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도마뱀 소굴 (1)
“2, 2억을 준다고…?!”
경악에 찬 최유민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나는 재빨리 검지를 입가에 댔다.
“쉿. 누가 들을라.”
“아, 아. 미안. 쉬, 쉿.”
“그리고 주는 게 아니라 투자라니까. 지금까지 뭐 들은 거야.”
“그, 그렇긴 한데….”
당황에 가득 찬 최유민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이번에 제시한 투자조건은 간단하다.
프리랜서 대장장이로 내게 고용되는 대신, 다양한 마력 재료와 보조 장비, 그리고 월 2억의 투자금을 받는다.
내가 정한 장비 요구 횟수는 최대 한 달 5회.
총 계약 기간은 1년.
즉, 최유민은 1년 동안 60개 정도의 장비만 만들어내면, 24억에 달하는 금액을 가져가는 것이다.
‘조금… 부담 가긴 하지만.’
솔직히 나로서도 꽤 부담이 가는 투자다.
2억이면 이번에 번 돈의 대부분이고, 던전 한 번을 크게 돌아야 얻는 액수니까.
하지만 전혀 못 버는 돈도 아니다.
난 이번 아카데미 지하 던전 공략에 있어 탁원호 교수에게 거의 전권을 물려받았다.
던전에 관한 정보와 공략 보고서만 제대로 제출한다면, 그 이외의 부가수익에 관해선 전혀 터치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은 거다.
비밀 던전이기에 대외적 공개가 어렵기도 하고, 애초에 탁원호 교수가 그런 수익 측면에서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덕분에 난 사실상 지하 던전의 소유주나 다름없었다.
‘그럼… 마력석으로 버는 돈만 해도 상당하겠지.’
당장 D급 수준에 이르는 내 홀더 정보.
던전을 공략하며 성장을 거듭한 후.
대략 C급 홀더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월에 2억을 투자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C급에 오르면, 지하 던전 초입부를 혼자 돌아 리자드맨만 공략해도 벌 수 있었으니까.
“그럼 정말 한 달에 다섯 번만 만들면 되는 거야?”
“응. 그 이상으로 요구하게 되면, 네가 요구한 추가금을 낼게.”
“아, 아니야! 원하면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하하. 그럼 나중에 후회할걸.”
그리고 월 2억에 5번의 무료 제작.
이건 의외로 상당히 이윤이 남는 장사다.
당장 지금은 마이너스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야장 계열 룬을 거의 성장시키지 못한 최유민의 장비라고 해봐야 팔아도 겨우 100만 원이나 나오는 수준이겠지.
하지만 내가 꾸준히 투자한 후.
최유민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의 제작 장비는 성장을 거듭할수록 점점 질이 좋아질 거고, 나중엔 레어나 에픽에 이르는 장비도 만들 수 있다.
특히 최유민이 [철혈의 야장] 룬을 깨우치고 본격적으로 희소장비를 만들기 시작하면, 2억은 막말로 껌이다.
20억, 200억이 넘는 돈을 우습게 만지는 게 그녀였다.
내가 1년이라는 짧은 계약 기간을 걸며 그녀에게 많은 투자를 한 건, 훗날 거장이 될 그녀와 인맥을 트기 위함도 있었다.
“어쨌든 당장 필요한 건 검이랑 단검이야. 이번 달 횟수 두 번 차감해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사흘 안에 만들어 주라.”
아카데미 지하 던전 재공략.
일단은 그를 위해 써먹을 장비가 필요했다.
지금의 최유민 제작 장비에 엄청난 효과는 없겠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사는 장비 만큼의 효율은 보일 것이다.
최유민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최선을 다해서 만들게!”
“아, 참. 그리고 주변에 아는 연금술사 계열 홀더 있어?”
“연금술사…?”
“어. 기초적인 포션이나 해독제 같은 것 좀 대량 구매하려고 하는데.”
최유민의 동생 최아린.
훗날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는 언니와 더불어, 연금술사 계열 홀더 중 탑클래스에 다다르는 인재.
그녀를 염두에 두고 꺼낸 말이었다.
최아린은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았지만, 내년에 중급반 특수 계열 홀더로 입학하게 된다.
당연히 예비 홀더인 지금 또한.
없는 돈으로 어떻게든 만든 포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선급금 5천만 원을 건네며 말했다.
“괜찮으면 네가 아는 연금술사 제품으로 좀 구매해주라. 난 특수 계열에 인맥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많이?”
“그것보다 훨씬 비싼 제품도 많잖아. 학생 물건이니까 싸게 사려는 거지. 장비 완성된 날에 같이 좀 전해줘.”
“아, 알겠어.”
아마 최유민은 동생 최아린의 물건들을 살 것이다.
그녀 역시 딱히 인맥이 넓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 기왕이면 동생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을 테니까.
최아린이 만든 포션들은 시중에 있는 포션들과 비교해 크게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최유민처럼 장기 계약을 걸기는 힘들지만, 아마 이번 던전 공략에서 쓸 만한 포션들은 충분히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 간다? 장비 만들었을 때 연락해.”
“자, 잠깐만! 너 번호를 모르는데….”
“계약서 맨 위 오른쪽에 있어. 저장해 놔.”
“아, 응.”
“나 가도 되지?”
최유민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또 보자, 최유민.”
“응…!! 진짜 고마워!”
그녀의 감사 인사를 뒤로 한 채 등을 돌렸다.
이번 초입부 공략으로 번 돈 3억.
그중 2억 5천을 썼지만, 난 전혀 아깝지 않았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고, 나 같은 전투계열 홀더들은 능력만 있다면 돈을 버는 게 어렵지도 않다.
그것보다 미래의 인재를 영입했다는 게 중요했다.
당장 장비 자체는 이현호가 더 잘 만들겠지만, 최유민 역시 나중에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대장장이로 성장한다.
그런 그녀와의 접점을 3억으로 만들었다면.
의외로 싸게 먹힌 거겠지.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곧 있을 던전 중간부 공략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예상보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우리 파티는 드디어 지하 던전의 재공략을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 어느새 리젠된 리자드맨들.
3명일 때도 곧잘 사냥했던 녀석들은…
5명이 되자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사냥 가능했다.
“채은아, 프로즌 포그!”
“응!”
김채은과 나의 전투 호흡은 상당히 잘 맞는다.
저번 시즐링 샐러맨더 사냥 때도 느꼈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홀더 정보도 조금씩은 공유하고 있기에 파티 사냥이 더 수월하다.
어떤 상황에 무슨 마법을 써서 보조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를 누구보다 잘 캐치하고 있고…
덕분에 내가 소리치면 항상 마법이 준비되어 있다.
“문가은! 트리플 파워샷!”
“닥쳐…!!”
이를 본 박진우가 그새 내 말을 따라 했다.
문가은이 짜증난다는 듯 욕을 했다.
농담으로 했겠지만, 저것도 문가은이니까 받아주는 거다.
강주연이었으면 진짜로 불 마법을 박진우에게 쓴다.
-카아아악!!
분노에 가득 찬 리자드맨의 목소리가 던전을 울린다.
D급 홀더를 넘어서려는 수준의 앞선 두 명.
그리고 압도적인 파괴력의 딜러 세 명.
완벽에 가까운 조합에 리자드맨은 정신을 못 차렸다.
박진우와 날 상대하고 있다 보면 마법과 사격이 날아왔고, 그를 피하려고 하면 박진우와 내 공격이 빈틈을 찔렀다.
어떻게 손을 쓰기도 힘들 정도로 일방적인 전투.
덕분에 초입부에선 미리 준비한 포션을 쓸 필요도 없었다.
[빈틈을 찌르는 당신의 검에 파상의 묘리가 더욱 짙어집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1 획득합니다.]
[강자의 기운이 담긴 당신의 검은 이제, 무엇이든 베고 찔러낼 수 있습니다. 검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상승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계속되는 실전에 꾸준히 룬이 성장하는 건 덤이었다.
[파상검법]이 3레벨에 올랐고.
살짝 정체되어 있던 [검]도 7레벨까지 올랐다.
덕분에 주요 능력치인 근력과 속력이 거의 30에 육박하고 있었다.
‘역시 항상 오르는 건 아니네.’
하지만 룬 성장으로 능력치가 무조건 오르지는 않았다.
수치가 낮을 땐 룬 획득이든 레벨 상승이든 무조건 올랐지만…
꽤 높은 수치에 도달하자 오르지 않을 때도 많아졌다.
강해질수록 능력치를 올리기 힘든 이유였다.
‘그래서 구도자의 땀방울이 사기룬이지.’
홀더의 경지와 상관없이 훈련 100시간을 채우기만 한다면 반드시 1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구도자의 땀방울].
이는 중반이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룬이다.
에픽룬 중에서도 유난히 효과가 압도적이라, 고대의 역사나 신의 숨결이 닿았다면 ‘전설룬’이나 ‘신화룬’으로도 판정받았을 법한 최상급의 룬이었다.
‘괜히 주인공 전용 사기룬이 아니지.’
어쨌든 우리는 파죽지세로 리자드맨들을 뚫어 공략했다.
그리고 저번 공략보다 훨씬 빠르게.
초입부 마지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문가은이 만세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오랜만에 저 커다란 바위를 보니 괜히 반가웠다.
인간의 근력으론 도저히 밀릴 것 같지 않은 바위.
박진우도 신기한 듯 바위에 다가가 그를 매만졌다.
“이걸 밀어내야 한다는 거지?”
“응. 더 볼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
나는 곧바로 무기를 정리하고, 바위에 손을 댔다.
이어 옆에 따라붙는 문가은과 박진우.
심지어 마법사 계열인 김채은도 붙었다.
강주연은… 처음엔 가만히 있다가.
김채은이 붙으니 아닌 척 다가와 따라붙었다.
“하나, 둘!”
나는 그대로 기합을 넣으며 바위를 밀었다.
현재 내 근력은 29.
[괴력]의 보조를 받으면 58.
여기에 나머지 네 명의 근력을 합산하면 최소 100이 넘는 힘을 낼 수 있다.
다섯 명의 홀더가 함께 밀어내는 힘.
그- 그가가가-
쿠우웅-!!
그 힘은 기어코.
이 단단한 마력석 바위를 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됐다.”
“와… 이게 진짜 밀리네.”
파티원들이 하나 같이 감탄했다.
특히 처음부터 공략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놀라움은 두 배였다.
강주연의 불 마법으로도 부술 수 없던 마력석 바위를, 홀더들의 순수 근력 합산으로 밀어냈으니….
아카데미 지하 던전.
그 초입부를 완전히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다들 준비하고, 바로 들어가자.”
“응!”
“오케이!”
나는 곧바로 검을 쥔 채.
바위가 가리고 있던 안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던전 중간부는 초입부보다 훨씬 동굴 같은 모양새였다.
동굴의 종유석 같은 것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뭍과 강이 만나는 지점인 듯 사방에 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진입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문가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도재현! 앞에!”
기이하게 생긴 작은 체형의 괴수들이 벌써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10분이 지나고 리자드맨이 나왔던 초입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의 등장이었다.
긴장한 채 검을 쥐고, 괴수들을 바라봤다.
점점 파티에 가까이 다가오는 괴수들.
그리고 나는 이내 괴수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멀리 있을 땐 어두워 파악이 힘들었지만…
맞붙을 수 있는 사거리까지 오니 확인이 가능했다.
“톡신 이구아나?”
아니, 씨발….
또 도마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