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도마뱀 소굴 (2)
톡신 이구아나는 B급 괴수다.
이름 그대로 독을 보유하고 있고, 체형이 작아 속력에서 강점을 드러내는 도마뱀 괴수.
특히 [날렵한 몸놀림]이라는 속력 관련 레어룬도 보유하고 있어, 전투 도중 집중하지 않으면 공격을 놓칠 수도 있는 위험한 괴수였다.
‘안 좋은데….’
나는 살짝 입술을 물며 바로 검을 빼 들었다.
초입부에서 C급 괴수들이 나왔기에 당연히 중간부에서 B급 괴수가 나올 수 있었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몰려다닐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나와 박진우가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라곤 해도…
다수의 B급 괴수를 상대하는 건 아직 무리가 있었다.
얼핏 보이는 톡신 이구아나의 개체는 다섯 마리.
우리 중 한 명은 세 마리를 맡아야만 했다.
“박진우!”
“말 안 해도 알아!”
내 외침에 박진우가 곧바로 뛰쳐나갔다.
나 역시 잠시 숨을 참고.
허리춤의 비수들을 꺼냈다.
“흐읍…!!”
이전 파티에서 꾸준히 써왔던 콤보.
투척용 단검으로 [쿼터 나이프]를 날린 후…
그대로 검을 들고 달려가 탱킹하는 것.
어그로를 끌면서 시작할 수 있고, 다수의 괴수를 상대할 때 꽤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물론, 일전의 리자드맨처럼 전투 불능 상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녀석들에게 거슬리는 정도.
놈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제한만 해도 성공이다.
“……?!”
하지만 이번 기습은 녀석들에게 일말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톡신 이구아나는 기본적으로 속력이 높고, [날렵한 몸놀림] 룬으로 움직임에 보조까지 받는 괴수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단검을 피해야겠다는 판단력.
그리고 미숙한 공격을 손쉽게 회피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키이이….
톡신 이구아나의 괴성은 조용했다.
시즐링 샐러맨더의 울음소리와 비슷하지만, 던전을 울릴 만큼 높은 음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들은 언제든 우리를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
-키이이…!!
순식간이었다.
내가 먼저 달려든 게 아니라, 놈들이 먼저 뛰쳐 왔다.
박진우와 상대하고 있는 두 마리의 톡신 이구아나.
그 외 세 마리의 톡신 이구아나가, 날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미…친.”
나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최대한 감추며 검을 빼 들었다.
솔직히 지금의 내 내구와 근력으론 자신이 없다.
녀석들을 얼마나 붙잡아 둘 수 있을지.
단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뒷선의 딜러들이 빠르게 녀석들을 녹이길 바랄 뿐이었다.
깡-
최유민이 직접 제작해 준 롱소드가 딱딱한 톡신 이구아나의 이빨에 부딪혔다.
그녀의 야장 계열 룬은 아직 성장 단계인지라, 장비에 특별한 효과가 없고 아이템 정보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놈들의 이빨에 부서질 정도로 약하진 않았다.
“윽….”
검을 맞댄 상태에서.
살짝 숨을 돌릴 시간도 없었다.
빈틈을 노리듯, 곧바로 또 다른 톡신 이구아나가 달려들었기에.
나는 양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한 손으로 바꾸고, 다른 한 손으론 허리춤의 단검 하나를 꺼내 들어 두 번째 일격을 겨우 막아냈다.
깡- 까강-
살짝 식은땀이 흐른다.
어떻게든 일격을 막아내긴 했다.
이대로 가면 곧 딜러들의 지원이 쏟아질 거다.
하지만 박진우와 달리.
내가 상대할 톡신 이구아나는 총 ‘3마리’라는 게 문제였다.
두 마리의 이구아나는 검과 단검으로 막았지만, 한 마리의 이구아나는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녀석이 빈틈을 노리고 내 허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위험함이 극에 달한 상황 속.
나는 기어코 해결책을 떠올려냈다.
‘단단해지기!’
[단단해지기].
6레벨에 다다른 [도마뱀의 비늘]의 파생스킬이다.
이름은 상당히 병신 같지만, 순간적으로 내구 수치를 상승시켜 홀더의 방어력을 증강시키는 강력한 스킬이다.
깡-
마치 강철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단단해지기]에 그대로 몸을 들이받아 나온 소리.
놈은 잠깐 몸을 비트는 것 같더니, 금세 기운을 되찾고 다시 달려들었다.
“어?”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단단해지기]는 분명 5초 간 내구력을 두 배로 상승시키는 스킬이고, 뒷선 딜러들의 공격은 5초면 충분히 완성된다.
하지만 그 5초의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구아나의 공격이 데미지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다급한 상황 속에 서둘러 이를 확인하니, 톡신 이구아나가 아까완 달리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단숨에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룬이다!’
내가 룬의 힘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았던 것처럼, 녀석 역시 특정 룬의 힘으로 내 [단단해지기]를 뚫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보호 장비를 찬 허리 쪽은 상황이 괜찮다.
하지만 장비 없이 비어있는 곳도, 내 몸에 분명 있었다.
‘좆됐다….’
보호구 없이 텅 빈 내 어깨.
그를 향해 달려드는 톡신 이구아나.
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번들거리는 이빨로 내 어깨를 물어뜯었다.
“끄, 끄아아악…!!”
“재현아!”
김채은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절할 것 같던 의식을 겨우 붙잡았다.
씨…발.
존나 아프네.
욕이 절로 나온다.
톡신 이구아나의 이빨은 웬만한 날붙이처럼 견고하고 날카로웠다.
물린 어깨가 검에 찔린 것처럼 쓰라린 통증을 끊임없이 전달했다.
17의 정신력 수치가 아니었다면.
원래는 죽어도 못 견딜 통증이다.
설상가상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톡신 이구아나의 주특기인 ‘독’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이잇… 죽어…!!”
분노에 찬 김채은의 빙결 마법이 톡신 이구아나에게 덮쳤다.
그녀의 주력 스킬 [프로즌 포그].
다른 놈들은 재빨리 빗겨 갔지만, 내 어깨를 문 녀석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거 나까지 얼어붙는 거 아니야?
화륵- 화르르-!!
쉬익, 쉬이이이-!!
그리고 김채은의 마법이 신호탄이 되듯.
강주연과 문가은의 지원 공격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마력을 담은 화살들이 쏟아지고,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시즐링 샐러맨더를 사냥할 때 느꼈던 압도적인 화력.
그게 이번엔 톡신 이구아나를 향해 발산되었다.
“아으….”
멍하니 그걸 바라볼 틈도 없었다.
난 [프로즌 포그]로 인해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진 톡신 이구아나에게 검을 내리꽂았다.
-키, 키이이….
날 극한의 위험까지 몰아넣은 상대가 맞나 싶다.
톡신 이구아나는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대로 전투는 끝이었다.
다른 쪽 괴수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김채은과 강주연의 마법은 내 주변의 괴수들에게 날아들었고, 문가은의 지원 사격은 박진우의 톡신 이구아나들에게 꽂혔다.
불로 지져지고, 얼어붙고, 꼬치처럼 화살에 꿰이고…
놈들은 불쌍할 정도로 처참한 시신이 되어있었다.
“재현아! 괜찮아?”
김채은이 서둘러 내게 달려오며 물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강주연과 문가은의 얼굴에도 걱정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꽤 위험한 장면이긴 했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인 나를 괴수가 물어뜯었으니.
아마 물린 부위가 어깨가 아니라 급소였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나는 손을 들며 괜찮다는 신호를 줬다.
“괜찮아. 채은아, 그것보다 해독제 좀.”
“아, 응. 여기.”
어깨 쪽에서 끝을 모르고 흘러내리는 다량의 피.
그에 체력포션을 건네려던 김채은이 재빨리 해독제를 먼저 건넸다.
통증이 계속 느껴지는 건 독 때문인 게 분명했다.
톡신 이구아나의 독은 독을 쓰는 괴수 중에서도 위력이 상당하기로 유명하니까.
그리고 곧장 해독제를 입에 털어 넣으려던 찰나.
잠시 잊고 있던 정보창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괴수의 독을 직접 몸으로 받아냈습니다! 독의 기운이 점차 익숙해집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획득합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맹독(선택불가) 2.날렵한 몸놀림 3.견고한 이빨]
아카데미에 입학 전.
아웃홀더를 소탕하며 의외의 소득으로 얻었던 [맹독].
양아치들의 룬 치고는 과분하다 생각했던 레어룬이, 톡신 이구아나에게도 있었다.
이름부터 ‘톡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어쩌면 당연했다.
‘맹독을 못 고르는 건 좀 아쉽네.’
[룬 사냥꾼]이 획득하는 룬은 상대가 해당 룬을 고레벨로 지니고 있을수록, 내게 부여되는 룬도 어느 정도 레벨이 보정된다.
당시 아웃홀더가 지녔던 [맹독]은 1레벨.
따라서 내가 얻은 [맹독]은 0레벨로 하락해 등록됐다.
하지만 톡신 이구아나는 독에 대해 이해도가 높고, 독의 위력도 상당히 높은 괴수다.
당연히 [맹독]의 레벨도 상당할 것이다.
최소 4~5레벨의 [맹독]을 얻을 기회였는데, 선택 불가로 확정된 게 아쉬웠다.
그나마 놈에게 물려 독의 기운을 몸소 체험하며, [맹독] 레벨을 올린 게 다행이었다.
‘그럼 남은 게….’
[날렵한 몸놀림]과 [견고한 이빨].
둘 다 상당히 괜찮은 레어룬이다.
특히 [날렵한 몸놀림]은 박진우 또한 가지고 있는 레어룬으로, 속력과 관련된 모든 행위에 보조를 받는다.
전부터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룬인데, 다행히 이번 사냥으로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룬을 고르려던 순간….
“강주연, 조심해!”
박진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박진우가 맡은 이구아나 중 한 마리가 비틀대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 이건 또 뭐야.’
박진우 쪽 괴수들은 문가은이 전담해 공격을 맡다 보니, 한 마리의 완벽한 처치가 덜 된 것이었다.
전투가 끝나 모두 긴장이 풀린 상황.
강주연이 반응하지 못하면, 그대로 톡신 이구아나의 독 공격을 맞게 될 그림이었다.
난 서둘러 룬을 고르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날렵한 몸놀림을 선택하셨습니다. 4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2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2 획득합니다.]
룬 획득으로 곧장 2의 수치를 획득하며 30에 도달하는 속력.
내 홀더 능력치 중 처음으로.
속력이 근력을 앞서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달릴 때 순간적으로 엄청난 속력 보조를 해주는 [질주]까지.
나는 속력 관련 두 룬의 보조를 받아, 순식간에 강주연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내 지척까지 쏘아진 톡신 이구아나의 독침.
강주연을 향해 날아왔던 그 독소 공격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다른 쪽 어깨에 날아와 박혔다.
“흡…!!”
온몸에 힘이 빠지고, 톡 쏘듯 쓰라린 통증이 어깨를 잠식한다.
…진짜 뒤질 만큼 아팠다.
이 새끼들 독은 맞아도 맞아도 적응이 안 되네.
“아…!”
깜짝 놀란 강주연의 얼굴이 보인다.
신기하다.
얘,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재, 재현아!”
“야, 도재현! 너 괜찮아?”
“뭐해, 박진우! 저 이구아나부터 잡고 와!”
“아, 맞다. 그래야지.”
파티원들의 시끄러운 외침 속.
문득 강주연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모인 양손과 그 주변에 강하게 모여드는 마력.
그걸 보고 나니.
어깨 쪽의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의문이 들었다.
‘…막을 수 있었나?’
생각해보니 강주연은 [마력 제어] 활용이 극에 달한 마법사 계열 홀더다.
저번 실전 대련에서도 파생스킬인 [마력 방어막]을 사용했었고, 그녀의 반응속도라면 톡신 이구아나의 공격 정도는 충분히 막아냈을 지도 모른다.
만약 막을 수 있었으면.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또 없는데….
[포이즌 스핏을 정면에서 막아냈습니다. 강렬한 독의 성분이 온몸을 타고 흐릅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획득합니다.]
이런 내 고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정보창은 속절없이 시야를 채워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