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26화 (26/353)

EP.26 도마뱀 소굴 (3)

홀더의 등급은 높아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

E급 홀더에서 D급 홀더로 올라서는 건 쉬운 편이지만, 단기간에 B급 홀더에서 A급 홀더로 올라서는 건 전설룬을 얻는 정도의 기연이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재능.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졌을 때.

고위 등급으로의 승급이 가능하다.

따라서 C급 이상의 등급부터는, 같은 등급이라 해도 홀더 간에 격차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

강주연은 B급 홀더에 등극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

넘치는 재능과 탁월한 실력으로 B급에 올랐지만…

홀더로서의 경력과 성과, 실전 경험 측면에선 타 B급 홀더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강주연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 공략.

도재현의 그 뜬금없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건.

단순히 그가 신경 쓰여서 뿐만이 아니라, 강주연 스스로도 더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C급 괴수 리자드맨이 주로 출몰하는 던전 초입부는 그런 강주연에게 안전하고 적절한 사냥터였다.

도재현이라는 앞선과 강주연, 문가은의 확실한 딜링.

정석적이면서 간결한 이 조합은, 그간 파티 공략을 꽤 해봤었던 강주연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실전은 언제나 홀더에게 좋은 전투 경험이었다.

‘그런데…’

파티원을 늘린 후.

중간부에 들어고서부터 갑자기 B급 괴수가 나타났다.

톡신 이구아나.

빠른 속력을 기반으로 강렬한 독을 내뿜는 도마뱀 계열 괴수.

솔직히 B급 괴수 한두 마리쯤이야 문제 될 건 없다.

당장 최근에 B급 괴수였던 시즐링 샐러맨더도 강주연과 문가은의 공격 한 방에 그대로 명을 달리 했었으니까.

하지만 여긴 던전이고, 던전 안 괴수들은 얼마든지 무리를 지어 단체로 움직일 수 있었다.

강력한 괴수들이 집단으로 움직인다는 건 항상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전투에서 변수란.

순간 홀더를 사망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개념이었다.

‘…안일했어.’

강주연은 자신의 손끝에 모이던 마력을 바라봤다.

[마력제어]의 파생스킬, [마력 방어막].

고위 마법사 계열 홀더들의 주력 방어 스킬.

톡신 이구아나가 회심의 독소 공격을 날렸을 때.

강주연은 [마력 방어막]을 통해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방심한 채 뒤늦게 만들어낸 방어 스킬은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아마 미완성된 [마력 방어막]은 속수무책으로 찢기며 강주연에게 독이 닿는 걸 허용했을 것이다.

…눈앞에서 자신을 막아줬던 남자.

도재현만 아니었더라면.

“…….”

강주연은 말없이 도재현을 바라봤다.

그는 던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체력포션과 해독제로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야, 어떻게 했는지 알려 달라니까? 그 상황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앞으로 튀어나가냐고.”

“다- 방법이 있다, 임마.”

“치사하게 안 알려줄 거냐?”

“넌 그럼 일주일간 어떻게 그렇게 세졌는데.”

“뭐? 그건 말 못 해주지.”

“내로남불 뭐야.”

도재현은 여느 때처럼 박진우와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마치 방금의 전투가 별 것 아니었다는 듯한 평범함.

그는 첫인상부터 그랬다.

승리에 들뜨지 않았고, 평온함을 잃지 않았다.

항상 침착했고, 변수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강주연의 기억에 계속해서 남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말을… 전해야 하는데.’

뭔가…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그런 말을 전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간 탓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었다.

강주연은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잠깐 시선을 돌려 도재현의 주변을 쳐다봤다.

문가은은 두 남자의 만담이 재밌다는 듯 한창 웃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김채은은…

…마치 간병인이라도 된 듯.

도재현의 옆에 앉아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

저런 걸 왜 하는 거지?

강주연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슬린다.

정확히는 설명이 어렵지만, 뭔가 거슬렸다.

저번 감사 인사 때도 그렇고, 이번 던전 공략도 그렇고.

김채은은 미묘하게 강주연을 거슬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 쓰이는 게 하나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 * *

우리 파티의 사냥은 시간이 갈수록 효율이 높아졌다.

첫 사냥 때 우리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톡신 이구아나.

이들 역시 사냥을 거듭하다 보니 잡는 데에 요령이 생겼다.

“박진우!”

“오우!”

내가 신호를 주자 박진우가 앞으로 달려나간다.

나는 그 뒤를 쏜살같이 따라잡아 엄호하듯 근접 공격을 펼쳤다.

이게 우리가 생각한 사냥 방식이다.

톡신 이구아나는 체형이 작고 속력이 뛰어난 괴수다.

따라서 리자드맨을 상대할 때처럼 서로 나뉘어 사냥하려 들면,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하고 딜러들에게까지 위험이 닿을 수 있었다.

‘그럼 일자로 싸우면 되지.’

그래서 생각한 게 일자 대형이다.

박진우가 먼저 최전선에서 탱킹하듯 괴수를 상대하고, 후속으로 덤벼드는 톡신 이구아나는 내가 재빠르게 맡는다.

높은 속력과 반응속도가 요구되는 사냥 방식이지만, 속력 30을 달성하고 [날렵한 몸놀림]까지 얻은 내 몸은 그게 가능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보유한 룬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해당 룬을 복제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내구를 1 획득합니다.]

[독은 시간이 쌓일수록 그 농도가 짙어집니다. 독에 관한 당신의 이해도가 더욱 증가합니다.]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획득합니다.]

덕분에 성장 또한 쉴 틈이 없었다.

독 관련 괴수를 만나 신나게 성장하는 [맹독] 룬.

룬 레벨이 벌써 4레벨이 되고, 독 내성은 7을 기록했다.

이쯤 되니 슬슬 톡신 이구아나의 독에 직격으로 맞아도 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견고한 이빨] 룬도 기어코 얻어냈다.

[견고한 이빨]은 신체부위 중 이빨을 강화해 상대를 물어뜯을 때 강력한 보조를 하는 레어룬.

이빨로 물 시, 상대의 내구 수치를 절반 깎아 데미지를 입힌다는 특수효과가 있다.

그래서 내 [단단해지기]가 처음 놈에게 뚫린 것이다.

‘솔직히 나한테 크게 필요는 없지만….’

인간인 내가 이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내 주력 무기는 검과 단검이다.

[격투]를 주력 룬으로 삼으며 싸우지 않는 한, 내가 [견고한 이빨]을 성장시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룬은 무조건 보유하는 게 좋다.

당장 능력치를 보조해주고, [괴력]처럼 언제 어떤 상황에서 효과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게다가 주력 능력치 중 내구 수치가 가장 낮은 내게 있어, 내구 쪽을 보조하는 룬은 귀하다.

3레벨의 [견고한 이빨]로 인해 벌써 3의 내구 수치를 얻었다.

덕분에 근력과 속력은 30을, 내구는 20을 넘어선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C급 홀더…

아카데미에선 상급반으로 분류될 능력치와 룬 레벨이었다.

“다 잡은 것 같은데?”

“잘 살펴봐. 저번처럼 또 허술하게 봤다가, 나 다치게 하지 말고.”

“아오, 진짜. 그건 문가은이 잘못한 거라니까?”

박진우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나는 낄낄대고 웃으며 문가은을 봤다.

“더 없는 것 같아?”

“잠시만.”

그녀가 다시 한번 [돌고래의 음파]를 활용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닥에 손을 대는 문가은.

평온한 그녀의 표정에서.

이 이상의 괴수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시즐링 샐러맨더 두 마리 정도? 근데 우리랑 너무 멀어. 잡으려면 뒤로 돌아가야 하기도하고.”

예상했던 대로.

시즐링 샐러맨더는 지하 던전에 출몰하던 괴수였다.

이곳에 서식하던 괴수 중 한 마리가, 모종의 마력 현상으로 [마력 결계]를 뚫고 아카데미 내부에 출현했던 것.

톡신 이구아나와 시즐링 샐러맨더.

도마뱀 계열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한 B급 괴수 둘이…

이곳 지하 던전 중간부의 주력 괴수였다.

우리는 이 까다로운 괴수들을 모두 처리하며, 결국 이곳 중간부 마무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아마 다음에 이어질 마지막 단계는 보스 룸.

던전의 주인이 거주하는 방일 확률이 높았다.

“뒤로 돌아가는 건 좀 그렇지.”

“응.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여기서 두 마리 더 잡아봤자 이득도 없고.”

“강주연, 네 생각은 어때?”

나는 고개를 돌려 강주연을 바라봤다.

이 파티를 이끌어 온 실질적 리더가 나긴 하지만, 우리 파티원 중 가장 강한 홀더는 강주연이다.

마지막 보스 룸으로 들어가기 전.

B급 홀더인 그녀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강주연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맘대로 해.”

왜 이러는 거야, 무섭게.

강주연이 이렇게 순순하게.

심지어 ‘대답’까지 해주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파티원들을 둘러봤다.

강주연만 오케이라면 나머지는 다 내 의견에 따르는 모양새였다.

“그럼 다들 준비된 걸로 알고, 바로 들어간다?”

“응!”

“드가자…!!”

아카데미 지하 던전의 마지막.

던전 공략의 꽃이라 불리는 보스 룸.

원작에서도 나온 적 없던 그 미지의 공간에.

드디어 입장하는 순간이었다.

[보스 룸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리즐리 드레이크의 파괴적인 기운이 맴돌고 있습니다. 홀더의 속력과 근력이 저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스 룸에서.

이 지긋지긋한 도마뱀 소굴의 끝판왕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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