들.
이현호.
그는 최유민과 달리 처음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특수 계열에선 거의 찾을 수 없는 상급반의 위치에 있는 동기였다.
언제나 자본에 허덕이는 그녀와는 다른 세상의 엘리트.
벌써 레어 무기를 제작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니…
더 말하면 입만 아픈 상대였다.
“아린이도 불쌍하네.”
그리고 이런 악조건은 최유민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다.
연금술사 계열의 홀더인 자신의 동생.
최아린도 마찬가지였다.
종류를 불문하고 제작과 관련된 특수 계열은 항상 돈이 많이 드는 홀더 계열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난 두 자매.
그녀들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계열이기도 했다.
그러나 홀더에겐 주어진 룬과 계열이 곧 재능.
선택받은 재능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는 것.
그게 이 바닥의 현실이었다.
“하아… 돈이나 벌자….”
한참을 한탄하던 최유민은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대장장이 계열은 그래도 근력이 높다.
F급 홀더들이 주로 맡는 일반인들의 의뢰.
그런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 * *
“부자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지하 던전 공략이 한 차례 끝난 후.
마력석 정산을 마치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씨발. 난 이제 부자다.’
C급 괴수의 마력석은 생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정산할 수 있었다.
보통 마력석 거래는 세 가지 방식이다.
국가 및 정부에 팔거나, 협회 지부에 팔거나…
개인 대 개인으로 거래하거나.
이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건 협회 거래다.
국가에 판매하는 건 클랜 단위의 대량 판매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고, 개인 거래는 수수료는 싸더라도 과정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
협회 거래는 변동 가격에 깔끔하게 사고팔 수 있었다.
“하나당 715만 원입니다.”
협회에서 측정한 C급 마력석은 715만 원이었다.
우리가 던전에서 공략한 리자드맨은 총 120마리가 넘었고, 따라서 내게 할당된 마력석도 40개 수준.
단순 계산만 2억 8600만 원.
미친.
던전 한번 돌고 왔다고 3억이 내 손에 떨어진 것이다.
괜히 홀더들이 던전, 던전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던전에서 돌아온 후.
마력석을 모두 정리하며, 나는 부자가 됐다.
“근데 왜 내가 스테이크를 굽고 있어야 해?”
하지만 부자가 된 나는 지금.
자취방에서 열심히 요리 중이었다.
종류는 한우 스테이크.
내 양손엔 스킬렛과 그릴 프레스가 쥐어져 있었다.
뭔가 본격적인 기구가 더 많아지고…
주방이 점점 전문화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홀더인지, 요리사인지….
“에잇! 시끄러워. 날 빼놓고 혼자 던전 갔다 온 죄야!”
당연히 이걸 주문한 이는 김채은이었다.
던전 공략을 갔다 온 뒤.
난 김채은에게 파티 합류를 제안했다.
던전 공략의 다음으로 넘어가는 중간부엔 새 파티원이 필요하다.
원래 바위를 밀기 위해 박진우만을 영입할 생각이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확실한 딜러 한 명 또한 추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 가장 적합한 인재는 김채은.
나와 친분이 두터워 비밀을 발설할 일도 없고, 마법사 계열에서 나름 희귀한 빙결 계열을 다루는 홀더다.
불 계열 마법의 강주연과 완전히 대비되는 능력.
다양한 상성을 가져오는 건 분명 파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채은이 뿔이 났다.
파티 합류를 거절한 게 아니다.
그녀는 내 부탁엔 어떤 종류든 오토콜이다.
대신 몰래 던전을 갔다 온 것에 화가 났다.
어제 하루.
특별한 약속이 있다 하고 던전에 갔었는데…
그 거짓말이 그대로 들통난 것이다.
“아니, 혼자 갔다 온 거 아니라니까? 셋이서 갔다니까.”
“그게 더 기분 나빠! 왜 다른 여자들이랑 던전을 가?”
“…뭐?”
“아니, 이게 아니라… 으으! 왜 나만 빼놓고 가냐구!”
퍽퍽-
김채은이 웬 쿠션으로 내 등을 마구 쳤다.
아파!
아니, 이런 캐릭터 쿠션은 어디서 구한 거야.
나는 방어 자세를 취하며 최대한 그녀를 말렸다.
“타임, 타임! 스테이크 탄다, 스테이크 타.”
“앗. 그건 안 돼.”
요리 핑계를 대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한우 스테이크에 진심인 김채은이었다.
나는 대략 완성된 스테이크를 천천히 그릇에 올리며 플레이팅을 했다.
“걱정이 돼서 그랬지. 저번에 시즐링 샐러맨더 잡을 때 우리 둘 다 위험했잖아. 그때 너한테 좀 미안하기도 했고.”
“그건 재현이 너가 사과했잖아. 그리고 나도 따라가고 싶어서 간 거야.”
“그래도 괜히 좀 그렇잖아.”
“씨이… 그럼 제대로 말이라도 해주지, 던전 간다고.”
“그건 미안.”
나는 스테이크 플레이팅을 마무리 짓고.
미리 준비해 둔 샐러드를 꺼냈다.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김채은이 물었다.
“드레싱은 뭘로 할 거야?”
“샐러드?”
“응.”
“당연히 키위 맛이지.”
“…포도 맛 안 해?”
“샐러드에 무슨 포도 맛 드레싱이야.”
포도 맛은 오로지 푸딩일 때 빛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푸딩 철학이다.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비롯해 다양한 에피타이저와 사이드 메뉴를 식탁에 놨다.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호화로운 식사.
김채은이 졸라서 만들기도 하지만, 던전에서 고생한 나를 위해 준비한 식사이기도 하다.
3억이라는 거금을 벌고 난 후 가장 먼저 쓴 소비.
도재현 식 홈 레스토랑 플렉스였다.
[열심히 일한 자, 먹어라! 반복의 연속이던 당신의 요리에 진심이 담기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요리엔 특별한 감동이 있습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1 획득합니다.]
[요리 룬의 파생스킬, ‘스태미나 푸드’를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모두 차리자, 뜬금없이 정보창이 떴다.
이건 또 뭐냐.
룬 레벨이 오른 건 그렇다 쳐도…
‘스킬이라고?’
[요리]는 홀더를 요리사로 만들어 주는 룬이다.
요리에 대한 숙련도와 실력을 올려주고, 레벨이 올라가면 고급 요리사에 버금갈 정도로 수준급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보조하는 룬.
김채은이 매일 내 요리를 찾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였다.
그런데 이런 [요리]에 스킬이 있다고?
원작에서도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스킬 정보>
◎이름: 스태미나 푸드
◎파생 룬: 요리
◎대기시간: 하루 (저녁 1회)
◎효과
: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줄 피로 회복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이 스킬로 만든 요리는 홀더의 체력과 마력을 급격한 속도로 회복시킨다.
“…….”
나는 멍하니 정보창을 바라봤다.
이거… 의외로 엄청 좋은 스킬이다.
하루에 한 번.
그것도 저녁에만 쓸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 날의 피로를 모두 가시게 하고, 체력과 마력의 회복 속도를 증진한다는 건 실질적인 효과가 뛰어나다.
무늬만 스킬이 아닌 거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요리 레벨을 확인해봤다.
‘미친. 벌써 5레벨이네.’
[요리]는 [검]과 [단검]을 제외하고.
노멀룬 중에서 최고 레벨에 올라있었다.
돈 없어서 매일 집에서 자취 요리를 해 먹었는데, 그게 벌써 이 정도의 숙련도를 올려놨다.
레벨 상승으로 정신 수치만 올려줘도 룬 값을 톡톡히 하는데, 꽤 쓸만한 스킬까지 주는 룬이라니…
효자룬도 이런 효자룬이 없었다.
설마 이러다가 나중에 다른 게임소설에 나오는 ‘스탯 올려주는 요리’ 같은 거 만드는 건 아니겠지.
“뭐해?”
의자에 앉은 김채은이 날 보며 물었다.
식사하려다 갑자기 멍을 때리니 이상하게 보였겠지.
나는 살짝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먹자.”
“응! 잘 먹겠습니다아-”
김채은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나이프를 들었다.
한 조각을 잘라 먹은 후.
이내 그녀의 표정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맛있어!”
역시 리액션의 김채은답다.
나도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장 감탄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있긴 하네.
이게 5레벨 요리의 힘인가.
우리는 요리의 진심에 감동하며.
한동안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아, 맞다. 재현아. 그럼 새 파티원은 나랑 박진우로 끝인 거야?”
그렇게 열성적인 식사 도중.
문득 김채은이 물었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 재공략을 위한 파티원에 대해.
일단 정해진 건 박진우와 김채은 둘뿐이었다.
하지만….
“더 있긴 있어.”
“새 파티원이?”
“아니, 파티원은 아니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의 사건들에서도 크게 도움이 될 인재들.
“파티에 도움이 될 홀더들.”
그 인재들을 찾아 나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